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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하루는 묘한 허탈함을 남긴다. 마치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고르겠다며 예고편만 수십 개 보고 결국 아무것도 보지 않은 채 잠드는 것처럼 말이다. 선택지는 많았지만,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했다는 공허함을 다들 한 번씩 느껴보았을 것 같다.


20대와 30대가 건강한 신체와 넘치는 에너지를 가지고도 힘겹게 느껴지는 이유도 어쩌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인생의 범위가 아직은 너무 넓게 느껴지는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일은 설렘보다 기회비용에 대한 불안을 먼저 가져온다. 그런 의미에서 노년은 오히려 가능성이 사라지는 시기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고,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분명하게 알게 되는 시간이다.


<피날레>의 저자 수잔 구바는 노년기에 가장 자유롭고 대담한 작품을 남긴 여성 예술가 아홉 명을 통해, 노년은 창조성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이 노년기에 더욱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가사와 돌봄의 의무에서 벗어나고, 젊음과 외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며, 남성 중심의 권력 구조에 더 이상 자신을 맞추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늦은 나이는 쇠퇴가 아니라, 비로소 자신만의 예술을 완성할 수 있는 시기였다.


저자는 9명의 예술가들을 세 가지 유형으로 소개한다. 사랑을 통해 새로운 창작의 에너지를 얻은 '연인들'(조지 엘리엇, 콜레트, 조지아 오키프), 사회가 기대하는 얌전한 노년의 모습에 순응하지 않고 끝까지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이단아들'(이자크 디네센, 메리앤 무어, 루이즈 부르주아), 그리고 공동체와 사회를 위해 예술을 사용한 '현자들'(메리 루 윌리엄스, 궨덜린 브룩스, 캐서린 더넘)이다. 삶의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노년이란 더 이상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지 않는 시기였다.


이 책은 예술 작품 자체보다 예술가들의 생애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예술가를 이미 좋아하거나 그의 작품을 접해보았던 독자라면 더욱 깊이 읽을 수 있겠지만, 나처럼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문학평론가인 수잔 구바가 서문과 결론에서 노년에 대해 던지는 통찰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노화에 관해 더 많이 알아갈수록 노년에는 비참하게도 여러 능력을 상실한다는 우울한 가정을 무턱대고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고 선언하는 저자에게 설득된다.

 

<피날레> 속 소개된 예술가들은 재치와 대담함, 그리고 배짱을 무기로 삼아 노년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자신만의 창조성으로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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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콜레트. 9명의 예술가 중 가장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동시에 가장 솔직함이 느껴진 사람이었다.)



나는 순수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남게 될까, 아니면 결국에는 직접 만드는 사람이 될까. 오래 품어온 질문이었는데, 이 책을 덮고 나니 언젠가 나의 ‘피날레’ 역시 순수예술가로 완성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선명하게 피어올랐다. 예술은 무용한 취미가 아니라 삶을 계속 만들어가는 정신적 힘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도와준 책이었다.


나는 지금처럼 눈이 초롱초롱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래서 <피날레>에서 말하는 세 가지 모두를 원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열정적인 사랑에 선뜻 응할 수 있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에 억압받지 않으며, 상시로 지혜로운 유머를 곳곳에서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노후준비’도 안일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 세상의 기준보다 자신의 목소리를 더 믿는 용기를 잃지 않는 것.


결국 노년은 삶이 끝나는 시간이 아니라, 평생 만들어 온 자신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간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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