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작품을 집에 걸고 싶은데, 어디에 두면 좋을까요?”
한 관람객이 갤러리스트에게 물었다.
갤러리스트는 작품을 한 번 바라보더니 벽의 색과 조명, 공간의 분위기를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말을 듣다가 잠깐 걸음을 멈췄다.
내게 그림은 주로 찾아가서 보는 것이었다. 미술관이나 전시장에 가서 보고,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사진을 찍고, 다시 다음 작품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이 작품은 전시가 끝난 뒤에도 계속 남아 있을 것이었다. 어느 집의 거실이나 방 한쪽에 걸려 매일 같은 사람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작품을 보는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나는 어떤 그림과 매일 같이 있고 싶을까.
눈길을 끄는 그림과 오래 남는 그림
그 질문을 떠올리고 나니 아까 지나온 작품들이 다시 생각났다.
가장 먼저 발을 멈추게 한 건 말을 탄 소년의 그림이었다.

고풍스러운 무늬 위로 벚꽃 가지가 뻗어 있었고 하늘에서는 눈이 내렸다. 소년 뒤에는 커다란 보름달이 떠 있었다.
봄과 겨울이 동시에 존재하는 풍경이었다.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인데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꿈속에서 한 번쯤 본 것 같기도 했다. 조금 뒤에는 한옥 마을을 그린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연둣빛 하늘 아래 산이 겹겹이 물러나고, 분홍과 주황, 초록빛 기와지붕이 빼곡하게 이어졌다. 멀리서 볼 때는 평온한 풍경이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기와 하나하나에 들어간 손길이 보였다.
두 작품은 전혀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어느순간부터 작가가 머릿속에서 본 장면을 나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 사실이 꽤 신기했다.
작품이 되는 대상도 꼭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작가는 집 앞에 앉아 있는 고양이 사진 위에 그림을 덧그렸고, 또 다른 작품에는 편의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캔디가 등장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장면이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한 번 오래 바라보고 작품으로 꺼내놓으니 나도 다시 보게 됐다.
무엇을 그리느냐보다 무엇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유독 오래 머문 작품 중 하나는 박선미 작가의 앵무새였다. 수많은 선이 겹쳐 만들어진 앵무새는 초록과 파랑 사이 어딘가의 색을 띠고 있었다.
처음 내가 멈춘 이유는 단순했다.

색이 예뻤다.
그런데 작품 옆의 설명을 읽고 나니 조금 달라졌다.
작가는 앵무새를 지성과 언어의 상징으로 삼아 책에서 얻은 생각을 그림으로 옮긴다고 했다. 설명을 읽고 다시 작품을 보니 이상하게 새의 모습보다 그 안에 담긴 생각이 더 궁금해졌다.
왜 하필 앵무새였을까?
작가는 이 그림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남의 말을 따라 하는 새가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작가의 생각을 대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같은 그림인데 몇 분 전과 다른 그림처럼 느껴졌다. 아름다운 색이 나를 멈춰 세웠다면, 그 안의 이야기는 나를 조금 더 오래 머물게 했다.
그때 아까 들은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이 작품을 어디에 걸면 좋을까요?”
만약 내가 이 앵무새를 매일 본다면 어떨까.
아침마다 여전히 색이 먼저 보일까. 시간이 지나면 그보다 다른 것이 보일까.
그림을 산다는 것은 어쩌면 작품을 소유하는 일보다, 한 작품과 아주 오래 이야기를 이어가는 일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이 걸릴 벽, 그림이 하는 말
그날 만난 한 관람객은 그림이 걸릴 벽을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그림 속에 담긴 생각이 궁금해서 작품 앞에 조금 더 오래 서 있었다. 처음에는 전혀 다른 질문처럼 보였다.
한 사람은 ‘어디에 둘지’를 생각했고, 나는 ‘무슨 뜻인지’를 궁금해했다.
그런데 키아프를 다 보고 나오면서 둘이 아주 다른 질문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에 잘 어울려 눈길이 간 그림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도 있고, 마음을 움직인 그림을 위해 집 안의 한 자리를 비울 수도 있다. 결국 둘 다 같은 곳으로 이어진다.
왜 나는 이 그림을 가까이 두고 싶은가. 처음 찾은 아트페어에서 내가 배운 것은 그림을 고르는 방법이 아니었다. 내 눈길이 어디에서 멈추는지, 그리고 왜 어떤 작품 앞에서는 유독 오래 서 있게 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방법이었다.
언젠가 나도 그림을 사게 된다면 갤러리스트에게 똑같이 물을 것 같다.
“이 그림은 어디에 걸면 좋을까요?”
다만 그 전에 한 가지는 먼저 생각해보고 싶다.
이 그림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