난자 냉동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나로서, 이번 공연은 꼭 보고싶었던 것이였다. 평일 저녁 퇴근 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공항철도를 타고 LG 아트센터로 향했다.
시작부터 평소에 보던 무용과는 다르다.
음악스러운게 있나 싶더니 10명 가까이 되는 무용수들이 무대의 비닐을 벗기기 시작하자 모든 소리가 묻힌다. 유리창이나 아크릴판, 칠판, 그 외에 그 비슷한 소리가 나는 모든 것들을 신체로 아주 세게 문지를때 나는 소리가 계속해서 났다. 소음인지, 음악인지 모를 소리들은 좋은 음향시설을 타고 귀에 박힌다. 그나저나 요즘 무용계엔 뒤로 걷기가 유행인지 다들 뒤로 걸어다니며 행위를 계속한다. 거의 무대 전체를 벗겨내야 했기에 시간이 꽤 걸렸다. 내 주위의 관객분 중 한 분은 계속 귀를 막고 계시더니,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 정도로 소리가 컸다.
이 과정이 무엇일까, 아주 일차원적으론 생리, 즉 자궁벽이 허물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걸까? 그렇다면 저 무용수들은 일종의 호르몬이나 세포들일까? 주인공이나 주연, 센터와 같은 형식이 없어 보였기에 더더욱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러더니 곧 무용수들이 물을 뱉기 시작했다. 언제 마셨지 하는 생각도 잠시, 이 공연은 올해 목격한 사건 중 가장 이상한 일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는 이 공연을 어떻게 글로 쓰고, 전달해야 하나 막막해진다. 안무가의 의도를 해석하고 파악하기엔 직접 보고 온 나도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사건을 나열하기엔 감상의 빈약함이 보인다.
그러다가 프로그램 북을 좀 더 자세하게 읽었다. 엄청나게 고밀도의 글이다. 시험관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은 아주 이해가 쉽고 흥미로웠지만 윤민화 작가가 쓴 글은 참으로 난해하고, 복잡하다. 어찌저찌 읽은 소감은 '시술의 주변부에 존재했던 것들을 정면에 배치하기 위한 노력' 정도가 될 거 같다.
ⓒBAKi
인상깊었던 구절 몇 가지를 인용하고 싶다. 먼저 모두가 난임 시술이라는 소재하면 생각날 있는 주제 "신체의 도구화"이다.
"임신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저는 제 몸이 도구화되었다고 느꼈어요. 어쩌면 학대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치료 방법에서 저는 이 기술의 양면성을 알게 되었죠. 하지만 사실 저는 제 발로 난임 클리닉에 간 거였거든요."
<내가 물에서 본 것> 프로그램 북 中 김보라 안무가의 진술
몸은 도구이다. 도구가 아니란 생각이 더 이상한 것 같다. 무용가들에게는 더 잘 갈고 닦아야 하는 도구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시험관을 거치며 자신의 몸이 도구화되었다고 느꼈다. 오로지 임신이라는 결과를 위해 수단화된.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그리 낯설진 않다. 의학 전문성이 주가 되는 장소에선 더더욱 흔한 경험이다. 심장, 소장, 대상, 쓸개. 전문가들은 몸을 해부하고 이름표를 붙였고, 치료하고, 연구했다. 덕분에 과거엔 임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임신이 가능해졌다.
그렇다. 이들은 제 발로 난임 클리닉에 간 것일 것이다.
의료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동력 시설에 부품이 되기로 결정한 이상. 믿을 것은 전문가와 법뿐이다. 아, 인터넷도 물론 든든한 조력자이다. 다만, 이것들을 과연 100% 신뢰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과학기술적 희망과 정치적 기획, 한국의 국가 경쟁력 고취를 향한 욕망이 땋아올린 난임 기술에서 과연 여성의 몸은 어디에 있을까?
자발적 참여자 여성은 이 정교하게 발달한 과학기술로 혈통을 잇는 전통적 가치를 실현한다.
다만 이 과정엔 신뢰할 수 없는 것, 어려운 것, 낯선 것, 아픈 것들이 즐비하다.
뒷걸음친다. 발끝이 선다. 흘러내린다. 다른 몸과 붙는다. 붙으며 동시에 밀어낸다. 몸과 몸 사이에 힘이 발생한다. 다른 몸과 닿기 위해 내 몸이 변형된다.
다른 몸과 내 몸이 뒤얽힌다...
그러면서 이 난해한 움직임으로 가득찬 공연의 지시어가 쌓였다. 임신이라는 성공적 결과를 위해 암묵적으로 배제했던 모든 것들 즉, 여성의 몸, 의료 기계의 소리, 부작용, 감정들 등등이 무용으로, 소리로, 행위로 전면에 드러난다.
그러자 조금씩 이 공연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시작도 끝도 모호한 공연, 의미도 결과도 없는 행위, 시끄럽지만 과하게 고요하기도 한 소리, 차가운데 역겨울 정도로 뜨겁기도 한. 임신의 결과를 위해 혹은 태어날 아동의 건강에 포장된 과정을 눈앞에 들이댄다.
프로그램 북은 수많은 질문으로 끝을 맺었다. 춤과 몸이라는 주제로,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으로, 여성들의 삶에서, 이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여성들의 물음은 서로 겹친다. 그 안엔 내가 이 무용을 보며 가진 물음도 포함되 있다. "전통적 무용에 대한 저항(혹은 새로움에 대한 갈망)에 집중한 나머지 이 안무/기획이 지향해야 할 목적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공연을 본 직후, 그리고 공연 감상 후 3일 후까지 나에게 이 질문에 답하라면 "yes"였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북을 찬찬히 읽고, 이해하고 , 소화하고나자 이 질문에 "no"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이 공연을 몸으로 진술한 시험관 시술의 경험으로 이해했다. 누군가가 시험관 시술 후기를 묻는다면 자신있게 이 공연을 추천할 것이다. 이런 느낌이래요. 설명은 못해요. 근데 이 느낌이래요.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