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어... 도무지 모르겠어”
헤이안 시대의 교토 도성문의 하나였던 라쇼몽에 비가 한량없이 쏟아지는 배경 속에서 나무꾼이 도무지 모르겠다는 혼잣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나무꾼은 사무라이인 타케히로의 사체를 발견한 목격자로, 조금 전 법정에서 진술하였으나 사건에 대한 의문을 풀지 못하는 모습이다.
사무라이 죽음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영화 <라쇼몽>은 사무라이의 아내인 마사코의 강간 사건에 얽힌 사무라이 타케히로의 죽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목격자 나무꾼 이외에도 포졸에 의해 체포된 도적 다조마루와 죽은 타케히로의 아내 마사코도 법정에 서게 된다. 이때 다조마루와 마사코의 증언이 법정에서 전혀 다르게 진술되면서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다조마루는 다케히로와 정정당당하게 싸운 끝에 무사가 쓰러졌다고 했다. 그러나 마사코는 다조마루한테서 강간을 당한 후 자신의 남편 타케히로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애원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마사코 자신이 무의식중에 착란을 일으켜 타케히로를 죽였다고 했다.
무당의 입을 빌려 진술하는 타케히로의 사령마저 마사코가 다조마루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다 하나, 다조마루가 역으로 마사코를 죽일까 살려줄까를 물어보았다고 했다. 주저하는 사이에 마사코는 도망을 가버리고 다조마루도 포승줄을 끊어주고는 모습을 감춰버린다.
결국 타케히로는 숲속에 떨어져 있던 아내의 단도를 주워서 그것으로 자살했다는 것이다.
세 사람의 증언은 결국 목격자인 나무꾼의 진술에 의해 위증이라는 것이 밝혀지는데, 다만 나무꾼마저 마사코의 단도를 훔쳤다는 단 하나의 사실로 볼 때 그의 진술과 행위마저도 결국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작품은 과연 실체적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라는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영화 <라쇼몽>의 첫 번째 대사인 “모르겠어... 도무지 모르겠어” 부분을 중심으로 사건에 대한 객관적 진실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인간이 무서워 도망친 도깨비라는 문구를 통해 인간관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
“모르겠어... 도무지 모르겠어”
작품의 첫 장면은 나무꾼의 “모르겠어... 도무지 모르겠어”라는 독백으로 시작한다. 작품 전개 과정에서 ‘모르겠다’ ‘알 수 없다’ ‘의심이 간다’ ‘거짓말이다’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작품의 엔딩까지 생각나게 한다.
작품은 주인공들이 재판장이 보이지 않는 법정에서 증언을 하면서 오히려 관객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기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즉 관객이 법정의 재판장처럼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없이 의심하고 회의하면서 진실을 추구해간다는 것이다. 다만 서로 다른 증언들로 인해 작품이 처음부터 끝까지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주조를 이루고 있었다.
지금까지 사건의 당사자인 다조마루와 마사코, 타케히로의 증언은 각각 전혀 달랐다. 작품은 객관적 진실은 과연 무엇인지, 존재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생각해 보면 ‘객관성’과 ‘진실’이란 단어는 역설적이다. 즉, 객관적인 진실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제 N자가 나타나는 이상 객관성은 사라진다. 각자의 견해로 인해 사건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작품 이야기로 다시 들어가 보면 사건의 증언들이 객관성이 아닌 주관성 그대로다. 자신의 명예, 이익을 위해서만 증언을 하는 모습은 객관적인 진실이 무너지는 모습 같았다.
사람이란 각자 유리한 대로 믿기 때문에 기꺼이 기억을 왜곡시킬 수도 있으며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 유일한 진실로 기억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무서워 도망친 도깨비
작품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인 천민은 버려진 아이의 겉옷을 벗겨 어디론가 유유히 사라지면서 인간이 자기 생각만 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는 세상이라고 외친다.
라쇼몽에 있는 도깨비도 인간이 두려워서 멀리 도망을 갈 정도로, 인간의 이기적이고 자기 합리화뿐인 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천민의 말은 인간을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므로 신뢰할 수 없다고 하는 ‘성악설’을 대변하는 듯했다.
작품의 최후 장면에서 나무꾼은 마사코의 단도를 훔친 것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아기를 입양하려고 한다. 이는 나무꾼이 인간에 희망을 가지고 신뢰해보려고 하는 ‘성선설‘을 대변하는 듯했다.
영화 <라쇼몽>은 패전으로 인해 인간의 마음이 황폐화되어감에 따라 욕정과 탐욕을 추구하는 이기심과 자기합리화 속에서도 인간을 신뢰해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라쇼몽과 같은 장면이 많다. 다만 공동체의 의미가 큰 이 시대에 개개인의 이기심을 드러내지만 말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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