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ologue.
아이디어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으면 좋겠어!
아무도 해보지 않은
결과물을 내놓고 싶어!
디자인을 하다보면 정말 많이 하는 생각이다. 아니, 매일같이 한다. 나의 작업물이 남들보다 돋보였으면 좋겠고, 획기적이고 매력적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자괴감에 빠지고 머리를 산발로 만들며 매순간 고민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전하는, 선배 디자이너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호였다.
그게 위로가 아니라 미리보기에 가까워서,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공포감을 안겨줄 수도 있겠으나 - 잠깐 동안 미래를 바로 앞에서 들여다보고 온 듯한 기분이 들어 조금 묘한 설렘이 일었다.
나만의 돌파구를 찾아서
슬럼프 극복하기:
작업을 하다보면 슬럼프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나는 아직까지 현직에서 일하고 있지는 않은 학생이므로, 여기에 쓸 수 있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학교 과제에 관한 것이다. 그래도 짧은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해보자면, 한 번에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없었다(불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이 좀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머릿속에서 컨셉을 잡고 시각적으로 구체화를 시키는 과정이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워서, 자아를 몇 번이고 분열하고 나서야 조금씩 가닥이 잡히는 것을 느낀다. 같은 어려움을 겪고도 프로세스가 좀처럼 진행되지 않는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아이디에이션 과정에서부터 현재의 진행 상황까지 매끄럽지 않았던 부분이 무엇인지 찬찬히 살펴보고 빠르게 수정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무사히 최종 PT를 마치고 종강을 맞이할 수 있다(...)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은 그렇다면, 자신의 작업이 수렁에 빠졌다고 느낄 때 어떻게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직업으로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학교에서의 과제 제출과는 간접적으로 보아도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 상황을 공유하고 대금과 마감일이 걸려있으며, 옆에서 크리틱이나 피드백을 해 줄 교수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래서, 자신의 작업과 창작물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분야와 접근 방식을 아예 바꿔버리기로 했다.
광고 디자인을 하다가 제품이나 시각 디자인을 분야를 확장한 이도 있었고(빅토리아 비, p.28) 자신의 표현방식에 한계를 느껴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논-포맷, p.113). 혹은 환경이나 사회·지역 문제에 관심을 갖고 독특한 인상을 남기는 방식을 택하기도 하는 디자이너들도 있었다. 물론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익숙하던 작업을 놓고, 안정적인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를 자칫하면 모두 놓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계가 임박해 옴을 갈수록 더 많이 느끼고 있다면, 어느 순간에는 편안한 길을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니 –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복잡한 길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공유하며 배우는 것들
네트워킹 활용하기:
위에서 말한 변화를 느낌에도 바로 무언가 전환점을 찾기 어렵다면, 주변의 동료들과 많은 대화와 만남을 가지는 것도 방법이었다. 각자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등을 공유하는 것이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고 있지만, 이러한 과정은 경쟁상대를 정찰하기 위함이 아니라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고 때로는 영감을 주며 요즘 업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수단에 더 가깝다.
이것은 어느 분야의 현장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겠으나, 디자이너들에게는 네트워킹이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때가 더 많다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학생의 신분이기 때문의 프로들의 세계를 다 알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공유를 통해 배우는 것이 적지 않으며 일과 인간적인 부분에서 연결점을 찾아가는 과정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렇게들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가고, 활발한 네트워킹이 완벽한 해결법은 아니더라도 좋은 스펙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클라이언트의 존재가 디자이너에게 미치는 영향
클라이언트는 디자이너에게 창조적 욕구와 표현에 대한 임금을 지불하지만, 결과물에 대해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인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가 기반이 되는 관계가 형성된다면 결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도출된다는 것이다. 클라이언트가 디자이너의 역량을 믿어주고, 디자이너도 그런 클라이언트를 신뢰하며 작업을 진행한다면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 밖에.
하지만 늘 이러한 유형의 클라이언트를 만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질적으로 클라이언트란 디자이너의 창조성을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이기에,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과 의견 충돌로 인해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유명한 디자이너들의 인터뷰를 보아도 클라이언트에 관한 이야기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나의 creativity를 실현시켜줄 수 있는 존재이자 그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양면적인 관계 속에서 디자이너는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디자인을 어떠한 흐름 속에서 유지·발전해나가야 한다는 것은 온전히 디자이너 자신의 역량이자 숙명인 것이다.
*
화려하고 있어 보이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이면을 비추어 주었던 이번 호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러 나라에서 흘러가고 있는 디자인 업계의 이야기를 듣고 스튜디오에도 잠시 다녀오며, 이와 동시다발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AI’와 ‘4차 산업 혁명’에 관한 인터뷰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읽고 나자 CA매거진의 다음 호도 자연스레 기다리게 되었다. 디자인에 대해 관심이 많거나, 디자이너를 꿈꾸고 있는 누구라도 한번쯤 꼭 읽어보면 어떤 방향으로든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 매거진 CA#244판을 바꾸는 그래픽 디자이너 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