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병에 걸려본 적이 있는가?
취미를 즐기는 모든 이들에게, ‘장비병’은 한 번씩 찾아오는 환절기 감기 같은 존재다. 요즘은 장비병이 찾아오는 데에 예외란 없는 시대다. 가장 단순한 취미로 분류되는 '독서'를 떠올려보자. 튼튼한 독서대와 예쁜 조명을 갖추고 나서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가.
필자의 가장 큰 취미는 음악이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현재 본업이기도 한 탓이다.
처음 기타를 잡았을 때, 주변 사람들이 나를 놀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넌 취미를 잘못 골랐다.” 그렇다. 음악이란 취미는 상당히 돈이 많이 든다. 초기 투자 비용부터 상당하다.
일단 악기를 사야 한다. 전자기타를 예로 들면, 앰프와 이펙터까지 묶어서 사야 한다. 혹은,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DAW를 구매해야 비로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입문 단계에서부터,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장비들을 찾아 나서는 여행이 시작되는 셈이다.
내가 속해 있는 밴드에서는 요즘 앨범 작업이 한창이다.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진행하며, 좋은 소리를 만든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때문에 보유하고 있는 장비들 탓을 많이도 했다.
당시 내 상황에서 최선의 구매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완벽함이란 없기에 어쩔 수 없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이끌어 내는 것이, 프로의 숙명이지 않겠나.
취미생에서 기타리스트가 되기까지 총 7대의 기타, 서너 번의 페달 보드 세팅을 거쳐왔다. 정든 악기들을 떠나보낼 때마다 마음이 참으로 아팠다. 하지만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을 확신할 때면, 빈 지갑도 아쉽지 않았다. 원하던 소리를 내어주는 악기를 찾았을 때만큼, 짜릿한 순간이 또 없었다.
음악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장비가 주는 만족감이 차지하는 부분이 어쩌면 크지 않았을까.
가끔 대학 동아리 밴드 공연을 보러 갈 때면, 눈을 의심케 하는 장비들이 종종 보일 때가 있다. 수백만 원을 넘나드는 고가의 악기들이, 비단 프로들의 전유물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취미생 시절, ‘장비병’에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악기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을 때, 좋은 장비를 손에 쥐어야 한다는 뜻에서였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는 ‘장비병’을, 취미생활의 일부라고 보는 쪽이다. 혹자는 본업도 아닌 여가 생활에, 필요 이상의 지출을 비판하기도 한다. 다소 찔리는 부분이 있다. 본인이 행복하면 그만 아닌가.
혹시 또 모른다. ‘장비병’에서 시작된 취미생활이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