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131.jpg

 

 

10주년을 맞아 절찬리에 공연되고 있는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조금 늦게 보고 왔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왔다. 친구가 <여신님이 보고 계셔> OST를 늘 반복해서 들었기에 나도 모든 넘버를 대충 알고 있었고, 어쩌다 보니 전체적인 내용의 줄거리도, 심지어 마지막 반전의 요소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유명한 극이니 궁금하긴 했지만, 스포일러를 이미 다 당했기에 그렇게 큰 기대도 없이 간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웬걸,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넘버와 스토리를 모두 알고 가도 너무나 재밌는 극이었다. 대학로 뮤지컬의 장점인 생생함, 현장감, 애드리브와 관객과의 소통이 극의 몰입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극대화되었다. 내용을 알아도, 예측하지 못한 구성과 전개 순서는 극의 흐름을 뻔하지 않게 만들었다. 각기 다른 여섯 군인의 스토리가 쌓이며 서사가 상승하고, 그 정점에서 여신이라는 존재와 맞닿는 순간, 트루기는 정점을 찍었다.

 

 

FjwsiysUAAAWAdA.jpg

 

 

 

강산이 변해도 통하는 웃음 코드



<여신님이 보고 계셔>(이하 <여보셔>)는 기본적으로 개그와 유머를 바탕으로 한다. 설정은 매우 무겁다. 시대는 6·25 전쟁을 바탕으로 하고,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군인이고, 심지어 남한과 북한의 병사들이 한데 모인다. 북한 병사 네 명과 남한 병사 두 명이 무인도에 고립되는 이야기라니, 배경만 보면 자칫 예민하고 엄중한 부분에 우려된다.


그러나 이를 모두에게 통하는 유머로 승화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람이다. 심지어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인종의 사람이다. 소통이 된다는 거다. <여보셔>의 유머 코드는 무려 10년을 통했다. 강산이 변해도 결국 사람이 웃음을 터뜨리는 근본 코드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강산이 변해도 웃음 코드가 여전한데, 말도 통하고 할 것도 없는 그들이 웃음으로 유쾌하게 승화될 만도 하다.


특히 그 유머에 ‘탈출’이라는 하나의 목적이 생기며 그 개연성은 더 탄탄해진다. 무인도에서 탈출하려면 배를 고칠 수밖에 없는데, 배를 수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북한 병사 순호는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런 순호를 유일하게 위로하고 일어나게 한 이야기가 남한 병사 영범의 ‘여신’ 이야기이고, 그 여신 이야기를 통해 순호가 힘을 얻어 배를 고칠 수 있다니, 기꺼이 이곳의 모든 사람이 그 이야기에 힘을 싣고자 한다.


그러나 터무니없게 느껴지던 그 ‘여신’ 이야기는 이들에게 스며든다.

 

 

Fjwr84FUoAE_WF4.jpg

 

 

 

각자의 여‘신’님


 

보통 우리는 믿음과 신앙의 대상으로 ‘신’을 많이 떠올린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간절할 때는 누군가에게 소망을 담아 기도하기도 한다.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에 대한 이야기를 떠나서, 보통 ‘신’은 초자연적인 존재로 치부되곤 한다. 초인간적인 존재,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는 다른 세상의, 그래서 막연한 믿음이나 상상을 덧댈 수 있어, 가끔은 소원을 빌기도 하고 염원을 담아 떠올리는 존재.


이곳에서 그런 ‘신’은 조금 더 구체화 돼서 나타난다. 막연히 탈출에 대해 빌거나, 정신을 의지하기 위한 존재보다는, 명확한 목표의 존재로 그려진다. 탈출할 기약 없는 무인도에서,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주는 존재, 즉, 자신이 무사히 돌아가서 꼭 만나야 할 존재가 되는 것이다.


영범에게 그런 존재는 딸이다. 부모는 시한부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식의 존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자신이 죽은 뒤 부모 없이 혼자 남을 어리고 작은 자식에 대해 가장 걱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범에게 딸을 더 돌봐줄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 차치하더라도, 자신이 지켜줘야 할, 그래서 반드시 돌아가야 할 목표이자 사랑하는 존재는 딸이다.


창섭에게 그런 존재는 어머니다. 같은 부녀 관계에서 위치는 다르지만, 영범과 맥락은 같다. 창섭의 어머니는 노쇠하다. 영범에게 딸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지켜줘야 할 가족의 존재이다. 자신보다 훨씬 연약하고 아픈 존재. 창섭과 영범은 아들과 아빠로, 가족 구조에서 위치는 다르지만 같은 목표가 있다. 어쩌면 가장 같은 두 사람인 것이다. 그렇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립했고, 마지막에도 가장 적극적으로 상대의 편을 위하는 결정을 한다.


동현, 석구, 주화도 모두 돌아가서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다. 동현은 부모님, 석구는 좋아하는 누나, 주화는 동생. 모두 가족이거나 가족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또 이야기가 차별화되며 갈등과 감동 포인트도 살렸다. 촘촘한 이야기의 구성이다. 어쨌거나 이들은 모두 그들이 다시 찾아갈 그 존재를 꿈꾼다. 그것이 각자의 마음 속 여‘신’이 되어 버틸 힘을 준다.


그러나 순호는 다르다. 순호는 ‘돌아갈 곳이 없어’.



Fjwsiy-VIAAbII9.jpg

 

 

 

유일하게 여신 없는 순호는 직접 여신이 된다



영범, 창섭, 동현, 석구, 주화가 모두 각자의 여‘신’의 존재를 상기하고 고백한 후 부르는 넘버, ‘돌아갈 곳이 있어’. 그러나 그 넘버에 순호는 없다. 순호는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극 중 병사들에게 가장 베일에 싸여 있는 순호의 서사는 관객에게는 빨리 풀린다. 초반부 ‘악몽에게 빌어’ 넘버. 순호는 작전 중 형과 함께 길을 잃었다. 그러나 그건 알고 보니 목숨이라도 부지하고자 했던 형의 무단이탈이었다. 이를 알게 된 순호는 형에게 부대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형은 살기 위해선 도망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둘이 싸우던 와중, 순호에게 날아온 총알을 형이 대신 맞았고, 이는 순호에게 트라우마로 남는다.


이후 현실에서 도피하던 순호가 다시 현실과 소통할 수 있게끔 하는 매개가 ‘여신’이다. 영범이 꾸며낸 이야기. 그러나 앞서 말했듯 여신이라는 존재에 기운을 차리는 순호를 보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이야기를 믿는 양 참여한다. 유일하게 돌아갈 곳, ‘여신’이라는 존재가 없던 순호를 통해 다른 사람들은 다시금 여신의 존재를 되새기고, 각자 삶의 희망과 목표를 되찾는다. 아이러니하지만, 따뜻한 아이러니다.


또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이 극에서 여신이 각자의 믿음과 꿈, 목표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공동체의 규범과 믿음과 꿈을 상징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여신이라는 존재가 생겨나며 이 사회에서는 규칙과 규범이 생긴다. 정해진 곳에서 볼일을 볼 것, 폭력은 쓰지 말 것, 있는 것은 공평하게 나눌 것 등. 사람답지 않은 삶을 살던 이들이 가짜의 여신이라는 존재가 있는 듯 굴게 되며 오히려 현실에서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이들에게 또 다른 의미의 ‘여신’, 즉, 현재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공동체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존재는 순호였던 것이다. 순호의 여신 사랑을 통해 이들은 현재의 온전한 삶을 누리는 방법을 찾았고, 이 사회 내에서 화합과 소통의 방법을 배운다. 이는 ‘꿈결에 실어’ 넘버에서 직관적으로 구현된다. 모두 잠이 든 밤, 여신이 병사 하나하나에 손짓을 건네는데, 이때 순호 역시 여신과 같은 손짓으로 한 명 한 명의 아픔을 흩날려 준다.


영범, 창섭, 동현, 석구, 주화. 인물 개인에게 여신은 따로 존재하지만, 이들이 함께 모여 살게 된 이 무인도의 이 사회에서 여신은 순호였다.


결국, 유일하게 여신이 없던 순호도 자신의 여신을 찾는다. 내면의 발화. ‘보여주세요’ 넘버에서 순호는 자신의 아픔을 극복한다. 전쟁과 싸움에서 남은 트라우마, 트라우마에 대한 두려움으로 늘 기피 하던 현실을, 처음으로 마주 보고자 결심한다. 이 또한 영범을 비롯한 동료가 없었다면 얻지 못했을 힘. 여신의 ‘그대는 또 다른 나였음을’ 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사회의 규범과 중심이었지만, 정작 자신의 목표는 없었던 순호는, 역으로 이 동료의 따뜻함과 사랑을 통해 스스로 일어난다.


 

FjwsizoVIAA_b4E.jpg

 

 

 

넘버도, 스토리도, 캐스팅도 완벽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정말 완성도와 개연성이 높은 스토리, 분명하고 특색있는 캐릭터, 와중에 빵빵 터뜨려주는 유머를 모두 담아 하나의 결말로 엮은, 정말 좋은 극이었다. 가족이라는 개인사에 분단국가라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아픔과 상처를 함께 녹이며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감동과 울림을 주는 극이었다.


사실 남한과 북한 간 금기의 우정이라는 키워드는 생각보다 클래식한 키워드이다. 2000년에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부터 시작해서, 2005년 <웰컴 투 동막골>, 결은 조금 다르지만, 웹툰·영화·뮤지컬이 다 있는 <은밀하게 위대하게>, 최근에는 영화 <공조>까지. 그러나 익숙한 소재에 ‘여신’이라는 환상적인 소재를 자연스럽게 녹였고, 이를 아름다운 선율의 넘버와 아기자기한 무대가 커버하며 이 작품만의 차별화 요소가 두드려졌다.


좋을 것 알았지만, 정말 더 좋아서 마음이 벅차올랐다. 특히나 순호를 위해 병사들이 왈츠를 추며 정찰비행기를 피할 때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 급박한 순간에도, 순호를 위하는 그들이 되었다는 것이, 남북한이고 나이고 상관없이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 때문에 죽을 뻔했는데, 또 사람을 살리는 것도 사람이라서. 처음에 소외당하던 순호가 이제 모두의 중심이 되고, 서로 총을 겨누는 사이에서 이렇게 애틋한 가족이 되다니.


마지막 헤어짐 앞에서, 다시 안 만나는 게 더 좋은 일이지 않겠냐고 묻는 창섭에 영범은 대답한다.

 

 
혹시 모르잖아요. 일단 우리, 오래오래 살아요.
 


6·25 전쟁이 정전된 지도 70년이 지났다. 그때의 순호, 영범, 창섭, 동현, 석구, 주화들. 각자의 여신을 찾아 다, 잘 살고 있을까.

 

 

 

태그_주영지.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