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 덕분에 어제 저녁 서초역 8번 출구 근처
소극장 씨어터 송에서 연극 <아폴로 프로젝트>를 관람하고 왔다.
한 편으로는 전개가 어떨지 걱정하면서 소극장으로 향했는데
연극이 끝난 후 걸어나오는 발걸음은 내 걱정을 무색케 할 만큼 가벼웠다.
본 포스팅은 리뷰이므로 연극 <아폴로 프로젝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음을 미리 밝히며
리뷰를 시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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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1961년. 경상도 어느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친구로 자란 세명의 사내아이.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는 어느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당집 무당 할매집 에서 우연히 본 텔레비전에서 본 인간의 달 착륙 모습. 그것은 아폴로 11호였다. 그 신비하고도 놀라운 인류의 첫 도약은 이들 인생에서 땔래 야 땔 수 없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그 날 본 것은, 인간의 달 착륙만은 아니었다. 달 착륙만큼이나 역사적인 그 만남, 바로 지영이를 만난 날이다. 우연한 사고와 마을 사람들의 알 수 없는 혐오로 쫓겨 난 지영은, 세친구가 17살이 되던 해,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우주만큼이나 신비롭고 경이로운, 서울구경, 새로운 음악과 다양한 이야기 세친구는 매료된다. 하지만 이도 잠시, 다시 지영이는 그때와 같이 마을에서 쫓겨나고, 스물을 맞이한 세친구는 여행길에서 우연히 지영이의 소식을 듣게 되고, 지영이가 있는 곳을 가게 되는데.... |
소극장에 들어서면 다음과 같이 무대 위에 의자들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연극의 제목에서도 쉽게 유추할 수 있듯이 아폴로 11호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연극은 바로 그 장면, 아폴로 11호가 발사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인류 역사의 큰 도약이 되는 시도 그리고 한 인간의 작은 발걸음을 통해 역사에 길이 남을 인류 우주탐사의 첫 시작을 알린 그 사건.
작가는 이 아폴로 11호의 사건에 빗대어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이렇듯 인생사에서 길이 남을, 매우 필연적이고 운명적이면서도 사소한 한 발걸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1969년 7월의 대구, 매미소리가 마을을 가득 채우고 녹음이 코끝에서 떠나지 않던 그해 여름
동수, 명철이 그리고 상화는 마을 뒷동산 무당 할매 집에 괴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궁금증이 많았던 아홉살배기 아이들은 무당 할매집까지 갔다가 그 괴물이 사실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사람은 바로 광주 출신의 지영이. 동갑내기 작은 소녀였다.
아폴로 11호의 달 탐사를 동경하던 세 소년에게, 지영이와의 만남은 자신들의 인생에서 달에 첫 발을 내딛은 인류 역사의 사건에 비견될 만한 운명적인 사건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의 핍박을 받던 지영이가 무당 할매와 마을을 떠났다가 다시금 소년들의 마을로 돌아온 것은 열일곱이 되던 해였다.
그들은 다시금 만난 여름에 어렸을 적처럼 서로 뭉쳤고 그 시절을 풍미하던 가요들을 듣는다.
음악에 가슴이 뛰던 그들.
그런 그들이 서울로 갑작스레 상경하게 된 것은 지영이의 발언 때문이었다.
'아폴로 11호의 달 탐사가 사실은 거짓일 수도 있다는 것.'
아폴로 11호에 대한 동경이 컸던 소년들로서는 지영이의(보다 정확히는 지영이네 삼촌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서울에 상경해서 지영이네 삼촌을 직접 만나서도, 소년들은 끝내 삼촌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의심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고서는 그저 주어지는 정보를 진실로 믿고 그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것.'
삼촌은 상경한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구경을 시켜주며 창경원, 서울타워, 남산터널, 어린이 대공원, 왕십리 곱창집 등을 누빈다.
어린이 대공원에서 청룡열차를 태워주고 나서 집으로 아이들을 데려간 그날 밤, 삼촌은 아이들에게
'앞으로는 정보통신이라는 청룡열차를 타고 세상은 더욱 빠르게 변할 것이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들에게는 끝내 와닿지 못하는 울림이 되었다.
서울에서 마을로 되돌아온 후, 아이들은 학교에서 방송반을 만들어 음악방송을 시도한다.
청춘을 가슴뛰게 하는 그 시대의 음악들로 방송을 즐기던 그들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다녀온 동수네 아버지의 벼락같은 호통에 결국 교내 음악방송을 접게 된다.
그들이 듣기엔 그저 평범한 사랑노래였던 국가 지정 불온가요로 방송을 하고 있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의 열일곱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장마를 맞은 것처럼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그것이 납득이 되어서 식은 것이 아니라 그저, 그래야 한다는 어른의 말씀 때문이었다.
그랬던 그들이 스물이 넘었다. 그 사이 지영이는 무당 할매를 여의고 광주에 친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가 있었고
동수는 군 입대를 앞두고, 상화는 대학에 입학하고, 명철이는 방황하는 젊음 그 자체인 상태로
지리산에 캠핑을 갔다.
거기서 그들은 만신창이 상태의 지영이네 삼촌을 만난다. 그는 간첩으로 의심받는 상황이어서 쫓기고 있었다.
정부를 곧이 곧대로 믿기보다는 의심하고 질문을 던져라고 했던 그의 발언은 그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발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년들은 삼촌을 통해 지영이를 상기하게 된다. 그리고 지영이가 있는 광주로 지영이를 만나러 갔다.
그것이 1980년 5월의 일이었다.
그들은 오래간만의 극적인 재회를 한다. 그러나 너무도 가슴아프게도, 그리고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그들이 만난 현장에서 5.18 사태가 터지고 만다.
지영이네 어머니가 하시는 '호남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중에, 군인들이 시내에 들이닥친 것이다.
그 난리통에 이들은 '호남식당'이 아주 박살이 났다는 얘기를 듣고 혼비백산한다.
가눌 길이 없는 마음을 애써 갈무리하며 어머니를 찾아 시신들이 놓여있는 대로변으로 나간 그들은, 군인과 시민들이 대치 중이던 첨예한 그 순간에 직면한다.
한 발의 총성이 울리면서 총알이 빗발치기 시작하자, 정신없던 세 소년은 지영이를 들쳐 업고 무작정 뛰어 도망갔다.
그리고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 정신이 들어 지영이를 살폈을 때, 그들은 지영이가 이미 숨을 거두었음을 알게 된다.
연극의 중반부에 스토리텔링하는 대목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인생은 선택의 축적이다.'
실로 그렇다. 우리는 인생의 매순간에 선택을 한다. 하다못해 출근할 때 버스를 탈지, 지하철을 탈지도 선택을 하니까.
그렇게 인생의 매순간 선택을 함으로써 그 선택들을 쌓아온 것이 인생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범하지 않은 선택, 비범한 선택이 주를 이루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오히려 사소하고 너무 일상적이어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그 선택이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 되기도 한다.
극중의 세 소년들에게는 지영이와의 만남이 그러했을 것이다.
이 연극은 70년대의 시절을 향수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분명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당시 그 시절을 향수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상황들을 풍자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정보통신이라는 청룡열차를 타고 세상은 더욱 빠르게 변할 것이다'라고 한 지영이네 삼촌의 발언은 사실, 현대에 이 작품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대사였긴 하지만 그 골자는 중요하다.
정말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정보는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데 그 중에서 정말 중요하고 필수적인 정보를 가리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게다가 매체들이 가치중립적인 보도를 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현 시대에 이러한 분별력은 더욱 더 중요하다.
사실 이 연극에서 나에게 가장 씁쓸하게 와닿았던 것은 지영이의 이 대사였다. '젊음이 실패를 두려워 하것냐.'
자신들이 꿈꾸는 음악방송을 하기에 앞서, 소년들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지영이가 밀어붙이며 한 말이었다.
정말 그 당시는, 실패해도 두렵지 않은 청춘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기였을 것 같다.
수단을 우선 덮어두고 보면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추세였고 기회가 더욱 더 많아지고 있던 때였기 때문에, 어른들은 당신들이 젊을 적을 회고하면서 그 당시에는 정말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두려움 없이 밀어붙일 용기가 있었다고들 말한다.
현대에는 그런 젊음의 용기와 패기가 많이 사라졌다.
그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나태하고 태만해서가 아니라 시대적 상황이 도전에 대한 리스크를 키워놓았기 때문이다.
과거엔 도전이 실패하더라도 나아지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되었지만
저금리, 저성장 시대에 고용은 악화되고 물가는 치솟으면서 실질임금상승률은 바닥치는 이 상황에 청춘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에 바쁘다.
그런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더라도 열정페이를 요구하며 착취당하기 일쑤고.
과거와 대비되는 현재의 이 어려운 상황이 너무 사무쳤다.
동수, 명철이, 상화가 지영이를 만난 것이 아폴로 프로젝트에 비견될 만큼의 운명적인 사건이었다면
나에게도 이 연극을 조우하게 된 것은 사소하면서도 필연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질풍노도의 20대를 보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연극 <아폴로 프로젝트>는 어떤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색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지평을 분명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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