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를까? ‘샴푸’라고 답하는 사람이 대다수 일 것이고 영화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화관련 단어라는 걸 떠올릴 것이다. 이는 프랑스에서 생긴 단어로 ‘Mise en scène’, 직역하자면 ‘무대에 배치한다’라는 뜻이다.
영화의 한 장면에는 배우의 연기와 대사도 있겠지만 배경설정을 위한 구성도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설정되는 모든 것이 영화의 미장센이다. 단순히 아름다움을 위해서든 상황의 개연성을 나타내기 위해서든 영화의 장면 안에 담기는 것이라면 의상, 조명, 카메라의 구도, 소품 등 가리지 않고 모두 미장센이라 할 수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 접근하자면 이와 같지만 사실 이런 글 몇 줄로는 확 와 닿지 않는 개념인 것도 사실이다. 이 추상적인 개념에 조금 더 접근하기 위해서 화면 구성이 아름다운 영화 중 하나인 영화 ‘그녀’의 미장센을 색감과 조명을 중점으로 분석해 보았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둠은 공포와 불안, 빛은 편안함과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또 노란 색 계열은 따뜻함과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푸른 색 계열은 우울함과 날카로운 느낌을 준다. 이런 색채가 주는 분위기와 이미지에 대해 떠올리면 더욱 다채롭게 영화를 파악할 수 있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다른 이들의 마음을 아름다운 문체로 전달해주는 대필 작가로 일한다. 자신은 늘 로맨틱한 글들을 쓰지만 정작 그의 생활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아내와의 별거 생활 후 그의 삶에는 생기가 사라져 보인다.
![[크기변환][포맷변환]캡처.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1908/137bed2ac39fbe4f84e1fe2b9022523e_ipM7GtaElkNQMuUPTxjOMFKBbyO1O.jpg)
퇴근하는 그의 주변은 칙칙하고 먼지가 낀 듯 뿌옇다. 그의 상황을 생각하면 무채색의 옷을 입을 것 같지만 의외로 테오도르는 쨍 한 주황빛 자켓을 입고 있다. 덕분에 도시와 그의 대비가 커진다. 그가 자기 자신과 주변에 대해 스스로 느끼는 간극이 크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외로움을 느끼는 테오도르가 보는 세상의 회색 빛 콘크리트같은 칙칙한 차가움이 강조된다.
하지만 주황 빛 자켓을 통해 그의 내면 어딘가엔 따뜻함에 대한 열망이 존재함을 암시하는 듯 하다.
![[크기변환][포맷변환]캡처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1908/137bed2ac39fbe4f84e1fe2b9022523e_ZX3bqSTeDQ8Cj.jpg)
집은 어둠이 짙게 깔려 그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공간이 이어지고 아무도 없는 적막함을 통해 그의 외로움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런 와중 테오도르는 OS, 즉 운영체제인 사만다를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그의 세상은 그의 부인과 사만다에 의해 변화를 거듭한다.
![[크기변환][포맷변환]6.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1908/137bed2ac39fbe4f84e1fe2b9022523e_OCvYvTWulvelO.jpg)
과거 테오도르는 원치 않았지만 아내와 별거를 하게 된다.
아내의 계속되는 이혼요구에도 그는 이혼서류에 서명하기를 미루고 미뤄온다. 그만큼 그의 아내는 테오도르에게 소중하면서 동시에 아픔을 주는 존재다. 그가 아내와의 행복했던 과거를 떠올릴 때는 따뜻한 노란 빛이 둘을 감싸듯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기분 좋은 햇살 같은 은은한 빛을 담아 과거의 그들이 얼마나 서로에게 편안한 존재였는지 알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둘의 모습을 보여주며 테오도르가 왜 그렇게까지 이혼을 외면해왔는지 관객을 납득시킨다.
![[크기변환][포맷변환]캡처2.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1908/137bed2ac39fbe4f84e1fe2b9022523e_Roe4wAhzlB6RuoVC.jpg)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 아내의 이혼 독촉을 전달받은 테오도르의 세상은 회색 빛으로 변해있다. 따뜻한 빛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긍정적인 감정들이 사라져 마음의 문을 닫은 듯 견고하고 칙칙한 콘크리트 건물들만 보여진다. 반짝이는 빛도 사라졌다.
과거엔 그와 아내 둘만 남은 듯 했다면 현재는 그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듯 하다. 테오도르의 상황과 심경의 변화를 구구절절 나열할 필요 없이 간단한 빛의 활용과 색채의 대비를 통해 표현한다.
![[크기변환][포맷변환]캡처3.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1908/137bed2ac39fbe4f84e1fe2b9022523e_IvSWNWRAY5Pa39.jpg)
![[크기변환][포맷변환]캡처5.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1908/137bed2ac39fbe4f84e1fe2b9022523e_yF1KFBwlzzbWkXGvWpOwlR8IJO.jpg)
사막 같던 그의 세상은 사만다를 만난 이후 완전히 뒤바뀐다. 딱딱한 도심에서 회사와 집만 오가던 그는 사만다와 함께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가득한 해변을 거닌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좋은 것만 보이듯 그를 에워싼 세상도 노란 색감으로 따뜻하게 변해있다.
햇빛은 백사장에 반사되어 화사하고 아름답게 그의 주변을 감싼다. 그의 옷도 주변과 비교했을 때 더 이상 튀지 않고 어우러진다. 그가 아내와의 과거를 회상할 때와 비슷한 조명과 색감을 보여주면서 또 다른 사랑이 찾아왔음을 암시한다.
![[크기변환][포맷변환]캡처4.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1908/137bed2ac39fbe4f84e1fe2b9022523e_BatMhoqzWy.jpg)
평소의 테오도르가 침대에 누워있는 장면은 아주 어둡게 나타난다.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고 그는 무엇을 따로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 옷은 흰색이다. 아무 색이 없는 흰 옷은 텅 비어 보여 쓸쓸한 그의 모습을 강조한다.
![[크기변환][포맷변환]7.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1908/137bed2ac39fbe4f84e1fe2b9022523e_dnzAJCvsr6AskyW7.jpg)
이와 대조적으로 사만다를 만난 이후 그는 침대 옆에 은은한 간접조명을 켜놓고 화사한 옷을 입고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웃는다. 쓸쓸한 어둠 속에 홀로 있다 조금씩 빛 속으로 나오는 테오도르가 연상되는 연출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만다와 테오도르의 섹스씬이다. 사만다가 운영체제인 탓에 비록 음성으로만 서로를 만날 수 있지만 그러한 장벽을 넘어서 그와 사만다 사이의 관계가 진전되는 중요한 장면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가상세계 즉 온라인에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업무를 처리한다. 길을 걸어가는 행인들도 이어폰을 끼고 온라인 속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며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간다. 사만다와 테오도르 또한 이런 가상의 공간에서 만난다. 그래서인지 둘의 섹스씬은 비가시적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비가시적 공간이란 말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여기선 화면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밝기를 낮춰서 관객들이 소리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덕분에 테오도르는 물론 관객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사만다에 대해 상상할 수 있게 된다.
둘의 섹스가 끝난 후 비춰지는 도시는 이전의 회색 빛과는 다르게 형형색색의 불빛들로 아름다운 야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아침의 도시 또한 회색 건물들 위로 한줄기의 빛이 비춰진다. 이 사건으로 인해 둘의 사이는 물론 테오도르가 세상을 보는 시각 또한 바뀌었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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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의 이혼 후 사만다와의 만남에 어떠한 회의감을 느낀 테오도르는 또 다시 텅 빈 듯한 하얀 옷으로 돌아와있다. 도시의 색 또한 한참 사만다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는 화면 전반적으로 붉은 필터를 씌워놓은 듯 보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색채를 덜어낸 듯 창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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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잠겨있는 테오도르의 뒤로 새가 날아가는 전광판이 위치해있다.
새의 발 앞에 테오도르를 배치함으로써 마치 그가 새의 먹잇감이 되어 잡히는듯한 구도를 연출한다. 덕분에 포식자와 사냥감이라는 관계에서 사냥감의 이미지를 투영시킴으로써 나약하고 위태로운 감정을 전광판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타낸다.
영화 후반부에서 사만다는 테오도르를 떠난다. 충격적인 사실과 함께 이별소식을 접한 테오도르는 처음엔 부정하다가 결국은 그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크기변환][포맷변환]13.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1908/137bed2ac39fbe4f84e1fe2b9022523e_5PwCneNs4P7O1TYcDHYf4ftC3IkCFKp.jpg)
마지막 장면은 사만다가 떠난 후 옥상에 올라간 테오도르를 비춘다. 그는 사만다와 행복했을 때처럼 따뜻한 색감의 옷을 입고 있지 않다. 사만다와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당시와 같은 흰색 옷을 입고 있다.
그러나 그 때와는 주변 풍경이 다르다. 그 때는 물 빠진듯한 차가운 색감을 연출해냈다면 이 장면에서는 사만다와의 섹스장면 후 나오는 야경처럼 반짝이는 도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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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사만다는 떠났지만 테오도르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녀가 바꾸어 놓은 그대로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그의 하얀 옷은 처음의 공허함을 의미하기보단 마음 속 답답함을 털어낸 후련함에 가까워 보인다. 테오도르의 내적 성장이 떠오른다.
영화 ‘그녀’ 속 빛과 색채를 이용한 표현에 대해 분석해보았는데 이처럼 영화 속에서는 단 한 컷의 구성도 허투루 들어가지 않는다. 아주 작은 설정 하나만으로도 감독의 의도나 관객들의 받아들이는 방향이 정반대로 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영화를 감상하면서 매번 그 의미에 대해 따져보진 않지만 사소하지만 세밀한 구성들이 무의식 속에서 흐름과 분위기를 결정짓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미장센에 대해서 한번 더 돌아보며 영화를 감상한다면 조금 더 풍족한 영화생활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