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을 삶으로 상상하기: 커튼콜
불행이 계속되는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상하게도 그 힘을 노년에게서는 좀처럼 발견하지 못한다. 노년은 삶이라기보다 생의 끝을 기다리는 시간으로 그려지고, 보호시설과 병원이라는 공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상상된다. 수전 구바의 『피날레』는 이러한 상상력의 빈틈을 메우려는 책이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근대화를 급속도로 겪은 대한민국에서 ‘청년’은 쉽게 열망되곤 한다. 한국 사회의 ‘안티에이징’에 대한 열망만 보아도 그렇다. 노년을 말할 때조차, 여전히 젊은 모습을 유지하는 노년을 이상적으로 소비하곤 한다. 사회는 사람들은 노화를 두려워하고, 유병장수를 전제로 미래를 준비하도록 요구한다.
한국 사회는 노화를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관리해야 할 위험으로 취급한다. 보험과 건강기능식품, 안티에이징 산업은 노년을 살아갈 시간이라기보다 대비해야 할 재난처럼 소비하게 만든다. 한국 문화와 미디어에서 노년은 여전히 삶의 주체라기보다 돌봄과 쇠퇴의 대상으로 재현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존재로 소비되는 경우가 잦다. 사회는 노년 자체를 긍정하기보다 얼마나 청년과 가까운 상태를 유지하느냐를 기준으로 노년의 가치를 판단한다.
『피날레』
책은 조지 엘리엇이나 루이즈 부르주아 같은 여성 예술가들의 말년을 차례로 살핀다. 그러나 인물에 대한 기본적인 맥락 설명보다 논의를 이어가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이들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사례를 따라가는 데 다소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삶이 인상 깊게 남는다.
콜레트를 비롯한 여성들이 자신보다 나이 어린 남성과 연애하게 되면서, 흔히 그리스 신화에서 반복되는 이미지를 벗어난 점이 좋았다. 그들은 마치 신화를 벗어난 서사를 써내려갔다. <페드르>나 <오이디푸스 왕>의 이오카스테처럼 나이 어린 남성을 탐하고 결국 자살하게 되는 결말이 아니라, 이들은 예술적 영감을 충분히 펼치며 살아간다.
『피날레』의 가장 큰 성취는 개별 여성 예술가를 소개하는 데 있지 않다. 서로 고립된 사례처럼 보였던 여성들의 노년을 하나의 계보로 묶어낸다는 데 있다. ‘예외적인 여성’이 아니라 ‘선배 여성들’을 발견하게 만든다.
계보가 없다는 것은 단지 이름을 모르는 문제가 아니다. 뒤따라갈 선례가 없다는 뜻이다. ‘나도 저렇게 늙을 수 있다’는 늙음에 대한 상상력을 빼앗긴다. 이 책은 여성 예술가들의 노년을 하나의 역사로 엮음으로써, 노년을 미래가 아니라 단절로 여겨왔던 우리의 시선을 흔든다.
『피날레』는 노년의 여성 예술가들을 복원하려는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들의 삶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연구서의 밀도를 끝까지 유지하려 한다. 덕분에 문제의식은 분명하지만 독자는 각 장을 하나의 살아 있는 이야기로 경험하기보다 사례집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피날레』가 궁극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노년의 예술가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왜 노년 자체를 삶으로 상상하지 못하는가를 묻는다. 노년은 돌봄의 대상이나 관리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욕망하고 창조하며 실패하는 삶일 수 있는가. 이 책은 그 가능성을 증명하려 한다. 비록 그 증명의 방식이 다소 장황하고 학술적으로 느껴질지라도 말이다.
이 책은 노년을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늙는다는 것이 여전히 살아가는 일이며, 창조와 욕망, 실패와 갱신이 끝나지 않는 시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 책이 묻는 것은 여성 예술가들의 말년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다. 지금 우리는 어떤 노년을 꿈꾸고 있는가. 그 노년은 정말 살아 있는 삶일까. 불행이 계속되는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필요하다.
『피날레』가 기록한 여성들은 바로 그 힘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다. 늙는다는 것은 삶에서 퇴장하는 일이 아니라, 끝내 삶의 편에 남아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