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
나도 당신을 사랑했어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
(WICKER PARK)
인간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진다. 그 누군가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 사는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저만치 떨어져 있어도 당신이 그 곳에 있다는 사실,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다. 그러나 사랑은 때로는 독이 되어 목을 조르곤 한다.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에 애가 타며 보이지 않는 얼굴에 원망도 해본다. 짝사랑이다. 내가 가진 이대로 끝나버릴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어 돌아서지 못하곤 한다. 목적지를 잃은 사랑은 한없이 무겁게 내려앉아 눈물 한 방울로 땅에 볼품없이 추락하거나 삐뚤게 쓴 글씨로 낡은 서랍 안에 가둬진다.
누구에게나 짝사랑의 아픔과 설렘은 있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짝사랑을 보며 같이 아파하고 설레며 함께 슬퍼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처절하고 광적인 면을 보며 내가 지닌 사랑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도 있다. 과연 당신이 풀어헤칠만한 짝사랑은 어떠했는가. 악착같았는가, 애절했는가, 그리고 순수했는가. 당신의 사랑을 꺼내보라. 여기 이 영화에서의 사랑이 마치 당신의 사랑같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생각해보세요. 사랑에 빠지면 뭐든지 하게 돼요.-알렉스
[당신을 사랑하는 동안에, Wicker Park, 2004]의 알렉스는 수동적인 사랑을 해온 여자다. 알렉스가 공원에서 우연히 보게 된 매튜는 그녀의 정신을 사로잡는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쫒아 그가 비디오 가게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그를 매번 바라보며 남몰래 마음을 키워간다. 하지만 매튜를 미소 짓게 만든 건 그녀가 아닌 그녀의 이웃인 리사. 이윽고 리사와 매튜는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둘은 작은 오해로 인해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몇 년 후 매튜는 우연찮게 리사의 흔적을 찾는다. 단 하나의 단서를 시작으로 그는 리사를 찾아다니기 시작하고, 하나 둘 모은 단서를 통해 발견한 그녀의 흔적들의 끝자락을 찾아갈 것을 결심한다. 허나 매튜의 앞에는 리사의 이름을 한, 그녀와 너무도 흡사한 취향을 가진 여자로 변한 알렉스가 나타난다.
나를 위해 나를 감추다
원작 '라 빠르망, L'Appartement, 1997'의 리메이크작인 [당신을 사랑하는 동안에]는 싸이코틱한 사랑을 하는 캐릭터인 앨리스를 각색해 그녀를 재탄생시킨 알렉스를 중심으로 원작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을 중심으로 내러티브를 펼친다. 원작과 색다른 방향으로 만들어진 알렉스는 우연히 다시 마주치게 된 매튜가 여전히 리사를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녀의 삶을 표방하기로 다짐한다. 알렉스에겐 그의 사랑을 받는 리사가 더 이상 그녀와 꿈과 삶을 얘기할 수 있던 이웃 친구가 아닌 단지 그녀의 자신이 마음을 품은 남자가 사랑하는 이상적인 형상으로 비춰질 뿐이었다.
알렉스는 무대 위 두꺼운 분장과 각본 대신 리사의 집, 리사의 이름, 리사의 취향을 내세워 그녀의 흔적들 속으로 자신을 감춘다.‘나는 이제 알렉스가 아니야. 니가 사랑하는 여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잖아. 이제 날 사랑할 차례야.’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무대 위 리사라는 이름의 주인공으로 알렉스는 조심스레 무대에 오른다. 오로지 단 하나의 관객을 위해서. 철저하게 극화된 알렉스는 흔적의 끝을 찾아온 매튜를 너무도 자연스레 맞이한다. 오매불망하던 리사의 흔적이 선물하는 향수에 젖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취하듯 그녀와 몸을 섞게 된다. 허나 이후 정신이 들자 그는 알렉스를 피한다. 이에 알렉스는 매튜의 친구인 루크의 사랑마저 이용하는 지경에 이른다. 두 번 다시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랑을 위한 자신만의 연극이 끝을 화려하게 펼칠 수 있도록 말이다.
연극이 한 번 상영하기 시작했다면 극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끝은 다가올 수 밖에 없는 법. 모든 것이 밝혀진 순간에도 그녀는 매튜에게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내가 그녀보다 더 먼저, 더 많이 사랑했을 뿐이야.”라고 항변한다. 모든 것이 밝혀져 볼품없이 부서진 무대와 발가벗겨진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한 채 사랑을 갈구하는 밑바닥을 보인 채로. 그녀의 사랑은 미쳐버린 사랑으로 매튜에게 남겨지며 끝난다. 자신을 위해 자신을 감춘 알렉스의 뒤틀린 짝사랑이었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그녀에 대해선 잘 모르잖아요.당신은 그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요.그 여자가 정말로 오래 전부터 당신을 사랑해왔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그런 그녀가 다시 당신을 찾아냈으니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았을거에요.-알렉스
스스로를 위해 다른 이의 사랑을 파괴하는 것. 감정의 크기와 순서를 비교하는 그녀의 잘못된 판단으로부터 시작된 절실함은 결국 모든 것을 망치고 만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진실되게 다가갔던 루크와 매튜의 약혼녀였던 레베카가 영화의 잔향을 남기며 알렉스가 가졌던 감정을 부정하도록 만든다. 더욱이 그녀가 그토록 쟁취하고자 했던 사랑은 칼날에 닿은 피부처럼 서늘하고 소름을 자아낸다.
그러나 한 편, 우리는 그녀에게서 가장 근원적이고 솔직함을 토로하는 감정이 불러오는 밑바닥을 보며 그녀를 동정하기도 한다. 영화는 어느 캐릭터보다 그녀의 감정선을 세심하게 그려내는 것에 집중해, 그녀의 사랑엔 일말의 동정의 시선이 내려앉게끔 만든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누구나 한번 쯤 가질 수 없는 것에 처절해 본 적 있지 않은가. 결코 외면할 수만은 없던 그녀를 단지 한 번 더 돌아보는 것. 이는 마음 깊은 저 편에서 슬그머니 기어나와 문을 두드리는 숨겨놓은 옛 감정들 혹은 지금 자신이 마주하는 감정들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아마도 맨 처음 당신을 보았을 때당신이 처음 리사를 보았을 때와 같은 감정을 가졌을거에요.생각해 보세요. 사랑에 빠지면 뭐든지 하게 돼요.때로는 광적으로요.세상에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자신이 본 것 이외엔 생각하기 어렵죠.그런거에요.어쩔 수 없는 거죠.-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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