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목록을 훑어보던 중 눈에 띈 제목이었다. “레이첼, 하얀 흑인(원제: The Rachel Divide)”, 본 적이 없는데 왠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어 찾아보니 몇 년 전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방영되었던 “레이첼 돌레잘”과 관련된 내용의 다큐멘터리였다.
2015년, NAACP(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 워싱턴 스포캔 지부장이자 동워싱턴대학에서 아프리카 연구프로그램 시간 강사로 일했던 레이첼 돌레잘이라는 흑인 여성이 사실 백인이었음이 드러난 이 사건은 미국에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해당 지역방송국 기자가 레이첼에게 그의 인종에 관해 질문하자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자리를 피하는 장면이 방영된 이후 레이첼의 친부모가 방송에 출연해 그가 백인임을 밝히면서 “흑인 행세를 한 백인”이라는 수식어가 그의 이름 앞에 붙는다.
논란 이후 레이첼은 NAACP 지부장에서 사퇴하고 활발하게 참여했던 사회 활동에서 물러난다. 이 다큐멘터리는 레이첼이 백인이라는 것이 폭로된 이후의 삶을 조명하고 그와 가족, 관련 인사들 및 해당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로르샤흐 검사 같은 거예요. 그를 사기꾼이라고 믿고 싶으면 사기꾼으로 보이는 거고, 다른 사람과 같이 복잡한 삶을 견디고 있는 사람이라 믿는다면 그런 사람으로 보이는 거죠.”
로르샤흐 검사는 잉크로 얼룩진 그림을 보여주며 그 얼룩이 무엇처럼 보이는지 물어보는 방식으로 환자의 대답에 따라 인격 장애의 진단을 내릴 수 있는 테스트이다. 동일한 잉크 얼룩에도 보는 사람마다 다른 사물을 연상할 수 있듯이, 레이첼 돌레잘이 어떤 인물인지와 그의 행동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다큐멘터리는 하나의 의견에 고정하지 않고 레이첼을 포함한 관련 인물들의 일상과 그를 향해 극명히 갈리는 의견을 충실히 전달한다. 레이첼이 사기꾼인지, 그게 아니라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결정은 시청하는 이의 몫이다.
논란 이후 레이첼은 전과 다른 일상을 보낸다. 외출할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들의 모습을 촬영하고, 차들은 경적을 울린다. 자신이 공부한 아프리카 문화에 관한 강의를 하거나 관련 직종에 종사하고 싶어 이력서를 보내도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다. 여러 방송 인터뷰에 응하며 SNS를 통해 자신을 알리고 스스로 정한 정체성의 삶을 이어가려고 한다. 그의 아들들은 어머니를 지지하고 사랑하지만 동시에 그의 활동에 의구심을 표하며 평온한 일상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레이첼이 거짓말을 해 NAACP와 흑인 활동의 진정성에 먹칠 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그가 자신을 혐오 범죄의 희생양으로 보이게끔 자작극을 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이들은 이전에 다른 흑인 지부장들은 받지 않았던 양의 협박 편지를 어째서 돌레잘은 그렇게 많이 받았던 것인지에 의구심을 품으며, 그의 인종 여부를 떠나 거짓말을 한 레이첼로 인해 앞으로 흑인 사회를 위한 옳은 주장과 활동을 NAACP가 이어가는데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포캔이라는 지역 자체가 다양성이 보장되는 곳은 아니었으며 실제로 레이첼이 받았다는 협박 편지와 비슷한 것을 자신도 받았다고 주장하는 지역 기자를 포함해 레이첼의 선택과 그가 확립한 정체성을 지지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그 주장들은 그가 지역 내 “Black Lives Matter(흑인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을 주도하고 경찰 활동을 감시하는 등 지역을 위해 긍정적인 활동을 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논란은 계속 이어진다. 인종을 바꾸려는 그가 성전환자와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논란을 포함해 미디어에서는 그에 관한 논평이 이어지고 다큐멘터리에서 돌레잘은 자신의 지나온 가정환경에 대해 고백한다. 보수적인 백인 가정에서 태어난 돌레잘은 부모님이 흑인 형제자매들을 입양한 후 흑인 문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접하려 했고 이후 친부모가 자신과 형제자매를 학대했기에 그들과 인연을 끊었다는 것이다. 돌레잘은 그 과정이 다른 정체성을 가지게 된 계기였다고 말한다.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면서, 그를 향한 상반된 두 의견 중 내가 분명히 속하는 곳은 없는 것 같았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과거에 친부모의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와 흑인문화를 동경했던 마음이 그가 다른 인종으로 살아가게 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안타까움이 들면서도 동시에 여러 인터뷰에서 “나는 흑인인 척하지 않았어요.”라는 대답은 납득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단순히 외모만 바꾸고 흑인이라고 주장한 것도 아닌데 흑인 인권을 위해 일했다는 그에게 흑인 사회가 지나친 배척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흑인 여성이 돌레잘에게 말했듯, 자신이 흑인이기에 겪었던 고용 차별, 학교나 물건을 사러 갈 때와 같은 일상에서의 차별, 인종 프로파일링을 겪지 못한 당신이 어떻게 스스로 흑인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은 단순한 배척으로만 볼 순 없을 것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으로 인한 차별이 분명히 자리하고 있기에 흑인인 이들이 자신들이 주류가 되는 흑인 커뮤니티에서 돌레잘을 배척한다는 식의 지적은 위험하다. 흑인 여성으로서 미국 사회 내에서 차별을 받으며 산 구성원이 아닌 이상, 온전히 그들이 경계하는 바에 대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이의 잉크 자국은 더 번짐 없이 그대론데, 그에 대한 말들은 계속 퍼져나간다. 그리고 수많은 말의 중심에 자리한 인물은 자신의 삶을 계속 이어간다. 앞서 언급한 흑인 여성의 말에 돌레잘은 ”제가 한 행동과 선택이 여러분을 상처 주거나 화나게 했다면 사과할게요. 하지만 저는 사라질 수 없어요. 저는 저 자신으로 살아가야 해요,“라고 답한다. 그 말처럼 돌레잘은 자신이 선택한 정체성을 지키며 이어나가기 위한 삶을 살아간다.
레이첼 돌레잘이 변장과 거짓의 가면을 쓴 사기꾼인지,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치료가 필요한 사람인지 혹은 또 다른 누군가일지에 대한 결정을 나는 할 수 있을까? 그에게 보내야 할 것은 비판일까 아니면 응원일까? 잉크 번짐은 내게 분명하지 않고 흐릿한 모양이다. 내가 놓치는 사실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나의 의견을 분명히 하는데 머뭇거리고 있음일까. 그 역시 어느 하나라 말하기 모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