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분 관리가 영 엉망이었다.
모든 이에게 괜히 시비를 걸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리면 ‘다들 뭐가 좋아서 저렇게 웃고 다녀...’라는 혼잣말을 삼켰다. 오후 회의에서는 발표도 보기 좋게 망쳤다. 울고픈 마음을 다잡고 사무실로 돌아와 업무를 하던 중, 모니터 오른쪽 하단으로 메지 미리보기가 떴다. 옆 팀 동기가 곧 퇴사한다는 소식이었다.
애써 붙잡고 있던 마음이 아래로 푹 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남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건 아닐까. 나만 홀로 이 자리에 남겨지면 어떡하나.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퇴근 후에도 기분의 여파가 이어진 건지, 밥을 차릴 힘도 나지 않아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일회용 용기는 싱크대에 차곡차곡 쌓였고, 벗어둔 옷들은 의자 위에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었다. 가뜩이나 좁은 원룸이 점점 더 비좁아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방에 사는 건지, 옷가지들 틈에 몸을 겨우 구겨 넣고 사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결국 성역처럼 여기던 침대까지 옷들이 침범하게 되자 널브러진 옷을 피해 몸을 웅크린 채 잠들었다. 자는 동안 발에 차인 옷들은 바닥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떨어진 옷가지들은 마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 같았다. 아무도 찾지 않고, 아무도 돌보지 않는 섬.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짜증을 내면서 끄고 일어났다. 내 성질머리를 들을 이가 나밖에 없음에도 그랬다. 내가 낸 화는 내게 고스란히 돌아왔다. 하루의 시작부터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런 날들이 며칠째 이어지던 어느 날, 몇 년 전 접질렸던 발목이 다시 아파와 반차를 내고 한의원에 갔다. 겸사겸사 그동안 시큰거리던 손목에도 침을 맞았다. 플라시보 효과인지 모르겠지만, 진료를 마치고 나올 무렵에는 뻑뻑하던 관절이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며칠째 이어지던 찌는 듯한 더위는 옅어졌고, 어느새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코로 바람을 깊게 들이마셨다. 바닥까지 가라앉아 있던 기분이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일찍 집에 들어가는 길에 오늘은 꼭 분리수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대단한 결심은 아니었다. 그저 더 이상 방 안의 어지러움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것 같던 음식물 쓰레기부터 치웠다. 싱크대에 쌓여 있던 일회용 용기는 깨끗이 씻어 말려 두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옷들도 하나씩 주워 개어 두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좋은 기분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워 집 근처 공원까지 천천히 걸었다. 땀은 조금 났지만 바람은 여전히 코끝에서 살랑거렸고, 걸음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좋아하는 빵집에 들렀다. '기분이다!' 속으로 외치면서 아이스 커피도 한 잔 테이크아웃했다.
집에 돌아와 사 온 빵을 한입 크게 베어 물고 커피를 천천히 마셨다. 빵은 역시나 맛있었고, 적당한 산미의 커피가 들어가니 정신이 확 깨는 듯했다. 돌아온 집 싱크대 위에는 더 이상 일회용 용기가 쌓여 있지 않았고, 바닥에 흩어져 있던 옷들도 어느덧 제자리를 찾았다.
별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이상하게 묵은 때를 벗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방 한구석에 쌓여 있던 것들을 정리하자 마음 한구석에 쌓여 있던 것들도 함께 치워지는 듯한 기분. 어쩌면 내가 치우고 싶었던 건 방이 아니라 그동안 쌓여 있던 답답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일이면 또 출근해야 한다. 반복되는 업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기 싫은 회의는 이어질 것이고,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쌓여 있을 거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이상하게 내일만큼은 꽤 괜찮은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환기를 위해 열어두었던 창문 틈 사이로 어느새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