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특정 지역의 이름을 들으면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가 있다. 지형, 특색, 명소와 먹거리부터 언제고 뚜렷한 정치적 성향까지. 그것은 그 지역을 대표하는 아름다움일 수도 있고, 자랑스럽게 내보일 수 있는 상처일 수도 있으며, 기어코 숨기고 싶은 치부일 수도 있을 테다. 지역, 그 곳곳의 고유성은 아름답고 아프다. 한국 근현대사를 거치며 어떤 의미로서, 또 그 의미에 대한 대립항으로서 존재했던 특정 지역의 이미지가 지금껏 유효한 것은 역사적 아픔이다.

   

연극 <구미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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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도시에 과감히 현실의 도시 이름을 붙이는 것은 분명한 의도가 있는 시도일 테다. 현실에 대한 이데아로서 가상을 통해 아름답게 추앙하거나, 현실에 대한 복사본으로서 가상을 통해 냉소적으로 비판하거나.

 

연극 <구미식>의 배경이 되는 가상도시 ‘구미시’를 바라볼 때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지형과 특색과 먹거리가 아니라 시대와 이념과 그것이 낳은 불안이다. 연극이 가상도시를 이데아가 아닌 복사본으로 규정하고, 현실을 끌어올려 희망을 주기보다 바닥에 떨어진 현실의 실상을 들여다보려고 할 때, 우리의 시선은 몽롱하고 위태로워진다.


가상도시 구미시의 새마을운동기념공원에 서있는 ‘행복한 동상’은 권력의 상징이다. 권력자의 사후에 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제작된 동상은 과거 권력의 막강했던 위세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도시가 잘못된 역사와의 관계 단절에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어느 날 약에 취해 공원을 전전하던 구미시의 청년 ‘톰’이 행복한 동상을 마주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약에 취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는 톰과 행복한 동상의 소통이 이어지는데, 행복한 동상은 톰에게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것을 요구하며 확실한 보상을 약속한다. 약물 중독자이자 성지향성을 숨기며 살아야 했던 사회적 약자 톰이 죽어서도 살아있는 권력의 화신을 만나게 될 때 발생하는 사건은 희망적 구원인가, 아니면 철저한 몰락인가.


강한 권력이 강한 도움과 같은 말일 수 있을까. 강한 권력은 누군가를 위기에서 구해낼 힘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권력의 쓸모를 요구할 때, 권력은 정당하게 사용되어 쓰러진 약자를 일으키는 최초의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것. 톰과 행복한 동상의 조우는 권력에게 부여되는 일차적 의무의 반영처럼 보인다.

 

행복한 동상이 톰에게 부탁하는 것은 약자에 대한 도움이다. 행복한 동상은 자신의 몸에 있는 보석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길 부탁한다. 행복한 동상의 행위는 얼핏 바람직해보이지만, 그 의도는 천박하다. 행복한 동상이 도우려는 이들은 여전히 자신을 찬양하며 권력 유지에 도움을 주는 이들뿐이다. 한편 행복한 동상이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대가로 톰에게 주는 것은 톰이 원하는―그러나 그에게 결코 필요하지 않은― 약물이다.

 

진정 필요한 도움이 아니라 일시적 욕망을 채워주는 것. 결코 올바르지 않은 정치적 주고받음, 망가진 철학과 야비한 기회주의의 토대 위에 세워진 권력의 도움과 자비는 철저한 계산 아래서 이뤄져왔으며,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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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톰의 여정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산업 현장부터 교육의 산실인 학교까지, 파편화된 가상도시의 모습은 여전히 망가진 상태다. 연극은 무대 위 실소와 비명과 절규를 통해서 그 뿌리에 신격화 된 권력의 잔재가 있음을 폭로한다. 권력의 상징적 장소인 새마을운동기념공원이 도시 전체를 집어삼킬 듯 퍼져나간다고 느끼면서 톰이 어느 순간 공포감에 휩싸일 때, 그것은 환상보다 현실에 가깝게 느껴진다. 산업화라는 낡고 거짓된 신화를 붙잡고 맹종하는 것. 다른 모든 가치를 배척하는 사상을 끝없이 심고 퍼뜨리는 것. 그것이 ‘구미식(구미의 방식)’이며, 그것은 몰락에 가깝게 쇠퇴하고 있는 어느 도시에 여태껏 남아있는 낡은 시대의 정신이다.


몰락한 도시의 영험한 신이 있다. 따뜻한 가슴이 아닌 냉철한 계산만으로 존재하던 신―권력은 번영이라는 명목 아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으나, 가혹한 희생 위에서 이룩했던 번영은 오래 지나지 않아 낡고 녹슬어 쇠퇴했다. 그러나 쇠퇴한 가상도시에서 신의 임상실험(사회적 실험)은 계속될 것이다. 개발과 산업화라는 환상 앞에서 개인의 목숨은 희생해도 되는 사소한 일로 만들어버렸기에. '어차피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고, 돈만 필요하도록 만들었으므로, 도시는 그 실험 대상을 자처할 것이기에.

 

무대에는 여러 개의 결말이 선보여진다. 추락하는 제비의 시점, 죽어서 신이 된 권력의 시점, 과오를 반복하는 새로운 권력의 시점. 시기와 시점만 바뀌었을 뿐, 모든 것은 여전하다. 환각이 필요한 것은 직시가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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