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지고 낙엽이 지면 바야흐로 '단발병'의 계절이다. '단발병'이란 단발이 잘 어울리는 누군가(이를테면 여자 연예인)를 보고 단발로 머리를 자르고 싶은 욕구를 말하는 신조어이다. 이 욕구가 지속되지만 끝내 자르진 않기 때문에, 이 반복적인 충동을 보고 '단발병'이라 부른다. 혹은 단발로 자른 후 머리카락이 자라 쇄골까지 오는 중간 단발, 일명 '거지존'이 되면 참지 못하고 다시 단발로 자르기에 '단발병'이라 부른다.
이 단발병에 의해 머리를 길게 기를 수 없어서 단발병은 자르기 전까진 약이 없는 불치병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필자에게도 매년 가을,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단발병'. 올해도 어김없이 단발로 변신한 유명 여자 연예인의 사진을 보고 머리를 자를까, 말까 고민했다.
그런데 ‘단발병’이라는 말은 어쩌다 생긴 걸까? '장발병'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도 흔히 쓰이지도 않는데, 단발이 뭐길래 ‘단발병’이라는 단어가 생기고 다수의 여성이 단발병을 앓는 걸까. 유튜브 방송을 하는 어느 정신과 의사는 '단발병'은 계절이 바뀌며 심란해진 마음을 머리를 자름으로써 환기하고 싶은 심리의 발화라고 진단했다. 그런 심리를 가진 채 유명 여자 연예인의 단발 사진을 보며 머리를 자를까, 말까 고민하고, 단발로 자른 주변인을 보며 또다시 단발의 충동을 느끼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단발로 자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단발로 자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여성만 단발병을 앓는 것일까.

단발병 퇴치짤들을 보면서 찜찜했던 기분은 최근 널리 퍼져가는 '탈 코르셋'운동을 접하고서 정리되었다. 탈 코르셋 운동이란 타인의 외모를 평가할 수 있는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으니 남의 시선에 자신을 맞추어 억지로 꾸미며 살지 말자는 여성운동이다. 그 운동의 선상에서 긴 머리를 짧게 자르는 '숏컷 열풍'이 일었다. 온라인에는 수많은 여성이 숏컷 후기 행렬을 이어갔고 주위에 긴 머리를 자르고 나타난 지인도 더러 있었다. 이 취지를 마음에 새기며 긴 머리를 유지할 이유를 돌이켜 보니 얼마나 성 차별적인 사회에서 학습되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단발병은 왜 여성들에게 발병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의 답도 여기에 있다. 머리카락 길이에 성 정체성을 부여한 사회에서 단발로 자르고자 하는 욕구는 여성에게만 부여된 권리이다. 한국에서 머리가 긴 남성은 특이한 존재로 취급 받고 일상에서 장발 남성을 보기란 쉽지 않다. 여성들이 긴 머리칼에 여성성을 부여받았다면 반대로 남성들은 짧은 머리카락에 남성성을 강요당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남성은 장발에서 단발로 자르고 싶은 욕구가 애초에 사회적으로 거세당했다.
머리를 자른 지 한 달,

"턱선에 맞춰서 잘라 주세요."
허리까지 오던 머리카락은 그렇게 싹-뚝 잘려나갔다.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숏컷 후기’처럼 한 번에 숏컷이나 투블럭으로 자르기엔 부담스러워서 턱선으로 합의했다. 턱선까지의 머리 길이만도 기존 머리와 20cm 넘게 차이 났기에 이 길이도 굉장한 도전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 처음 한 단발, 목덜미가 휑-한 느낌이 영 어색하기만 했다.
일단 편하다. 이렇게 편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편하다. 단발로 자른 사람들의 공통적인 후기가 머리를 감고 말리는 것이 편하다는 것인데 실제로 체감하고 나니 지금껏 긴 머리로 살아온 것이 얼마나 많은 불편을 감수한 것인지 느껴졌다. 본디 위생을 위해 머리를 감고 말리는 행위가 귀찮음을 동반할 수는 있어도 불편한 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되었다.
긴 머리에 풍성한 거품을 내기 위해 펌프질 해야 하는 샴푸의 양은 대략 4번, 현재는 펌프질하는 샴푸의 양이 절반으로 줄었다. 샴푸를 뒤통수에 비비면 머리칼을 거품망 삼아 금세 거품이 일어나고, 머리통 전체와 짧은 머리카락을 거품으로 두르는 데는 1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 후 두어 번쯤 헹구어도 워낙 길이가 짧아 한 번에 씻겨 나간다. 그렇게 머리를 감는 시간은 총 5분이다. 예전 같았으면 머리를 헹구는 데만 5분이 넘게 걸렸을 것이다. 머리를 말리는 건 더 간편하다. 긴 머리일 땐 팔이 빠져라 드라이기를 들고 있어야 두피가 대충 말랐지만, 이제는 드라이기로 1분, 아니 수건으로 털기만 해도 축축하지 않게 알아서 마른다. 이렇게 간편할 줄이야. 단발이 이 정도인데 숏컷은 얼마나 더 편할까. 지난 시간이 억울해졌다.

긴 머리 시절, 겨울이 되어 목도리를 두를 때 머리를 묶지 않으면 머리카락까지 같이 두르는 느낌이었다. 가끔은 머리칼이 목도리에 끼여 두피가 찢어질 듯한 고통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목도리를 두 겹으로 칭칭 감아도 무리가 없다. 사소한 것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이렇게 편한 것을.
어느 순간 '단발병'이라는 단어가 기괴하다고 생각했다. 왜 자르고 싶은 머리를 자르는 것이 두려울까, 왜 치렁치렁한 머리칼이 불편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을까. 오랜 시간 학습 받은 성차별적인 생각들은 한낱 털 따위에 정체성을 의탁하게 만들었다. 머리를 자르고 싶을 때, 남들 시선에 어떻게 보일까를 먼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렇다면 행동은 쉬워진다. 이상으로 '단발병'이라는 유쾌한 단어에 가려진 불쾌한 이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