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에밀 졸라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테레즈 라캥>을 대학로 드림아트센터에서 만났다. 간혹 관심 있는 연극이나 뮤지컬이 있으면 종종 찾곤 했는데, 뮤지컬은 보통 유명하다고 하는 작품 위주로 관람을 했다. (생태계는 잘 모르지만) 유독 잘 팔리는 뮤지컬은 주기적으로 돌아오기에, 익숙한 제목을 가진 뮤지컬부터 눈길이 가곤 했다.

 

따라서 일찍 매진되는 유명 배우의 회차는 관람하지 못하지만 연극, 영화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뮤지컬만의 판타지 성을 즐기곤 했다. 대사와 프레임이 아닌, 소위 ‘넘버’라고 하는 아름다운 노래의 선율이 이끄는 세계로 빠져들다 보면 '무대'가 주는 직관성과 조화로 가득한 판타지 성에 흠뻑 빠져들었다.

 

 

메인 포스터.jpg

 

 

원작의 내용과 거의 같은 속도로, 뮤지컬의 서사가 전개되는데 그래서 그런지 설명되어야 할 부분은 많이 삭제된 느낌이었다. 원작이나 '테레즈 라캥'을 모티프로 한 영화 <박쥐>를 모르는 이들은 따라가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테레즈를 향한 카미유의 구애가 극 초반부터 바로 시작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무대)으로 걸어들어온 로랑은, 카미유의 초상화를 그려주겠다고 하더니 테레즈와의 욕정에 쉽게 휩싸인다. 극 초반부터 시작된 자격지심 가득한 카미유의 구애나 로랑의 태도가 다소 불편했지만, 19세기 프랑스를 그린 내용의 원작이니 감안했다.

 

하지만 '테레즈 라캥'은 사실, 그런 불편함을 전혀 불러일으키지 않아도 되는, 인간 이기심의 발로와 욕망의 오르내림을 면밀하게 탐구한 작품이다.

 

그래서 설명이 더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원작을 읽었을 때 꽤 각색하기 난해한 작품이라고 생각은 했다. 소설에서는 테레즈와 로랑의 심리와 생각이 치밀할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서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작품은 캐릭터의 성격과 기질을 과학적으로 탐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묘사는 다 생략이 되고, 대사가 있는 부분만 장면화된 지점이 아쉬웠다. 이들의 심리와 전사 등이 설명되는 장면이나 노래가 있었으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이들의 불안한 심리를 관객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마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테레즈와 로랑이 카미유를 죽음까지 못 바탕에는, 인간 본연의 이기심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해서 범죄까지 저지를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하지만 테레즈는 카미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로랑은 아름다운 테레즈와 집을 가지기 위해, 이익에 맞아떨어진 계산을 한 것뿐이다. 당장의 이익을 바라고 덤비는 자들의 최후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그들은 범죄를 저지를 만큼 대담하지 못한 소시민적 기질을 지니고 있다. 파리의 하층민인 그들의 비극은 따라서 절대로 치정, 욕망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현재의 삶을 망각하기 위한 수단으로 욕정을, 범죄를, 죽음을 택한 것이다.

 

욕망을 부정할 수만은 없다. 어쨌든 살아있게 만들고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게도 만드니까. 하지만 단순히 현재의 불편함을 망각하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을 좇는 게 문제이다. 테레즈도 처음에는 그저 살아있기 위해 로랑과 몸을 섞었을 것이다. 이는 단순 성적 욕망에 국한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인간은 늘 욕망하고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러한 본성을 부추기는 장본인이 인간의 '이기심'일 때, 인간은 인간이기를 망각하는 단계까지 이르른다.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이 가장 잘 발현될 때는, 절박할 때이다. 심리적으로 환경적으로 억압을 받고 있을 때 인간은 더욱더 이기적으로 굴기 쉽고, 이러한 상황에 처한 테레즈의 심리가 더 잘 표현되었으면 어땠을까. 단순히 육욕에 의해 이끌린 것처럼 표현된 게 아쉬웠다.

 

 

캐스팅공개사진_220621.jpg

 

 

 

카미유 죽음 이후 전개되는 <테레즈 라캥> 후반부의 에너지



극적 사건에 해당하는 카미유의 죽음은 클라이막스 부분이 아닌, 극 중반에서 이루어진다. (원작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 작품은 그 이후의 에너지가 중요하다. 카미유의 죽음 이후 자신들을 기어코 파멸로 이끄는 테레즈와 로랑의 몸부림은 단연 클라이막스이다.

 

그러나 텍스트가 아닌 무대 위에서 직접 에너지를 몸으로 부딪히니 꽤 고통스러웠다. 이야기를 무대 위로 옮기는 만큼, 이 에너지를 조금 다른 파형으로 조합했으면 어땠을까. 대사가 너무 직설적이기도 했고, 내가 느끼기에는 후반부에 함께 노래하는 세 배우의 에너지가 무조건 뻗어나고만 있어 다 받아내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한편, 카미유 역을 맡은 이진우 배우의 연기는 그 와중에 굉장히 밸런스를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 이후에 무대에 유령으로 등장하는 그의 연기는 작품의 톤앤매너를 여실히 보여주는 후반부에서 더욱 빛이 났다.


분명 <테레즈 라캥> 특유의 어두움과 기이함은 다른 뮤지컬에서는 볼 수 없는 매력 포인트이다. 다만, 조금 더 섬세하게 그 매력을 전달해주었으면 어땠을까. 테레즈와 로랑이 육욕에 의해 거칠게 이끌렸지만, 그들의 이성과 이기심은 꽤 섬세하게 작동했다. 복잡하고도 그 미묘한 감성과 이성의 조화를 한번 더 관람하게 되면 충분히 이해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민지연.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