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30분이 지났는데도 무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각생이 있었던 것 같진 않다. 그냥 피아노가 동그란 조명 안에 있는 모습을 몇 분간 내려보았다. 우리는 가만히 거기 있었다. ‘잠시 멈춰, 거기 있어야 한다.’는 안내를 사전에 받은 사람들처럼 정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뭘 할 생각을 하지 말고, 일단 몇 분은 그대로 있어야 한다.
자박자박, 사부작사부작, 또르륵또르륵. 사박사박. 좌석 등받이 선으로 이어진 도르륵 미끄럼틀. 까만 그림자 안에 숨은 까만 바지와 팔소매, 눈에 띄는 하얀 운동화, 모아진 두 손, 외로워 보이지 않는 피아노, 아무도 없는 무대 가운데로 모여진 시선, 뒷모습. 그걸 모아다 놓으니 오른쪽 문이 열리더라.
성큼성큼도 아니고, 아마 조심스럽게도 오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는 어느새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앉은 채 그대로, 거의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몇 초간 거기에 있었다. 7시 30분, 연주자가 들어오며 한 번 끊긴 듯했던 공기는 그가 앉은 뒤에도 잠시 더 이어졌다. 그때부터 오늘은 ‘여백’이 중요한 일이겠구나 싶었다.
슈베르트, 네 개의 즉흥곡 D.899
제1곡
사부작거리며―그러니까 다리도 몇 번 꼬아보고, 손도 무릎 위에 올려보면서―기다리고 나니 슈베르트가 왔다.
분명 온도 높은 피아노처럼 보였는데, 노래하는 건반은 왜 이리도 홀연한가. 건반 하나가 말 한 가지를 건네는데, 다음 말까지의 간격이 동, 하고 떨어져 있다. 음표가 또잉또잉 걸어가고 있긴 한데 조그맣게 황량한 것을 보면 낙엽만 같고, 땅에 발붙이는 모습을 보면 흩날릴 생각 자체가 하나도 없다. 그림자처럼 땅에 착, 하고 붙어 있다.
소리가 한 획이 된다면 중간까지는 무게를 덜고, 선의 가장 끝부분은 땅에 이미 맞닿아 있어야 한다. 지나치게 쓸쓸해 보여서는 안 되고, 아주 조금 안쓰러워 보일 수는 있어도 삶에 대한 어떤 기대감이나 쉽게 저물지 않는 희망이 가는 길 언저리에는 은은하게 깔려 있어야 한다.
올망졸망 눈물방울을 또르르 떨어뜨릴 순 있어도 주륵주륵 울음에 목놓아서는 안 된다. 예쁘게 유치한 마음으로, 어린아이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그랬구나’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정도면 좋겠다.
다독여 주는 줄 알았는데, 뻗어오는 손은 우연히 내 머리 근처에 있을 뿐이다. 그 손은 달래기 위해 머무르는 대신, 두드려야 할 곳을 반복해서 놓치지 않고 짚어낸다. 멀어질 때에도 그냥, 그냥 거기 있는 정도.
제2곡
확, 가버릴 줄 알았지?
가장 처음에 내보인 음에 몇 초간의 시간을 주고, 선율로 아이를 어르고 달래듯이 와주어야 한다. 두 번째에는 조금 더 실키해져야 한다. 비장할 필요도 없고 위대할 이유도 없으니, 마음을 늘 다잡는 정도의 긴장감이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한다.
뱉어지는 소리는 단단하되, 음표 가장 중심부에는 감추려 해도 새어 나오는 초조함이 한 줄기 정도 있어야 한다. 편안해 보여서는 안 된다. 울적해도 티 내지 않고, 울고 싶은 기분이 들어도 꾹 참았다가 집에 가서 울 수 있는 통제력이 있어야 한다.
제3곡
이 길을 내딛는 일에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사람처럼. 억눌리는 일에 익숙해져, 그렇지 않은 상태를 오히려 낯설게 여기는 사람이 된 것처럼.
그냥 원래부터 나는 이렇게 살았어요. 누가 곁에 없어도 빛이 있는 곳을 알아서 찾아다니곤 했어요. 별일 없어요, 별일 없어요.
눈동자 한가운데를 보고는 말할 수 없지만 웃으면서라면 그리 말할 수 있는 사람. 입꼬리는 편안히 들어 올리고, 눈매 정도는 가볍게 휘게 만들 수 있는 사람. 침묵하는 이의 따뜻한 마음씨가 이곳까지 닿아온다.
꾸욱, 꾸욱 눌러 감추고 싶은 것을 꼬옥꼬옥 주먹 안에 감추어 두어야지.
제4곡
그런 마음을 품은 지도 몇 년은 지난 사람처럼. 내가 무슨 마음을 무엇에 품었었는지 다 잊어버린 사람처럼. 실제로도 반 이상은 기쁘게도, 슬프게도 망각해 버린 사람이 되어.
내가 여기에 있든 저기에 있든 결국 흐를 것은 다 흘러갈 것이고, 내가 딛는 곳에도 다 길이 있다. 여기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 알 필요도, 내가 누구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반쯤은 흐름에 맡겨 놓은 채로 있어도 된다.
굳이 웃을 필요도 없고, 굳이굳이 없는 말을 지어낼 필요도 없다. 그냥 손이 따라가는 그대로, 발이 놓이는 그 자체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되뇌고 되새긴다. 그걸 몇 번이나 반복하면 이곳에도 끝이 찾아온다.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제20번 D.959
음과 음 사이에는 서로 밀어내는 자석처럼 팽팽한 공백이 있다. 그 공백을 계속 의식하면서도, 그 일이 너무도 자연스럽게만 느껴지게 해야 한다. 그 사이에서 자유롭고 우아하면 된다.
건반을 누를 때는 듣는 이가 ‘저렇게 편하게 치면서 왜 머리가 젖었지?’ 싶을 만큼 필요한 만큼의 힘은 쓰되, 소리에는 생기가 있어야 한다. 소리가 아름다워지는 순간은 음 하나 자체보다 다음 소리로 연결되는 사이에서 생겨나는 여운과, 시작 전의 아주 작은 기대감이 맞닿는 지점에 있어야 한다.
순차적으로 몸을 움직이되 조급해 보여서는 안 된다. 급하게 정지하지도 말고, 누구도 쉽사리 건드리지 못하는 동그라미 하나가 마음 안에 있는 사람을 눈앞에 두라. 정작 본인은 아직 그 동그라미가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는,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사람. ‘어찌하여 이리 살고 있나?’ 묻기보다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게 되셨나’ 흥미롭게 바라볼 줄 알면 세상 것들 절반 이상이 다 내 장난감만 같다.
바람이 차길래 연두색 로션 펌프를 힘주어 눌렀다. 평소에는 내 손톱의 하얀 반점보다 조금 더 클 정도로만 나오던 게 케이크 위 휘핑크림만 한 크기로 손등 위에 자라났다. 다른 손으로 로션을 반 정도 덜어 손을 비벼 문지르니 부드러움이 지문 위와 손가락 사이사이에 스며들었다. 그 감촉을 닮은 분위기가 1악장에 있었다.
소리가 걷는 길에는 잔향이랄 게 없다. 낮고 깊은데, 그게 아래로 웅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내려가 있는 쪽에서 더 깊어지지 않으면서 울적한 모양새를 표현한다. 그러니까 외로워 보이는데 다가와 줄 사람이 그다지 필요하지는 않아 보인다. 피로해 보이지도 않고, 혼자 있는 시간 안에서 까맣게 있을 뿐이다.
검정색 목폴라를 입고 보라색과 청색이 엮인 하늘을 배경 삼아 창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사람도 좋고, 침대 프레임에 등을 기댄 채 방바닥에 앉아 있는 이도 나쁘지 않다. 일단 입을 그다지 열고 싶지 않으면 된다.
연주자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구간도 잘 이용하면 좋다. 빠르게 타격되는 잠깐의 구간도 그렇고, 건반 사이사이로 잔물결치는 모양새도 사람마다 달라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음이 시작되는 곳도, 꺄륵거리는 구간도 느낌은 서로 다르지 않겠는가.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문을 열어두지도 않았길래 나는 피아노를 향해 볼풀공을 눈으로 슬쩍 던졌다. 그러니 피아노 주위에 막이 있었는지, 내가 던진 것에 움푹 패이기도 잠깐. 공은 그 모양 그대로 다시 튀어 올라 사라지더라. 그게 내가 받은 슈베르트의 느낌이었다.
평소의 나는 좌석에 가만히 앉아 있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곡을 이해하지 못할지언정. 그런데 어제는 이상하리만큼 좌석에서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다. 시선도 바빴다.
14열 부근에 앉았던 나는 내 시선 아래 사람들의 뒤통수를 보다가 가까이 앉은 모르는 이의 옆모습도 눈에 담았다. 때로는 무릎 위에 손을 두었다가 팔짱을 끼기도 하고, 눈을 감기도 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또 왼쪽으로 갸웃거리며 무대를 봤다 천장을 봤다. 내게 허용된 선 안에서 계속 움직였다.
왜 이리 내가 부산스러울까 싶었는데, 공연 중간중간 김도현 피아니스트의 소리 어딘가에서 문득 알았다. 아, 7일의 공연은 내가 근래 본 공연 중 가장 난이도가 높다.
곡 자체가 너무 어려웠던 거냐고? 아니, 그런 것보다 그냥 이 공연을 마음 안에 쿡- 박아 놓으려면 이미 피아노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반에 손을 올려본 경험도 어느 정도 필요해 보였다. 슈베르트를 잘 알고, 김도현 피아니스트의 특징까지 알고 있다면 조금은 더 가까이 갈 수 있겠지.
피아노를 치는 저 사람은 이미 피아노와 별의별 일을 다 겪어본 듯했다. 지나치게 고요하지도, 그렇다고 대단히 깊게 눌러주지도 않는 소리 사이에서 허공 위에 유지되고 있는 것들을 들려주는데, 우리는 그 허공에 놓인 것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슈베르트를 이해하려면 앞으로 조금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나는, 지금의 내게는 슈베르트가 조금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시간으로는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이른 시간에 찾아온 나중의 말들이 여기 있구나. 그걸 중간에 깨닫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르다. 이르다... 이 감각을 느껴본 게 언제였더라.
매일같이 뭐가 그리 늦고, 뒤처진 것만 같던지.
아직 이해하기엔 멀고도 멀었다는 그 감각이 내게는 기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