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을 시작한 지는 이제 반 년이 넘었다.
보통 사람들은 복싱하면 다이어트 운동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나는 반 년 전과 비교했을 때 외적 부분에 있어 별다른 변화가 없다. 그래도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복싱장에 드나들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꾸준히 하고 있다'라는 안정감. 그게 변화라면 변화일 것이다.
복싱장의 문을 처음 두드린 것은 작년 가을이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마이네임'을 보는데, 복싱을 하는 주인공이 너무 멋있었다. 보통은 그저 '와 멋있다'라고 감탄하는 데에서 끝났을 테지만 왠지 그날은 달랐다.
동네 복싱장 전화번호를 검색하고, 전화도 걸었다. 아, 등록도 했다.
운동 첫날. 줄넘기를 각오하고 갔지만 오히려 복싱의 꽃은 줄넘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체력단련이라는 사실만 알게 됐다.
끝도 없이 스쿼트하는 사람들 옆에서 나는 한 손으로는 머리를 짚은 채 기둥에 기대어 있었고, 플랭크를 60초 동안 하고 있는 사람들 옆에서 나는 쓰러져 있었다.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 빼고 거의 한 적이 없으니 당연했다. 운동 중에서도 복싱이 힘들다고 하는 말이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었구나 생각하면서, 정말 거의 기어서 집에 들어갔다.
첫날의 고비가 체력단련이었다면, 다음 날의 고비는 쉐도우 복싱이었다. 복싱의 시작인 '잽잽원투'를 배웠으니, 이제 진짜 복싱을 시작하게 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아무도 어렸을 때 발레를 배웠다고 믿지 않을 만큼 뻣뻣한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상하게 펀치를 날리는데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그것도 자연스러운 춤이 아닌 말로 표현하기조차 힘든 괴상한 몸짓을.
잽을 날리는데 어딘가 엉거주춤했다. 스텝부터가 들쑥날쑥하니 그 위에 얹는 펀치가 당연히 어설플 수밖에. 이대로라면 새로운 동작을 배워도 끝도 없이 어설프겠다는 생각에 익숙해질 때까지 하루 종일 스텝만 뛰었다. 그렇게 첫 두 달까지, 나는 내리 쉐도우 복싱을 할 때엔 스텝만 뛰고, 샌드백을 칠 때엔 '잽잽원투'만 날리면서 복싱장을 다녔다.
이후에 새로운 동작을 배워도, 항상 그날 연습의 시작은 스텝과 '잽잽원투'였다. 기분 탓인지,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동작을 배울 때의 내 움직임이 예전만큼 이상한 것 같지는 않다. 저번까지는 정말 허우적댔다면 이제는 그냥 휘청거리는 정도?
단순히 내 느낌일 수도 있겠지만, 다 꾸준히 스텝과 '잽잽원투'만 연습한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퍼를 배울 때 그제서야 훅을 배우고, 위빙을 배울 때 그제서야 어퍼를 배웠으니 반 년을 넘게 다녔어도 아직 배울 자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도 쉐도우 복싱을 시작할 때면 스텝부터 뛸 거고, 샌드백을 칠 때면 '잽잽원투'부터 칠 거다. 그렇게 이제까지 해 왔으니까.
복싱장 코치님이 잽을 가장 세게 날리는 사람은 적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잽에 기술을 입힌 훅이나 어퍼를 필살기로 갖고 있다고 하시더라. 그 말이 생각날 때는 순간적으로 마음이 동해서 바로 훅을 날릴까 싶다가도, 곧 훅의 시작도 잽이고, 어퍼의 시작도 잽이라는 생각에 다시금 잽으로 자세를 고쳐 잡는다.
나는 잽을 세게 날리는 그 적은 사람이 되어야지. 훅보다, 어퍼보다, 그 어떤 다른 기술보다 잽을 가장 세게 날리는 그날까지, 오늘도 잽잽원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