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예술이 보장받아야 하는 이유를 꼽는다면 그 자체로 자유롭기 때문이지 않을까. 형식과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 거대자본이 투입된 예술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독립예술만의 독점적인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메인스트림에서 관람자의 보편적인 니즈에 맞지 않는 예술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다각도로 해석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콘텐츠에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오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예술이 좋고 나쁘다는 것을 가르려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예술에 대해서 대중에게 더 많이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줄곧 해 왔다.
그리고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그들을 위해 힘쓴다. 설 자리를 잃는 예술가들의 무대를 제공해 주고, 편견 없는 예술을 원하는 관객의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곳. 내가 보고 느낀 프린지의 모습은 이러했다.
이 페스티벌은 참 독특하다. 물론 페스티벌을 많이 가 본 것은 아니지만 아마 어딜 가도 이런 페스티벌은 처음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새롭다. 다양성을 품고 있는 예술가들의 모습과 축제의 운영 방식이 꽤 유사하다.
먼저, 공연 자체의 본질적인 의미를 해체하고 새롭게 의미를 재구성한다. 화려한 무대 세트와 조명, 귀를 가득 메우는 음향시설이 있는 기존 공연장에서 지정된 좌석에 앉아 온전히 공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일상에서 지나다니던 공간들을 공연장으로 활용하여 관객과 아티스트의 색다른 차원의 소통을 느낄 수 있게 하거나, 관객이 직접 몸을 움직이며 공연을 관람하는 방식은 공연 자체의 본질적인 의미를 완전히 전복시켜버린다고 느꼈다.
관람할 수 있는 콘텐츠의 주제에서도 색다른 참신함이 돋보였다. 현재의 예술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는 실험성을 지향하는 대안 예술의 의미 그대로, 사회적 이슈를 예술에 녹아내며 소통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접할 수 있었다. 앞 단락에서 독립 예술이 사고를 확장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이다.
메인스트림에서 외면하고 있던 문제를 제기하거나, 그 누구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안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덕분에 나도 프린지페스티벌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아티스트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은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재구성할 수도 있고,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편견들을 문제로 제기하며 관람객들을 선택의 기로에 배치하기도 한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끔. 그러나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예술을 통해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공통적인 목표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모두 같은 곳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물들자, 이곳이 변화의 흐름의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또한 생기게 됐다. 가장 안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머무르지만은 않는 곳.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올해도, 내년에도 계속해서 그런 곳으로 관람객들의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