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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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물여섯.

 

회사에 다닌다. 글을 쓰는 게 어려워졌다. 머리속에 있는 문장들을 적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마음이라는 게 생각보다 잘 휘발되는 것 같다. 예전보다는 덜 무기력하고 덜 불행하다는 건 확실하다.

 

2.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사랑...답.을 내놓는 게 어렵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들으면 마음 한켠에 생기는 덩어리들이 분명 있는데 이걸 뭐라고 칭해야할지 모르겠다. 연민? 결핍? 분노? 증오? 그리움? 아릿함? 혐오? 애틋함? 자기 연민? 모순? 그냥 그런 마음?

 

이 모든 걸 한데 모아서 짓이겨 섞어버리고 하나로 통칭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가 있다면 얼마나 편할지. 아니면 애초에 하나의 언어로 묶는 게 잘못된 건지. 사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많은 걸 감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한다.

 

3.

연기를 배우는 동생이 누구를 좋아하는 감각이 뭔지 설명해 달라 한다. 대사를 연습하는데 감각을 모르겠다고.

 

언니, 상대방이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 거 같아? 저 말을 하는 목적이 있어야 대사를 칠 수 있는데 상대가 사과하고 미안하다고 내가 다 잘못했다고 사과해주기를 원할까? 나를 좋아해주길 원하는 걸까? 혼란 (답답 슬픔 화 미움 원망 쪽팔림) 인가? 사랑과 원망사이를 미움이라고 표현하지 않으면 다른 단어가 있을까?

 

야 추억? -

야 우리가 무슨 애야?

당장 먹고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무슨 놈의 추억

아...

너 나랑 저기서 키스 한번 했다고 이러는 거야?

야 그렇게 따지면

나 전남친이랑은 헤어질 때마다 버스정류장에서 했어.

전 전 남친이랑은 놀러가는 바다마다 했고

그럼 다 그게 굽이 굽이 추억 되게?

가는 데마다 죄다 가슴 두근거리면 대체 어떻게 사니?

네 추억 나한테까지 강요 하지마.

365일 중에 끽해야 21일 온 주제에

여름 잠깐 있다가 항상 돌아간 주제에

네가 나한테 뭐라 할 자격이 되냐?

 

떼어내고 싶은데 못 떼어내는 애증을 연기해야 된다고. 진심이 꾹꾹 안에 차 있어야 '애써 아닌 척'이 진짜 같은데, 그 '진심'이랑 상대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지를 헤매고 있다고.

 

상대의 사랑을 갈망하는 걸까? 애초에 원하는 '무언가'라는 게 존재하는 관계일까? 되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못 끊어내는 마음. 그 마음에 대한 자기혐오. 자기혐오에 대한 자기연민. 그럼 애증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감정인 건 아닐까. 애증이 자기 연민이라면 사랑은 뭘까?

 

근데 있잖아, 결국 애증도 사랑아니야?

 

4.

'그냥 그런 마음도 있지.'라고 말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누가 들으면 무슨 마음이라는 거냐고 되묻겠지만. 그냥 ( )이런 마음.괄호 안에 뭘 넣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비워두는 것 같기도 하고, 애초에 채울 수 있는 말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는 '사랑'이라고 하면 상대가 행복했으면 좋겠는 마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몸 안의 어딘가 저린 마음(한때는 내가 제대로 그 감각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사람 일거라는 의심도 했다)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마냥 그렇지만도 아닌 것 같다. 누군가를 보고 있으면 그냥 ( ) 마음이 든다. 사랑이라는 말로 퉁치기엔 너무 복잡하고, 다른 말로 부르기엔 너무 단순한.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감정인데, 거기까지 닿는 언어를 아직 모른다.

 

이름이 없으면 감정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억지로 이름을 붙이면 뭔가 틀리다. 사랑이라고 하면 너무 크고, 좋아한다고 하면 너무 작고, 그냥 그런 마음이라고 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들린다. 근데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다. 분명히 뭔가가 있다. 그게 뭔지를 모를 뿐.

 

문득 이 모든 게 내 부족한 언어력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또 어쩌면, 언어가 원래 거기까지밖에 못 닿는 건지도 모르겠다.

 

5.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이제 좀 적응한 것 같다. 사람이랑 함께 지낼 수 없는 사람이라 말하고 다녔던 세월이 너무 길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게 진심이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뭐가 그렇게 원망스럽고 뭐가 그렇게 밉고 싫었는지.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계절마다 울렁거렸던 감각만 흐리게 남아있다. 가끔 그 시절 얘기를 하면 애써 더듬어야 생각할 수 있는 감정들이 꽤 많아졌다는 걸 느낀다. 그게 나이가 든 건지, 이제 좀 제정신을 차린 건지는 모르겠다.

 

간만에 느껴보는 자유로움이 어딘가 불안하다. 이게 원래 이렇게 가벼운 건지, 아니면 내가 뭔가를 모르고 있는 건지. 얼마 전 제주도 바다에서 이상한 감정들을 많이 느꼈다. 불투명한 부분들 중 몇 군데가 선명해지는, 아주 생경한 감정.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것들이 많다.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일지. 좋은 사람의 기준이라는 게 애초에 있는 건지. 내가 그걸 논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인지. 어느 정도의 잣대를 상대에게 들이밀어야 하는지, 또 나한테는 얼마나 들이밀어야 하는지. 내가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사실 잘 모른다. 시험해보기 전에는 모르고, 시험해보고 나면 이미 늦은 경우가 많아서.

 

좋은 관계를 만든다는 게 뭔지도 여전히 어렵다. 노력하면 되는 건지, 맞는 사람을 만나면 저절로 되는 건지. 안 아플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건지. 아니면 원래 그 정도 아픈 게 평균인건지. 그 기준도 잘 모르겠다.

 

7.

여러 책을 읽는다.

 

예전에는 소설만 읽었는데, 폭이 넓어졌다.

 

생각에 관한 생각 (누가 추천해줬는데 너무 두껍다)

유난한 도전

빛의 제국 

미친 성장 

사장주의자 (원래는 시장주의자인줄 알았다)

(...)

 

자기계발서가 왜 많아졌는지는 모르겠다. 누군가 줘서, 혹은 집어들었는데, 어쩌다 읽었는데, 어느새 쌓여있다. 취향이라는 게 바뀌는 건지 아니면 원래 취향이란 게 없었는지. 전에는 감정을 곱씹을 수 있는 소설을 읽으면서 내 감정을 대신 확인했던 것 같은데 요새는 그런 책을 잘 안 집게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 감정을 쓰는 게 어렵다. 쓸 재료가 없는 것도 같고, 아니면 그냥 마음이 조용해진 건지.

 

8.

이 평화가 당분간 깨지질 않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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