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어나더 컨트리’는 ‘천국은 없다’라는 씁쓸한 결론을 제시한다. 그것도 이상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을 원칙주의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인 토미 저드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
지상의 천국?아니, 지상의 지상. 그냥 지상.
얼핏 들으면 알쏭달쏭한 말이다. 연극을 보기 전에도, 보고 난 후에도 말이다.
앞뒤 맥락을 살펴보자. 토미는 이 말을 또 다른 주인공인 가이 베넷이 ‘네가 가진 사상이 천국을 건설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위의 저 말로 대답한다.
여기서 좀 더 알쏭달쏭하고 깊게 들어가고자 한다. 어쩌면 토미는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토미에게 자신의 원칙을 따른다는 것은 지옥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상 위에 서 있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벌받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원칙을 선택하는 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토미 저드에게 원칙이란 지상이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만 하다는 이상주의자적 증거품일지도 모른다.
아래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인간 본성의 끝을 본 한 소설가가 쓴 소설을 발췌한 내용이다.
우리는 고통을 당한 사람들의 영혼이 그들을 모른 체했던 사람들을 꿈속에서 괴롭혔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들이 아침이 되면 초췌한 모습으로 잠에서 깨어나고, 또 저녁이 되면 몸을 갉아먹는 암으로 죽음을 맞게 됐다고 생각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무슨 짓이든 저지르고, 그것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처벌은 없습니다.- 존 쿳시, 동물들의 삶
자본주의 국가에서 나온 소설, 그리고 토미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점과 이 둘이 이상과 비관으로 충돌한다는 것은 흥미롭다. 연극의 시나리오는 토미 저드가 22살에 전쟁터에서 죽었다고 전한다. 젊음을 보전케 한 것이다.
하지만 살아남아 삶을 이어나가는 수많은 토미 저드들은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가이 베넷의 처세술을 선택한 나는 일상을 부수는, 사랑하는 토미들이 자기가 깨트린 그것에 의해 많이 다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