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여성 예술가 하이디 부허. 아방가르드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전시<공간은 피막, 피부>는 현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그가 작업하는 영상이 보인다. 하이디 부허가 힘을 주며 무언가를 뜯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마치 집의 껍질을 벗겨내는 모습이다. 거침없이 뜯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고민에 빠진다.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인가?
하이디 부허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키닝(Skinning)’ 기법에 대해 알아야 한다. 바닥과 같은 표면에 라텍스를 바른 뒤 한 겹씩 벗어내는 작업이다.
마치 피부를 벗겨내는 듯한 모습이 연상된다. 하이디 부허는 집의 모든 공간에 라텍스를 발라 껍질을 벗겨낸다. 모든 공간을 다 벗겨내는데 몇 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는 하이디 부허가 어떤 정신으로 집의 공간을 스키닝 하는지 주목해야 한다. 작품 <신사들의 서재 파르케트 플로어링,1979>는 아버지의 서재이며 가부장적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1970년대 가부장적 시대를 살았던 하이디 부허의 비판이 담겼다.
스위스는 1971년 여성 참정권을 얻은 나라이다. 서구 나라 중 여성 참정권을 늦게 받아들인 편이다. 당시 스위스 사회를 잘 보여주는 영화 <거룩한 분노>를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기 위해 찬성 시위를 하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보수적인 스위스 작은 마을의 실화이다. 여성들이 정당한 권리를 쟁취하는 모습과 하이디 부허의 모습이 일치한다.
하지만 스위스 여성들의 항의는 계속되었다. 2019년 스위스에서는 여성 파업 시위가 열렸다. 남성의 평균 임금보다 적게 받은 여성들은 다시 거리로 나섰다. 스위스는 고위직에 종사하는 여성의 수는 적을 뿐만 아니라 남성과의 임금 격차가 크다.
아직까지 스위스 사회는 성별 불평등이 지속되고 있다. 그만큼 하이디 부허의 작품이 지금까지 큰 주목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닥피부는 하이디 부허 선조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공간을 나타냈다. 하이디 부허는 라텍스 특유의 매끄러운 면을 ‘인간의 피부’를 연상하게끔 만든다.
하이디 부허가 의미하는 ‘피부’란 우리가 살아온 과정들 감정과 교류등. 삶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랜 시간 살았던 공간을 스키닝 기법으로 벗겨내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다.
긴 시간 동안 지속된 관념들 그리고 역사까지 모든 것을 한 번에 보여준다. 바닥의 껍질일 뿐이라도 오랜 시간의 경과들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굉장한 작품이다.
내게 깊은 인상을 줬던 작품 <오늘 물은 항아리 밖으로 흘러나온다, 1986>.
베개 위에 놓인 주전자. 흘러나오는 물을 보고 있으니 아찔하다. 주전자는 중심을 잃어 깨질 것 같고, 모든 물은 바닥에 쏟아질 것 같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고정된 상태다. 주전자 물은 라텍스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대로 있을 거다.
시간의 흐름을 포착한 하이디 부허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예술 작품에서 물은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창의력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거대한 존재이기도 하다. ‘물’은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우리의 일상을 지속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존재다.
하이디 부허가 흘러나오는 물을 고정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다시 한번 작품에 주목해보자.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사람들은 베개 위에 주전자를 놓지 않는다. 엎질러지는 상황이 실현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디 부허는 일반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특수한 상황을 만들어 놓는다. 우리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쳤을 때, 중요한 본질을 잊기 마련이다. 당황한 나머지 가까이에 있는 것들이 내 시야에서 배제되는 그런 상황 말이다.
굳어버린 우리의 사고 그리고 시야를 흐르는 물로 표현한 게 아닐까.
하이디 부허(Heidi Bucher)의 회고전은 6월 25일까지이다. 그가 남겨둔 질문과 의미들을 잘 찾아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