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을 에고에 관한 이야기로 읽었다. 자의식을 버리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바야흐로 셀프 브랜딩의 시대이다. 타인의 주목을 끄는 지표로 '좋아요'와 댓글이 있고 영향력이 수치로 계산되는 소셜 미디어의 한가운데에서, 세계적 명상가이자 무용가인 홍신자는 반대로 에고를 없애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는 에고를 없애고 번민하지 않으려 인도로, 정글로, 뉴욕으로 떠나서 스스로를 알아간다.
왜 에고를 버려야 할까? 이는 자유롭기 위해서이다.
“자유롭게 태어났으니, 죽을 때도 자유로울 것이다. 삶을 사는 동안 더욱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전히 살고 있다.”라는 프롤로그에서 보이듯 홍신자 님의 삶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단어는 ‘자유’이다. 자유롭기 위해서 그는 기쁨과 슬픔을 숨김없이 표현하고 삶에 얽매이지 않고 놀이처럼 여기며 자식에 대한 애착까지도 놓으려고 한다. 이는 ‘에고’를 버리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보인다.
그가 말하기를 에고는 ‘나는 누구누구’라는 생각이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과장되고 팽창된 인식을 말한다.
에고의 무수한 장난질의 예로 “나는 세계적인 무용가 홍신자다. 나는 죽어선 안 될 만큼 소중한 존재다. 나는 누구에게도 지탄을 받아선 안 될 만큼 고귀한 존재다. 나의 모든 행위 속에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 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받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망상이 무의식 속의 진실인 양 살아나고 이를 저도 모르게 믿게 된다고 한다. 에고를 무너뜨리기 위해 책에서 다양한 고행을 자처한다.
최근 읽었던 책 ‘에고라는 적’이 떠올랐다. 역사를 되짚어 볼 때 지금처럼 자기 스스로를 자랑하고 부풀려서 말하기 좋은 때가 없었다고 한다. ‘중요한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중요한 일을 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우리는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그러려면 ‘자기 자신에 대해 덜 생각하게 되는, 에고에 덜 휘둘리는 마음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자존감은 있으면서 에고는 버리려면 ‘나 자신에 대해 덜 생각해야 하고,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 너무 어렵다. 나를 잊는 일이라니.
한편으로는 이것이 기독교적 가치관과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대로 사는 것을 의미. 이를 ‘내가 죽고 주가 사는 것’이라 표현한다. 나를 잊고 나의 기준과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존재의 기준대로 사는 것. 나에겐 상황과 환경을 통제할 힘이 없음을 인정하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말한다.
"더 이상 나에게 실망할 것도 없고 놀라거나 새로울 것도 없다."는 가수 아이유의 말처럼, 나는 그저 나일 뿐이고, 다른 사람에 비해 특별하지 않다. 장점도 단점도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냥 나를 나로 받아들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 온 걸지도 모른다.
홍신자의 말처럼, 자유롭게 살다가 자유롭게 죽으려면, 과장된 껍데기를 벗고 자유로워지려면 나를 잊고 나를 버리려는 노력을 계속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