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됐다.
요즘 따라 별안간 몰아치는 비바람 때문에 뒤숭숭한 날이 잇따랐다. 오늘도 역시나 기분이 썩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이렇게는 안되겠어.' 마음속에 작게나마 살아있던 긍정적인 기운이 툭툭 나를 건드렸다. '그래, 뭐라도 해보자'.
지금 이 우중충한 기분을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는 적성에 맞는 행동이 필요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나 산책이었다. 어떤 동기가 없어도 그저 발걸음이 닿는 대로 걷기만 하면 되는 꽤 간단한 행동. 걷는 동안 많은 것들을 눈으로, 귀로, 코로 담을 수 있는 자극 넘치는 행동. 기나긴 집콕으로 무너진 건강과 활력을 되찾아 줄 기분 좋은 행동. 역시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해낼 수 있는 건 산책이었다.
단번에 채비를 마쳤다. 물, 에코백, 작은 책, 볼펜 한 자루까지. 나름 완벽하다고 생각하면서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정수리 뒤편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오후에 비 온대. 우산 챙겨가." 순간 집 밖을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우산까지 챙기고서. '후 나가기 참 힘드네.'
철컥. 문이 열렸다. 바로 이어 삐리릭. 문이 닫혔다. 그렇게 어느 한 산책자의 예술로의 첫 번째 여정이 시작됐다.
*
Episode #1. 문래창작촌을 거닐다
쿠궁쿠궁.
"다음 역은 문래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출입문이 열립니다."
출입문이 열림과 동시에 꾸역꾸역 계단을 부지런히 올라섰다. 마지막 한 칸을 올라선 끝에 드디어 새로운 땅에 발을 디디였다. 이곳도 우리 집 동네와 다를 바 없이 우중충한 기운이 겉돌았다. 금방이라도 뚝 굵은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은 하늘이다. 온몸을 감싸는 습기가 무거운 탓인지 괜히 몸은 무언가에 짓눌리듯 찌뿌둥했고, 마스크로 뚫고 들어오는 공기의 맛은 쌉싸름하게 느껴졌다. 여름이다.
뚜벅뚜벅.
문래역 7번 출구로 나와 쭉 걸었다. 그러다 마주한 갈림길 하나. 서 있는 나를 기점으로 왼쪽은 골목길, 오른쪽은 큰 길가였다. 고즈넉하고 조용한 골목길을 선호하기에 주저 없이 왼쪽을 택했다. 들어선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확 몰려왔다.
마주한 풍경은 다소 낯설고 기괴하게 느껴졌다. 스릴러 영화에나 나올 법한 으슥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잇달아 이어졌다. 어떠한 색도 찾아볼 수 없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가게의 높이만큼 거대하고 긴 철로 된 막대들이 한곳에 뉘여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특유의 금속 냄새가 훅 스며들었다. 사방에는 찌지잉 하고 찌릿하고 쨍한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마치 매미 우는소리와 비슷하게 들려, 아직 오지도 않은 매미를 그곳에서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눈, 코, 귀까지 온몸의 감각을 무자비하게 자극하는 공간이었다.
그렇다. 이곳은 철공소 공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