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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 남을 불쌍히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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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은 맹자로부터 나온 말로 유교의 영향을 받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말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남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착한 사람이 하는 행동이라고 받아들여지곤 한다.

 

남을 불쌍히 여기고 돕는 마음이 착한 것이라는 인식은 기부금을 모으는 여러 기금 방송들에서 활용하기도 한다. 아득한 음악과 함께 힘든 상황의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그것을 보는 시청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불쌍해하기를 그리고 그 동정의 감정이 자선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방송들 말이다.

 

하지만 나는 요즘 이러한 동정은 곧 선함이라는 인식을 계속 굳히는 사회적 풍토가 과연 좋은 것인지 의문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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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퀴즈에서 소방관 한 분이 말씀하셨다. 우리를 왜 불쌍히 여기는지 모르겠다고, 우리도 잘 먹고 잘 사는 어찌 보면 국가 공무원으로 남들보다 안정적으로 사는 입장인데 사람들은 자신들을 동정한다고 말씀하셨다.

 

다른 예도 있다. 신체의 불편함을 가진 분들은 때론 도움을 받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고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데 사람들은 자신들을 불쌍하게 보고 동정심에 기반한 도움을 베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목소리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왜 불쌍하게 보는 것이 나쁜 것인지 이들이 예민한 것이 아니냐며 그저 도와주려고 한 것뿐인데 동정하는 것도 나쁜 것이냐며 되려 승을 낸다.


하지만 동정의 시선을 받아본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그걸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어떤 의미로 저분들이 저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것이다.


동정했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바로 일방적인 동정을 베풀었다는 점이 어쩌면 받는 이들의 반발을 일으키는 것이다. 상대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안다고 생각하고 동정심으로 다가가는 것은 어쩌면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굳이 소방관 혹은 신체적인 불편함을 가진 사람들과 같은 케이스가 아니라도 이러한 일방적인 동정에 대한 불편함은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많이 드러난다. 그 예로,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한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몇 년 전, 고시에서 고배를 마신 후 모처럼 친구들과 만나려고 약속을 잡았다. 사실 시험에서 탈락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오래간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어떤 맛있는 것을 먹을까 와 같은 생각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나쁜 상태가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 어떤 한 친구가 내가 카톡을 보낼 때마다 억지로 행복한 척하지 않아도 된다며 내가 어떤 말을 하던 비련의 여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슬픔을 참고 웃어 보이는 것처럼 해석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 친구가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려고 위로해 주려고 하는 행동으로 이해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친구의 그러한 태도는 내가 본래 지니고 있던 긍정적이고 행복한 감정도 우울하게 만들어버릴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친구의 연락만 받으면 나는 나 자신이 불쌍하고 슬픈 안타까운 존재로 비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러한 반복된 경험은 그 친구와는 연락을 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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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행동하든 간에 그 친구는 항상 나를 동정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점, 그러나 딱히 그 친구가 나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는 점, 그 친구의 동정으로 인해 내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자존감만 무너진다는 점 등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즉, 이러한 동정은 타인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오로지 주변 사람을 챙길 줄 아고 어른스럽고 선한 존재라는 본인의 만족감, 그리고 본인보다 가엽고 도와줘야 하는 불쌍한 존재로 인식함으로써 자신은 그런 존재보다 나은 상태라는 만족감을 위한 이타심으로 위장한 이기적인 동정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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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진심으로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고 좋았던 친구의 태도는 달랐다. 그 친구는 나의 감정을 함부로 짐작하거나 판단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실패를 겪었다고 슬퍼하고 좌절하고 있을 것이라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았고, 그리고 함부로 불쌍해하지 않았다. 그러한 친구의 태도로부터 나는 나의 삶의 모습에 대한 친구의 존중과 배려를 느낄 수 있었고, 이러한 부분은 그 친구와 오랫동안 친구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정리하자면, 함부로 동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삶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나름의 삶의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행복하게 살았는데, 누군가가 함부로 당신은 너무 힘들고 비참하게 살았네요라는 평가를 하며 선심을 베푼다면 과연 어느 누가 기분 좋게 그 동정을 받을 수 있을까.


즉, 누군가를 정말로 돕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그 사람이 지녀야 하는 태도는 자신의 시선 안에 갇혀서 타인을 동정의 대상으로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상대방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반 친구가 어느 날 오른팔을 조금 다쳐서 필기하는 데 도움이 필요할 때 당신은 그 사람을 불쌍하다고 생각해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필기를 못 하는 친구의 입장을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장애를 가진 친구가 반에 있을 때는 그 학생을 동정의 시선을 불쌍하게 생각해서 도와야 한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과연 그 동정의 시선에 기반한 도움을 평생 동안 받는다면 그 사람은 좋을까? 자신의 삶에 대한 자존감을 가질 수 있을까?


김연아가 가수 스티비 원더에게 베풀었던 친절은 그녀가 베푼 친절이 단순히 그 가수를 불쌍하다는 동정심을 가지고 도움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불편한 점에 대한 객관적인 배려와 존중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휴 저 사람 불쌍해하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이 나보다 불쌍하다는 상대적인 비교를 통한 평가에 불과할 뿐 진정으로 도움을 주는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자신의 시선으로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고 동정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배려와 존중의 마음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진정한 도움을 주는 자세라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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