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터미널은 눈이 없고 귀가 없고

하지만 터미널은 거대해
  
여길 떠나야지
떠나서 절대 돌아오지 말아야지
때로는 그런 마음으로 주먹을 쥐는, 그러나
곧 다시 되돌아오는 사람이 대부분일
터미널 한 구석에서
  
한 여자는 목걸이와 귀걸이를 팔지
먹을 수도 없고, 녹슬어버릴 것을
남편은 수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
보험금으로 여기 한 칸을 마련한 거야 
  
이게 진짜라는 듯이 여기가 전부라는 듯이
목걸이가 반짝거리고
인생이 아름답다고 믿을까 그렇다면 아름답지
  
춘천행 표를 끊을 때 춘천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지만
로마 여행이 꿈이랍니다 여기서 로마는 멀고
꿈을 꾼다는 건 끔찍한 일이란 듯이
눈을 번쩍 뜨며 낮잠에서 깬다
  
아까부터 말이 없는 노인은 몇 시간째
같은 자세로 앉아 있네
어제까지 오던 청년이 오늘은 찾아오지 않아
인생을 사는 자들은 인생에 대해 떠들지 않아
터미널에서 일하는 자들은 터미널을 떠나지 못하지
  
저 사람은 신이 분명해 아주 허름하게 입은 사람
양손 무겁게 짐을 든 사람도 있다
  
책을 만든다는 딸이 가끔 보내오는 책이
읽히지 않고 가게 한쪽에 쌓이네
좋은 로마의 휴일 서체가 새겨진
마젠타와 사이안이 적절한 농도로 휘감긴
몇 번 들어 귀에 박힌 말들의,
팔리지 않는 브로치들과 함께
  
여기서 로마는 갈 수 없지만
여자는 매일 터미널에 오고 목걸이를 판다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떠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래도 가끔 마젠타, 꼭 미국 사람 이름처럼 중얼거려보지

 

- 주민현, 터미널에 대한 생각

 

 

주민현의 <터미널에 대한 생각>은 꿈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의 화자는 터미널이라는 일상의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구석구석 살피며 이들의 평범하고 현실적인, 그렇기 때문에 비극적인 삶의 모습을 조명한다.

 

이 시를 자세히 살펴보기 전, 터미널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특수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터미널은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의 길이 유일하게 만나는 교점이다. 누군가 마음을 먹고 떠나려고 해도, 혹은 지쳐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려고 해도 터미널을 필수적으로 지나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점의 역할을 하는 터미널은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오간다. 버스가 오고, 사람이 내리고, 사람이 타고, 다시 버스가 출발하고, 내린 사람들은 터미널을 떠난다. 사람들은 떠나거나 혹은 돌아오거나, 그 둘 중 하나의 목적성만을 가지고 터미널을 오간다.

 

때문에 터미널은 오가는 사람들의 종착지가 되지 못하며, 일시적인 공간이 된다. 그들에게 있어 터미널은 결코 일상적인 공간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터미널에는 어떤 고민이나 회한이 없다. 출발 혹은 도착이라는 간단한 선택지만 존재할 뿐. 하지만 <터미널에 대한 생각>에서 조명하는 인물들은 일반적인 터미널 이용객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다. 시에 등장하는 목걸이는 파는 여인과, 말없이 자리만 지키는 노인은 ‘출발과 도착’ 중 그 어떤 것의 선택도 하지 않고 목적성 없이 터미널에 존재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 시는 일시적으로 지나치게 되는 통로의 공간인 터미널이 이미 일상의 공간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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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에 대한 생각>의 화자는 터미널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한 발짝 물러나 관찰한다. 3연에 등장하는 목걸이를 판매하는 여인은 수년 전 남편을 잃고, 남편의 보험금으로 터미널 판매대의 한 칸을 마련하여 장신구를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여인은 마음속에 로마로 가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지녔지만, 5연의 “여기서 로마는 멀고 꿈을 꾼다는 건 끔찍한 일이란 듯이 눈을 번쩍 뜨며 낮잠에서 깬다” 라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꿈을 사치로 여기고, 그것도 모자라 꿈꾸는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한다. 

 

또한 4연의 “이게 진짜라는 듯이 여기가 전부라는 듯이” 라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반짝이는 장신구에 현혹되어 터미널 밖의 삶을 애써 잊으려 하지만 이러한 자기 세뇌는 결국 그녀가 터미널 밖으로 향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 먹을 수도 없고 녹슬어버릴 것이 분명한, 하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운 사치품들을 팔며 그녀는 로마의 꿈을 억제하고 본인의 처지를 위로한다. 그녀에게 있어 장신구와 로마는 사치스럽고 허황하지만 간절히 원하는 꿈이며, 그녀가 자신의 유일한 삶의 위로인 사치품을 판매하는 것은 결국 그녀가 자신의 생계를 위해, 또 현실을 위해 본인의 꿈을 스스로 팔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생계를 위해 자신의 꿈을 파는 인물의 삶은, 삶 대부분의 시간을 생계를 위해 일하며 보내는 현대인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시에는 목걸이를 파는 여인과 함께 터미널을 일상적 공간으로 여기는 또 다른 인물이 존재한다. 6연에 등장하는 노인은 몇 시간째 같은 자세로 터미널의 한 자리를 지키며 앉아있다. 6연의 “어제까지 오던 청년이 오늘은 찾아오지 않아”라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노인은 터미널에서 오래도록 오지 않는 청년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늙고 힘이 없는 이유로 직접 청년을 찾아가지 못한다. 단지 항상 기다리던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을 뿐이다. 

 

이 부분에서, 시는 ‘청년’이 가지는 젊음의 속성이 꿈의 희망적인 이미지와 결부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노인이 기다리는 ‘청년’은 누구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불씨이며, 꿈을 향해 도전할 용기이자 희망으로 상징된다. 때문에 노인은 마음 속 ‘청년’, 즉 꿈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노인의 마음 속 ‘청년’은 더이상 노인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노인은 이미 너무 오래 현실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청년’의 상징성을 통해, 독자는 희망과 꿈이 없는 어른은 결국 노인이 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터미널에 대한 생각>은 독자들에게 꿈을 좇으라고 조언하지 않는다. 당장 생계를 버리고 꿈을 찾는 젊은이가 되라고 섣부른 조언을 하지 않는다. 단지 작가는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건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시를 읽는 우리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감화를 느끼고, 시의 인물들에 감정을 이입하고, 그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찾게 된다. 

 

 

“여길 떠나야지 / 떠나서 절대 돌아오지 말아야지 / 때로는 그런 마음으로 주먹을 쥐는, 그러나 곧 다시 되돌아오는 사람이 대부분일 터미널 한구석에서”

 

“인생이 아름답다고 믿을까 그렇다면 아름답지”

 

 

터미널이라는 거대하고 소란스러운 공간에서 고요하게 자신의 굴레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연민을 자아내지만, 연민이라는 감정이 생기는 원인은 아마 그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찾아서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어딘가로 가뿐하게 떠나는 듯싶고, 아니면 다시 되돌아올 만큼 무엇을 사랑하는가보다 싶고,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나의 작은 방과 삶이 한없이 보잘 것 없다고 느껴지는 이 생에서, <터미널에 대한 생각>은 당신의 외로움과 비극이 당신만의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싶었다. 

 

단호하게 주먹을 쥐며 터미널을 떠나는 이들도 결국은 다시 터미널로 돌아오듯,  삶과 현실이라는 굴레에서 우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것은 특별히 다르지 않다. 타인과 나의 삶이 다르다고 느껴지는 데에서 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결국 우리의 믿음에서 오는 것이다. 남들과 내가 다르다는 믿음, 혹은 다르지 않다는 믿음, 혹은 인생이 아름답다는 믿음들 또한 인생의 굴레처럼 반복되는 사념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덜 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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