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한 번쯤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무언가에 강렬히 사로잡힌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삶이 아무리 비참할 지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찾게 되는 자기만의 신, 일 년을 꼬박 기다려도 오직 그의 흔적만을 만날 수 있을 뿐이지만 매년 기다리게 되는 산타 클로스, 혹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같은 것들 말이다. 그 대상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에 대해 갖는 감정이 대체 어떤 것인지 굳이 정의 내리지 않더라도, 그 환상에 대한 믿음은 무척이나 강하다. 그래서 쉽게 깨어지지 않는다. <벌집의 정령> 속 ‘아나’가 정령에 대해 가진 환상도 그러했다.
영화는 어느 한적한 마을에 영화 상영 트럭이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을의 낡은 공용 건물에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이 모이고,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괴물’은 소녀를 호수에 빠뜨리고 결국 마지막에 자신도 죽음을 맞이한다. 이를 보고 영화 속 ‘괴물’의 실체를 궁금해하는 ‘아나’에게 언니인 ‘이사벨’은 그가 괴물이 아닌 ‘정령’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가 친해지면 언제든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이며 밤에만 그를 볼 수 있다고 덧붙인다. ’아나’가 ‘정령’이라는 존재에 대해 가지는 강렬한 믿음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계기가 무엇이 되었든 한 번 가진 믿음을 깨기란 매우 어렵다. ‘아나’에게 ‘정령’이란 그저 언니의 입을 통해 나온 묘사로만 존재할 뿐, 그 실체를 보거나 그에 접근한 적이 없는 대상이다. 하지만 ‘아나’는 계속해서 ‘정령’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기다린다. 영화 속 괴물의 이미지로 존재했던 ‘정령’이 무섭기도 하지만, 그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어쩌면 영화에서 그려진 나쁘고 잔혹한 이미지가 아닌, ‘정령’의 새로운 모습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게 ‘아나’는 그 실체를 찾기 위해 수풀 너머로 사라지고 만다. 실체와 직면하기를 택한 것이다. 결국 ‘아나’는 한밤중 우물가에서 괴물의 모습을 한 자기만의 ‘정령’을 마주하고 말았다. 그게 정말 ‘정령’의 실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환상에 대한 강렬한 믿음과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아나’를 그곳으로 이끌었을 뿐이다.
무언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그것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 속에는 어떠한 환상도 믿음도 가지지 않는 인간의 모습 역시 존재한다. 극 중 ‘아나’, ‘이사벨’의 부모님이 그러하다. 이들은 그들의 어린 자녀들과 달리 상실, 무력감, 슬픔의 정서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어머니는 옛 애인에게 편지를 쓰면서도 자신의 현실을 살아가고, 호기심 보다는 공허한 눈빛으로 기차 속 사람들을 바라본다. 아버지는 내전을 비롯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무력감을 느끼는 듯해 보인다. 이들에게는 어떠한 환상도 없어보이지만,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다. 어른과 아이가 무언가에 대해 믿음을 갖는 방식, 그리고 그 믿음이 향하는 방향은 너무나도 다르다. 즉 어쩌면 환상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욕구는 어린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아주 순수한 욕망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영화는 순수한 ‘아나’의 시선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전반적으로 영화 속에는 대사가 많지 않지만, ‘아나’의 행동을 롱테이크로 보여주거나 그의 동선을 따라감으로써 관객이 ‘아나’에게 몰입하도록 만든다. ‘아나’와 관객을 동일시하며 관객에게도 ‘정령’에 대한 강렬한 환상과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한편, 결국 ‘아나’가 정령의 실체를 마주함으로써 어떤 변화를 겪었을 지 우린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나’는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한참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말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여운에 사로잡힌 듯 보였으며, 엔딩에서는 한밤중 무언가의 존재를 느끼고 창문을 열어 젖히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그 이후 펼쳐질 ‘아나’의 삶에서 ‘정령’과의 만남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 지는 관객의 상상에 맡겨야 한다.
하지만 ‘아나’도 시간이 흐르며 더 이상 환상의 실체 따위는 확인하고 싶어하지 않는 어른으로 커 가지 않았을까. 어른에게 환상의 실체를 확인한다는 것은 원래 가지고 있던 강한 믿음에 대한 사형선고이자, 더 이상 어떠한 기대나 희망을 품을 수 없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나’를 진찰한 의사가 그녀에 대해 ‘조금씩 기억을 잃어갈 것’이라고 표현한 부분 역시 그러한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환상에 대한 믿음은 그 실체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어린 아이는 두려움보다는 기대 끝에 실체를 마주하길 원하지만, 그것이 주는 상실과 무력감을 아는 어른들은 회피를 택한다는 것을 아이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