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추억들을 잊어선 안돼요 [문화전반]

유년의 기억1.
글 입력 2017.04.0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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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시간이 밤이기를 바라며.





  오늘 하루의 기억은 어떠했나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하루를 마치는 지금까지 머릿속에 쌓인 수많은 순간의 기억들 중 추억으로 삼을 만한 것이 있나요?


  어느 날 문득 이렇게 흘려 보내는 기억들을 소중히 건져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루의 일기를 쓰던 새벽에 또 문득 어린 날의 기억을 남겨두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을 감고 떠올려보면 오래된 비디오처럼 바래고 끊긴 기억들이 시간이 더 흐르면 아예 잊어버리게 될 것 같았습니다. 그날 잠을 자지 않고 하나하나 떠오르는 기억들을 3시간 동안 적어 내려갔습니다.

  물론 그 동안 일기로 적어온 최근의 기억들도 소중했지만, 수북하게 쌓인 기억들 속에서 열심히 찾아낸 유년의 기억들은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린 저에게는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겪는 일들이 모두 처음이었기에. 지금 다시 겪고 싶어도 그때의 그 감정과는 굉장히 다를 것 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글을 통해 당신이 바쁘게 살아가느라 잊고 있었던 추억들을 떠올려볼 수 있게 저의 이야기를 공유해볼까 합니다.





# 무지개

무지개라는 것을 처음 본 동화책에서는
무지개가 땅에서 시작되어
하늘로 솟았다가 다시 반대편의 땅으로 끝나는 모양이었다.

만일 무지개를 보게 된다면 재빨리 달려가
한쪽 끝을 타고 올라가 하늘에 올라보리라 하며
비가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하늘이 까매지고 소나기가 내렸다.
금방 그친 비에 엄마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무지개를
볼 수 있을 거라며 계단을 급히 내려가던 도중에 무지개를 만났다.

먹구름이 걷히고 빛이 쏟아져 들어온 아파트 입구 현관에
공중에 짧은 무지개가 있었다.

땅에서부터 시작되지도 않았고,
둥근 모양도 아니었으며 올라탈 수도 없었다.

빛 때문에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가늘게 뜨고 본 무지개는 색종이를 반으로 접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만난 무지개인데
꼭 집에 가져가고픈 마음에 손을 뻗어 움켜쥐었다.
그리고 눈앞에 가져와 펼쳐본 손안에는 빛만이 있었다.

아, 무지개란 잡을 수 없는 거구나.




# 도시락

미술학원에서 어쩌다 알게 된 친구가 있었다.
학원에서의 첫 친구였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이름도 생김새도 기억나질 않는다.

오직 기억나는 건 항상 도시락을 가져왔다는 것과
나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바쁘다는 공통점에
나름의 고충을 털어놓으며
작은 도시락이지만 함께 나누어 먹었던 기억이 있다.

날이 좋았던 하루는
학원 뒤의 놀이터에 갔다.

그 놀이터에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앉을 수 있는 꽤 높은 평상이 있었는데
그곳에 올라가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더운 듯한 햇살을 맞으며
문어 모양의 소시지에 꺄르르 웃던
그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 시소

나의 첫 번째 초등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던 놀이기구는 시소였다.

이유는 굉장히 높이 올라가기 때문이었는데,
내려갈 때는 무섭지만 한번에
휙- 하늘 위로 떠오르는 기분이 꽤 좋았다.

매일 점심시간에 시소를 탔었는데
내 기억 속 장면은 단 하나만 남아있다.
하지만 그 장면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아쉽지는 않다.

학교의 교정에는 벚꽃이 만개해 있었고
적당한 바람이 불어 꽃잎은 날렸으며
한낮의 햇살의 따스함과 눈부심에 반쯤 감긴 시야에
푸른 하늘과 구름과 꽃이 모두 담겨있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그곳으로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다시 찾아간 그곳은 기억과는 다른 장소였다.

시간이 흘러 그 기억이 미화된 것 일까
내가 달라진 걸까
학교가 달라진 걸까

중요한 건
내 머릿속에는
아직 그 날의 장면이 생생하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 비

나는 비를 굉장히 싫어했었다.
지금도 싫어하지만 그때는 정말 너무나 싫어해서
비가 오는 날의 아침이면 눈썹을 찌푸리곤 했다.

그 여름의 장마철이 중간 즈음이었다.

집에 가도 좋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창 밖을 내다 보니
등교할 때부터 오던 비가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괜한 심술에 친구들이 교실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한참을 하늘을 노려보다가
우산을 들고 1층으로 내려왔다.

거기서 그 아이를 보았다.

그리고는 문득
그 아이가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우산이 없어서였다.

나는 우산이 없는 아이를 동정하지 않았다.
그냥 기뻤다.

나도 우산이 없는 척을 하면
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겠구나.

그래서 우산을 교실 구석에 숨겨 놓고는
1층 현관 바닥에 앉아 비가 잠시 그치길 기다리는
그 아이 옆에서 같이 비가 그치길 기다리곤 했었다.
그 해 장마철에는 계속 그렇게 기다렸다.

아마 그 계기로
비가 조금은 덜 싫어졌던 것 같다.





  소소한 기억, 추억들이지만 너무나 소중해 노트 속에 꽁꽁 숨겨 놓았었습니다. 이렇게 글로 쓰게 되니 몽글몽글한 감정이 다 표현되지 않아 아쉬운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무지개와 처음 만났던 때는 언제인지, 처음 사귀었던 친구는 어떠했는지, 기억 속 아름다웠던 장면은 무엇인지, 날씨와 관련된 일이 없었는지 한번쯤 떠올려보는 게 어떨까요?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마음 속에 한줄기 빛이 되어 줄 거에요.





지금 이 글을 다 읽은 당신이 잠들기 전 눈을 감고 그 옛날의 추억과 만나기를 바라며.










정연수.jpg
 

[정연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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