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0일.
'신의 건축가'라 불리는 스페인 거장 '안토니 가우디' 서거 100주기를 맞아, 그의 대표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외관이 착공 144년 만에 완공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뉴스를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몇 년 전 바르셀로나에서의 기억이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을 몇 개 꼽는다면, 그중 하나는 단연 바르셀로나다. 지금도 내게 바르셀로나는 지금도 '가우디의 도시'로 남아 있다. 당시에는 그저 가우디가 유명한 건축가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고 호기심에 '가우디 투어'를 신청했다. 하루 종일 그의 발자취를 따라 까사 바트요, 까사 밀라, 구엘 공원, 그리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둘러봤다.
건축물들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그의 무한한 상상력과 집요한 천재성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 아름다우면서도 치밀하게 계산된 구조,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곡선과 색채, 건물 곳곳에 숨겨진 상징과 철학. 그의 건축은 단순히 '예쁜 건물'이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특히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압도적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성당 외벽에 담긴 의미를 따라갔고, 다음 날에는 다시 성당 내부를 찾았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나도 모르게 "와..." 하는 감탄이 나왔다. 건축물을 보며 그렇게 충격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성당을 나서며 생각했다. '언젠가 내부까지 완공되면 꼭 다시 와야겠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건축물을 만든 사람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되는 책이었다.
건축물이 아닌, 인간 안토니 가우디를 만나다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은 가우디의 건축물을 소개하는 책이라기보다, 그 건축물을 만들어낸 인간 안토니 가우디를 이해하기 위한 책에 가깝다.
생전에 자신에 대해 많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그는 건축을 통해 자신을 표현했다. 저자는 다양한 연구 자료와 작품 해석을 바탕으로 그의 삶과 사상을 입체적으로 복원해낸다.
책은 어린 시절부터 말년까지 가우디의 생애를 세 시기로 나누어 설명한다. 레우스의 자연 속에서 감수성을 키우던 어린 시절, 젊은 건축가로 성장하던 시기, 그리고 점차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게 되는 말년까지. 병약했던 어린 시절과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 친구들과의 우정, 반복되는 상실의 경험이 한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차분하게 따라간다.
그래서 이 책은 건축가의 전기라기보다 한 인간의 삶을 기록한 역사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연을 건축으로 번역한 사람
직접 가우디 투어를 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자연'이었다.
그는 자연을 단순한 장식의 소재로 사용하지 않았다. 자연을 모방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작품'으로 바라봤고, 자신의 건축이 주변 환경과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기를 원했다. 또한 자연 속에서 건축의 원리를 발견하고자 했다. 기울어진 기둥과 독창적인 하중 전달 구조를 통해 기존 건축 방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건축 언어를 만들어냈다.
책에서도 이런 대목이 나온다.
가우디는 대지의 지형과 방향, 그리고 기후와 위치에 맞춰 조정했고, 구조적이든 장식적이든 모든 요소를 하나하나 세심하게 활용했다. 그에게 기능성과 창의성은 언제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가우디가 짓는 집은 편안하면서도 아름답기에, 사람들은 그 안에서 안락함을 느끼고, 건물 곳곳에 끼워 넣은 "깜짝 효과"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 가우디는 건축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았다. 그는 아름다운 것은 쓸모 있어야 하고, 쓸모 있는 건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p.93)
이 문장을 읽으며 바르셀로나에서 느꼈던 감탄이 다시 떠올랐다. 실제로 그의 건축물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건물의 형태 하나, 창문의 방향 하나에도 이유가 있다. 상징성과 실용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가우디의 건축은 예술 작품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살아 있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삶을 바치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말년의 가우디였다.
조카딸의 죽음과 가까운 이들의 상실을 겪으며 그는 점점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몰두하게 된다. 무엇보다 친구 에우제비 구엘이 세상을 떠난 뒤, 구엘 공원의 고독을 견디기 어려웠던 그는 결국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생활하며 그곳에서 잠을 자기로 결심한다.
책은 당시 그의 모습을 이렇게 전한다. "그는 구엘 공원의 거처를 떠나 성전에 칩거했고, 조그만 방에서 잠을 잤다. 그곳은 작업실의 나머지 부분처럼 석고 모형, 둘둘 만 도면과 메모지, 그리고 책으로 가득했다."
그는 스스로 삶의 끝자락에 와 있다는 것을 직감한 듯했다. 죽음을 준비하듯 자신의 재산을 정리했고, 교구청에 두 개의 성당 재단 설립을 요청했다. 또한 구엘 공원의 집과 소액의 현금 등 바르셀로나에 남아 있던 전 재산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공사위원회에 기증해 성당 건축에 사용하도록 했다.
그에게 성당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었다. 삶의 목적이자 신앙이었고, 자신의 모든 시간을 바칠 대상이었다.
그러던 그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나와 산 펠리프 네리 수도원 방향으로 향하던 중 전차에 치여 중상을 입었고, 사흘 뒤인 1926년 6월 10일 세상을 떠난다.
가우디, 그는 누구인가
가우디는 예술가로서 살았고, 그래서 그 경험을 반영하듯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작품이다. 예술가들은 자연의 법칙을 찾아서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 예술가는 창조주와 진정으로 협력한다. 그는 새로운 방식으로 창조를 이어가고, 따라서 창조된 작품의 기원이신 분에게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우디는 이렇게 말했다. "독창성이란 기원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창조주와 그분의 작품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는 것이다. 창조된 작품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작업은 가우디의 손에서 세련된 창작 도구가 된다. (p.294)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은 단순히 한 건축가의 일생을 요약한 전기가 아니다. 저자는 현지에서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가우디의 삶과 신앙, 그리고 일에 대한 기록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복원해낸다.
그래서 결코 가볍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상당히 밀도 있고 차분하게 읽어야 하는 책에 가깝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고 감탄했던 사람이라면, 혹은 가우디의 건축물 앞에서 한 번이라도 걸음을 멈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읽어볼 만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건축물을 보며 품었던 질문 하나에 대한 답을 건네준 책이었다.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그의 건축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더 이상 천재 건축가의 작품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신념과 집요함, 그리고 평생에 걸친 탐구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