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나 수많은 '이별'이 '이 별' 위에 존재할까.
우리는 그들의 수를 헤아릴 수 있을까,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사진: Jaspert Anrijs/ pexels
보통 '입양', 특히 '강제 불법 입양'에 대한 경각심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오인은 입양의 상처가 피상적으로 "친모, 친부에게 버려졌다.", "본국과의 정서적 애착을 잃었다." 등의 감정에 국한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세계의 심연에서 바라본 '사회적·정치적 입양' 피해는 상상 이상으로 광범위하고 복잡하다.
장세진 작가의 <4개월, 4백만 광년>(2020)은 한국의 해외 입양 역사와 그 이면의 구조적 폭력을 조명한다. 작품은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입양된 작가 본인의 경험에 뿌리를 두면서도, 그 서사를 개인사에 가두지 않고 초국가적 입양 산업 전반의 식민주의적 구조를 겨냥한다. 정제되고 차가운 목소리의 내레이션은 입양의 신화와 진실을 폭로한다.
"Sit with me. 당신은 곧 엄마와 헤어지게 될 거예요.
낯선 사람이 당신의 이름을 바꿀 거예요."
(장세진, <4개월 4백만 광년> 중 내레이션 참고)
초국가적 입양의 실체는 상상만큼 그리 이상적이거나 인도적이지 않다. 1950·60년대, 한국전쟁으로 인한 고아·혼혈 아동은 인도주의적 구호로서 서구 국가에 보내는 입양의 형태가 다수 존재하였다.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라는 일종의 '구조' 및 '시혜'의 형식으로 입양은 진행되었지만, 다소 아이러니한 점은 입양아들의 탄생이 전쟁이라는 국가적 비극 내부에서 기인하였다는 점이다. 고아들은 대부분 전쟁으로 인해 부모와 생이별하거나 사별하였으며, 다수의 혼혈 아동은 전쟁 중 강간으로 탄생하였다. 전쟁 이후, 피해자들을 기다리고 있던 현실은 '해방'이 아닌, 또 다른 의미의 '속박'이었다. 지속되는 냉전 속에서 전통은 말살당하였고, 강간으로 인해 태어난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은 유럽과 미국으로 버려지고 낯선 이름을 받아 살아나간다.
폭력의 형태는 물리적 가해에서 정서적, 체제적 가해로 쉬이 옮겨간다. 그리고 이 체제적 폭력은 개별 국가의 문제를 넘어, 냉전기 세계 질서 안에서 서구와 비서구를 가르는 더 큰 구조로 확장된다. 당시 서구사회가 형성한 '비서구 입양 메커니즘'은 더욱 잔혹하다. 국가적 권력과 압력으로 세계를 지배해 온 서구 지배국들은 식민화된 국가, 즉 피식민국들을 '서구 입양 공급 장소'로 사용하였다.
"네덜란드는 제3국의 아이를 입양하는 것보다 땅콩 수입에 제한이 더 많았다."
(장세진, <4개월 4백만 광년> 중 내레이션 참고)
네덜란드란 먼 타국에서 한국 영아들이 입양아로 넘겨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는 백인, 지배층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고착화된 체제가 택한 구조적 폭력의 현장이다.
1980년대 중반, 한국은 세계 최대의 '입양 수출국'으로 둔갑하였다. 해외 입양은 여러 국내외의 이해관계를 위해 남용되었다. 국내에서는 빈곤 해결과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한 수단으로, 그리고 해외에서는 서구 국가들의 폭발적 입양 수요를 맞추기 위한 공급으로 악의 고리를 형성한다.
멀쩡히 부모와 가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입양기관은 '유기아'나 '고아'로 기록하였다. 친부모의 기록은 지워지고, 낯선 이름과 출생지가 적혔다. 흔적을 지우기 위해 표면적으로 사망 선고를 당하기도 했으며, 입양 기관들은 자본 확대를 위해 경쟁적으로 '가짜 고아'들을 '입양 가능 아동'으로 생산해냈다. 이러한 공장형 입양 시스템은 한 시대의 산업이 되었다. 컨베이어 벨트 위의 상자를 조립하듯, 가짜 서류를 찍어냈으며, 아이들은 수출품이 되어 바다를 건넌다.
2021년 2월, 네덜란드 정부는 과거 해외 입양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 행위를 인정하고, 국제 입양을 약 2년간 일시 중지하였다. 이후 정책 재검토를 거쳐 2024년 네덜란드는 국제입양을 단계적으로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비극의 종말이 아니다. 제도는 죽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지독하게 한결같은 사회와 시선 속에서 말이다.
#2.
입양을 기다리며 무력해지는 '4개월'이 흘렀고, 그 이후에는 지독한 '4백만 광년' 동안의 외로움과 고독이 기다리고 있었다.
입양 피해자들은 지금도 여러 형태의 폭력 앞에 놓여 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서 있는 환경과 본인이 이질적인 존재임을 자각하며 겪는 성장기의 '폭력'. 이는 그들이 세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영원한 '이방인'이자 '타자'로 규정하게 한다. 그리고 낯선 이들의 말들에서 시작되는 '폭력'. 그들은 입양되지 않았으면 전쟁통에 매춘부로 팔리거나, 취약한 환경에서 죽어 나갔을 것이라고 말한다. '위로'의 형상으로 둔갑한 말들이 회피와 은폐의 수단으로 쓰인다. 이러한 2차 가해의 경우,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워진다. 즉, 누구나 '가해'의 위치에 놓일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역사란 얼마나 간접적이고 불완전한지 보여준다. 우리는 '담론'을 '사실'로 착각하며 세계 저편의 낯선 이들에게 우리조차 그들에게 '낯선 이들로서' 위해를 가한다.
사진: cottonbro studio / pexels
가장 고요하지만 파괴적인 폭력은 '침묵'이다. 체제와 역사의 비극은 특정한 가해의 주체를 찾아내기 어렵다. 이 이야기는, 즉 누군가를 탓할 수도, 보상을 바랄 수도, 용서하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고통과 사실은 묵인당하고, 세계는 침묵한다. 선이 끊긴 수화기의 다이얼을 계속 돌리는 행위는 허무함, 무력감, 그리고 결국 이해받지 못하는 타자로 남는다는 '고립감'으로 남아 흉터로 자리 잡는다.
#3.
작품이 시도하는 것은 '역사적 재현'이 아니다.
피해자들의 '고통의 역사'는 완전한 재현이 불가능하다.
작품은 피해자들을 오랫동안 괴롭혀 온 침묵의 굴레를 파괴하고자, 세계와의 소통과 화해를 시도한다. 그리하여 작품은 고발의 언어에서 벗어나, 위로와 연대의 언어로 조용히 방향을 튼다. 그리고 입양아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남긴다.
"Sit with me. In a sea of light, you will be born. The stars are your brothers and sisters. They travel with you. You are never alone. Even when you think you're alone. We are with you. Always."
"내 곁에 앉아 보세요. 빛의 바다 속에서 당신은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별들은 당신의 형제이자 자매입니다. 그들은 당신과 함께 여행합니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스스로 혼자라고 생각할 때조차도요. 우리는 당신과 함께합니다. 언제나."
(장세진, <4개월 4백만 광년> 중 내레이션)
별은 나무처럼 땅 위에 뿌리를 내리지 않지만, 하늘을 유영하며 우주를 여행하고 또 다른 별무리들을 만나 오랫동안 스스로 빛을 낸다. 우주라는 광활한 미지의 영역에서 그들은 외롭지만 강하다. 우리는 어디서든 별들을 올려다볼 수 있고, 불러볼 수 있다. 함께라면 더 이상 방황이 아니다. 별들의 동행은 아주 밝은 빛을 내며 우주를 환히 비출 것이다.
"넌 네 안에 모든 가족을 지니고 있어."
"우리는 다 너와 같은 별이야. 널 응원하는."
(장세진, <4개월 4백만 광년> 중 내레이션 참고)
침묵이 멎길, 침묵에 대한 침묵이 그치길 바라며 글을 닫는다.
[참고 자료]
¹ 아리사 H. 오(Arissa H. Oh), 『To Save the Children of Korea: The Cold War Origins of International Adoption』,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5.
²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해외 입양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사례 조사 결과보고서』,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