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에는 수백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한 묘한 플레이리스트들이 존재한다. 코닝시티나 엘리니아 같은 옛 <메이플스토리>의 배경음악을 모아둔 영상들이다.
많은 이들이 이 음악을 배경 삼아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다가, 문득 댓글창에 모여 저마다의 유년 시절을 고백하곤 한다. “주말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제자리걸음을 하던 허접한 내 캐릭터가 생각난다”는 식의 댓글에 수백 개의 공감이 달리는 현상은 그리 낯설지 않다.
우리에게 게임 BGM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특정 시절의 공기와 냄새 그리고 나의 가장 순수했던 몰입의 순간을 가두어 둔 타임캡슐이기 때문이다. 시각적 이미지가 사라진 뒤에도 귓가에 남은 선율만으로 당시의 향수를 고스란히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게임 BGM이 가진 힘일 것이다.
이번 게임음악 오케스트라 콘서트 LEVEL UP은 모니터 너머 픽셀 속에 갇혀 있던 기억의 조각들을 오케스트라라는 클래식한 방식을 통해 무대 위로 꺼내 올린 자리였다.
지휘자 진솔과 플래직 심포니 오케스트라, 그리고 오블리주 앙상블이 합작해 낸 무대는 가볍게 소비되던 배경음악을 독립된 하나의 무대 예술로 치환하며 게임 음악의 확장성을 직관적으로 보여주었다. 모바일 화면에서 친숙하게 흐르던 <모두의 마블>이나 반가운 전자음의 <테트리스> 멜로디는 풍성한 사운드로 재탄생했고, <브롤스타즈>와 <발로란트>의 비트는 라이브 연주의 묵직한 에너지를 입으며 객석에 기분 좋은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함께 공연장을 찾은 동행인은 주말이나 퇴근 후의 여가 시간을 게임을 하며 보내는 편이었고, <메이플스토리> 플레이리스트 또한 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그에게 가장 치열하고 익숙한 공간이었을 <리그 오브 레전드(LoL)> 세션이었다. 무대 위로 묵직한 선율이 울려 퍼지는 순간, 나란히 앉아 무대를 주시하던 동행인이 반가움과 긴장감이 섞인 표정으로 속삭였다. “어, 이거 캐릭터 선택 창 bgm이다.” 플레이어들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심장을 뛰게 만드는 순간인 Classic Summoner's Rift Champion Select - Draft Pick이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선율로 변주될 때의 시너지가 상당했던 모양이었다.
실제로 단지 매치를 준비하는 찰나의 순간이 오케스트라의 정교한 연주와 만나니, 당장 거대한 영화 속 전투 장면에 깔려도 어색함이 없을 만큼 웅장한 서사가 그려졌다. 뒤이어 울려 퍼진 프로게이머 페이커(Faker)의 테마곡으로도 유명한 Legends Never Die는 보컬 권인서의 목소리가 더해지며 그 치열했던 서사를 무대 위로 완벽하게 복원해 냈다.
공연은 클래식과 게임음악 두 장르가 가진 본연의 매력을 전면에 내세우며 서로의 이질감을 자연스럽게 결합해 냈다.
결국 게임이라는 가상의 세계 속에서 쌓아온 유저들의 추억과 경험이, 음악이라는 방식을 통해 현실의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거창한 연출 없이도 소리의 힘만으로 관객들을 기꺼이 그 세계관 속으로 넘나들게 만든 이번 무대는 일회성 재미를 넘어, 앞으로 이어질 또 다른 게임 음악 콘서트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기대하고 응원하게 만드는 단정한 힘이 있었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테트리스> OST였다. 화려하고 빠르며 동시에 번쩍거리는 시각적 효과까지 더해진 연주가 모두 끝난 직후, 동행인은 무대를 내려다보며 "꼭 이번 주 내 하루 같았어"라는 피로 섞인 감상을 던졌다. 쏟아지는 블록을 쉼 없이 깨부수며 달려온 한 주와, 쉴 틈 없이 휘몰아친 테트리스 연주의 속도감이 절묘하게 겹쳐 보였던 모양이다.
그 엉뚱하고도 직관적인 비유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게임도 그리고 그 게임 속 음악도 결국은 저마다의 지극히 현실적인 하루하루를 버티고 즐기게 만드는 유쾌한 에너지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