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몇 달간 재밌게 본 프로그램들이다. 드라마 <은중과 상연>, 예능 <소라와 진경>. 오랜 시간에 걸친 두 여자의 우정과 삶의 면모를 다룬 이야기들.
나도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내 이름 옆에 저렇게 둘 친구를 한 명만 택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친구가 있었다. 다만 이름 비공개를 원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성씨 이니셜인 C라고 칭하겠다.

C와는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에서 처음 만나 친해졌다. 많은 추억을 함께했고, 또 내 슬픔과 바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몇 년 연락을 끊었다가, 또 금세 가까워져 단둘이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했을 만큼 희한한 사이다.
C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둘이 홍콩의 길거리를 걷다가 문득, 내가 남자였으면 얘를 좋아했겠다고 느꼈었다고. 유럽 여행을 갔을 때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자기가 엄청 좋아하는 친구라고 당당히 소개해 줄 때 얼마나 감동을 받았었는지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 나와 C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큰 고민 없이 C에게 인터뷰 제의를 했다.

다소 웃긴 반응이 돌아오긴 했으나, 고맙게도 기꺼이 응해주었다.
Q1. 간단한 자기소개
C : 이름은 비공개. 문화예술 언론 사이트라고 들었는데, 나도 예술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미술경영을 전공하는 대학생이고, 현재도 미술관에서 전시장 교육 강사로 근무 중이다.
Q2. 시작에 앞서, 이 글에 배경음악을 깐다면?
C : PREP의 "Speaking Silence". 나도 추천받아서 듣게 된 곡인데 분위기가 좋아서 가끔 찾아 듣는다.
Q3. 당신의 삶에는 어떤 문화예술이 존재하는지?
C : 일단은 미술. 전공이기도 하고, 일도 하고 있는 만큼 늘 나와 함께하는 존재다. 방금도 언급했지만 음악도 자주 듣고, 공연을 보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늘 독서를 하려고 시도하지만 실패하게 된다.
나 : 책을 더 사랑해 주세요. (필자의 전공은 문학이다)
Q4. 요즘 당신을 웃게 하는 사소한 것들?

C : 우리 집 강아지. 귀여운 바보다.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 : 적극 동감한다. 나는 개를 무서워하는데도, 똘망이랑은 뭐든지 할 수 있다.
C : 그리고 집 근처 빵집에서 사는 빵들. 새로운 빵집에 가보는 걸 좋아한다.
나 : 잘 알고 있다. 스트레스를 빵 소비로 해소하는 모습이 되게 귀엽고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Q5. 인스타그램에서 본 '서로가 생각하는 이미지' 챌린지를 해보자. 차례대로 동물, 장소, 식물, 캐릭터, 계절, 취미, 색깔, 음료, 음식.

나 : 내가 만들어본 너의 이미지가 마음에 드는지? (웃음)
C : 아니, 이게 대체 뭐냐.
나 : 동물은 유럽 토끼. (웃음) 토끼상이긴 한데, 만만하지는 않은 느낌. 장소는 아무래도 미술관. 하얗고 세련된 느낌. 식물은, 너의 사주가 '넓은 사막에 자란 풀꽃 하나'라는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검색해 보다 봤는데,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곳으로 꼽히는 칠레의 사막에는 어느 날 기적처럼 꽃밭이 생기기도 했다더라. 캐릭터도 그냥 검색해 보다가 딱 꽂혔다. 핑크빈. 계절은 겨울. 낮보다는 밤이고 대도시. 눈이 많이 오는데 그게 예쁘고 포근한 느낌. 취미는 피아노. 예전만큼 안 한다고 하긴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너와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색깔은 보라색. 음료는 아메리카노. 음식은 아무래도 빵.
C : 너무 웃기다. 유럽 토끼가 제일 웃기다.
나 : 뿌듯하다. 너도 나의 이미지를 각각 짧게 말로 설명해 준다면?
C : 동물은 고양이. 그런데 이제 하루에 절반 이상을 자는.
나 : 인간일 때도 자주 그런다.
C : 장소는 도서관. 네가 실제로 자주 가기도 하지만 분위기도 잘 어울린다. 식물은 선인장. 타인의 개입 없이도 혼자 잘 자라는 듯한 느낌이라. 캐릭터는 쿠로미? 계절은 가을. 독서의 계절. 그리고 차분한 감성. 취미는 독서, 영화 보기. 색깔은 인디고. 음료는 카페라테. 물론 너는 커피를 거의 안 마시지만 이미지는 그렇다. 완전 쓰지는 않고 우유가 섞인 라테 느낌. 음식은 곰탕. 삼삼한 듯하지만 깊고 진한 실속 있는 느낌. 나는 그런 친구들을 좋아한다.
Q6. 내년이면 스물다섯, 우리가 만난 지 10년이 된다. 그 시간 중, 지금 떠오르는 장면 하나만 고른다면?
C : 떠오르는 장면이 너무 많다. 열다섯의 첫 만남도 기억나지만, 역시 가장 행복하고 좋았던 기억은 우리가 함께했던 한 달간의 유럽 여행.
나 : 매우 동의한다.

C : 파리 도심에서의 마지막 날 밤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이곳에 평생 머무르고 싶다는 감정을 공유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나 : 지금 이곳에 있는데도 이곳, 이 순간이 벌써 그리워지는 감정을 그때 가장 선명하게 느꼈던 것 같다.
(C가 이 기사를 읽으러 올 테니, 민망하지만 당시 귀국하고 썼던 일기를 조금 덧붙여 적어두도록 하겠다)
C와 알맞은 시기에 유럽 여행을 다녀오기를 정말 잘한 것 같다.
두고두고 떠올릴 추억도 많이 생겼고, 같이 많이 웃었고 고마운 순간도 많았다.
여행에 대한, 각자에 대한, 또 서로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누었다.
우리가 다른 곡선을 그렸지만 이 지점에서 다시 만난 게 정말 기쁘다.
그게 다시 9월이라서. 그 사실을 같이 느낀 게 꿈의 여행지였던 유럽이라서 더더욱.
Q7. 서른다섯의 우리는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C : 지금처럼 서로를 응원하고 존중하는 사이. 간간이 만나서 놀기도 하고? 그때쯤이면 각자 많은 것들을 이루었을 테니 함께 공유하며 축하해줄 수 있는 사이였으면 좋겠다.
나 : 많은 것을 이루...었겠지? 제발. 아무튼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가졌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어디서 살든 간에. 여전히 그냥 중학생처럼 재밌게 놀고 웃을 수 있는 관계였으면 좋겠다.
Q8. 마지막으로, 하반기에 함께하고 싶은 우정 버킷리스트가 있다면?
C : 함께 공연 보기. 그리고 우리 집에서 하는 걸스나잇? 생각해 보니 네가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간 적은 없는 것 같다.
나 : 걸스나잇. 진짜 재밌겠다.
C : 맛있는 거 시켜 먹고 수다 떨자.
나 : 너무 좋다.
영화 한 편이 평화롭게 끝나는 느낌처럼, 이 인터뷰도 이렇게 끝맺고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