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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를 잃어버린 죄수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미드나잇 가스펠(The Midnight Gospel)》은 다중우주 시뮬레이터를 소유한 주인공 클랜시의 여정을 따라간다. 클랜시는 자신의 현실 속 삶은 제대로 돌보지 않은 채, 시뮬레이터가 만들어 낸 수많은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존재들과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는 이 기록들을 '스페이스캐스트(Spacecast)'라는 우주 팟캐스트로 송출한다.

 

이 작품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대화가 극도로 혼란스럽고 기괴한 시각적 배경과 동시에 펼쳐진다는 점이다. 등장인물들은 죽음, 명상, 자아, 종교, 사랑, 중독, 영성 등 다양한 주제를 논하지만, 화면 속에서는 좀비들이 몰려오거나 행성이 붕괴하고, 누군가는 죽고 다시 살아나는 일이 반복된다. 이러한 배경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대화의 내용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중에서도 다섯 번째 에피소드 「Annihilation of Joy」는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난해하면서도 철학적인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다. 에피소드는 클랜시가 우연히 '영혼 감옥(Soul Prison)'이라는 세계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원래는 접근할 수 없어야 하는 장소였지만, 그는 그곳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결심한다. 영혼 감옥에는 존재론적 공포에 압도되어 스스로 혀를 잘라 버린 길 잃은 영혼들이 갇혀 있다. 이들은 끊임없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순환 속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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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랜시는 이곳에서 영혼새(Soul Bird) 제이슨을 만나게 된다. 제이슨은 죄수 밥(Bob)과 영혼줄(Soul String)로 연결되어 있으며, 클랜시는 우연히 그 줄에 휘말려 밥의 여정에 동행하게 된다. 이후 이야기는 밥이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죽고 부활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제이슨은 이 끝없는 반복을 '바르도 루프(Bardo Loop)'라고 부른다. 이는 티베트 불교의 '바르도(Bardo)' 개념에서 가져온 것으로, 죽음과 다음 삶 사이의 과도기적 상태를 의미한다. 감옥 속에서 밥은 계속해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는 죽음이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혼 감옥에서는 죽을 수 없다. 오직 다시 태어날 뿐이다."

 

에피소드 전체는 이 문장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자아는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클랜시와 제이슨의 대화는 불교와 힌두교, 인드라망(Indra's Net), 자아(Self), 존재와 고통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그들은 인간이 스스로를 독립된 존재라고 믿기 때문에 고통받으며,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정체성과 신념 또한 하나의 감옥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에피소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질문은 단순히 "어떻게 자유로워질 것인가"가 아니다. 오히려 "왜 우리는 존재하기 때문에 고통받는가(We think we exist and therefore we suffer.)"에 가깝다.

 

우리는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자신이 다른 존재들과 분리된 독립적인 자아라고 믿는다. 그리고 바로 그 믿음 때문에 고통받는다. 작품은 이것을 허무주의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절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제이슨은 "자아는 짐이다(Self is a burden)"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짊어진 채 살아간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런 상처를 가졌다. 나는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작품은 그러한 이야기들이 때로는 우리를 규정하는 동시에 가두기도 한다고 말한다. 감옥 속에서 밥은 계속 탈출을 시도한다. 실패하고, 죽고,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영혼 감옥에서 죽음은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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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와 고통, 상실과 후회는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형태를 바꾸며 반복해서 우리 삶을 찾아온다. 에피소드 속 바르도 루프(Bardo Loop)는 단순히 죽음과 부활의 순환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며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감정과 경험의 순환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작품이 이러한 반복을 비극으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이슨은 삶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절박하게 매달리는 문제들 조차 거대한 관점에서는 하나의 게임처럼 바라본다. 우리는 실패를 인생의 중대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들 역시 다른 이름을 달고 반복해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이 에피소드를 오랫동안 잊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열여섯 살 무렵이었다. 가족들과 한 방에 누워 잠들기 전, 깜깜한 천장을 바라보던 순간이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 이런 느낌을 나는 서른 살이 되어서도 다시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상상이라기보다 이상한 직감에 가까웠다. 그 순간의 공기와 어둠,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 언젠가 다시 찾아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시간이 흘렀다.


환경도, 고민도 달라졌지만 삶에는 이상할 만큼 반복되는 것들이 있었다. 형태는 바뀌어도 비슷한 불안이 찾아왔고, 비슷한 질문들이 되돌아왔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고민은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고, 나는 그때마다 새로운 문제라고 생각하며 씨름했다. 밥이 갇혀 있던 바르도 루프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제이슨의 시선에서 보면 그것들은 그저 또 하나의 경험일 뿐이다. 마치 누군가가 게임 속 캐릭터를 성장시키기 위해 반복적으로 퀘스트를 수행하고 경험치를 쌓는 것처럼.

 

 

 

새의 깃털보다 가벼운 심장 


 

어쩌면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그런 과정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눈앞의 문제에 모든 것을 걸고 고통받지만, 더 큰 관점에서 보면 그 또한 하나의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제이슨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너 지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캐릭터 레벨 올리는 데 인생을 갈아 넣고 있는 거야."

 

그 말은 삶이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삶에 부여한 무게와 절박함이 절대적인 것은 아닐 수 있다는 뜻에 가깝다. 작품은 삶을 절대화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삶을 가볍게 무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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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공포와 절망, 그리고 수많은 죽음과 부활 끝에 밥은 마침내 감옥을 벗어난다. 그러나 그가 얻은 것은 단순한 탈출이 아니다. 그는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다. 더 이상 필사적으로 저항하지도 않는다. 흉포했던 밥의 심장은 비로소 새의 깃털보다 가벼워졌고, 그가 흘린 눈물은 장미에게 주는 물이 되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혀를 잃어버렸던 밥은 누구보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혀를 되찾아 마침내 노래를 부르고, 노래가 끝난 뒤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진다. 그가 마지막에 부르는 노래는 탈출의 승리를 자랑하는 노래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가두고 있던 감옥이 바깥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었다는 깨달음이다.

 

그 장면은 고통과 전혀 다른 관계를 맺게 된 한 존재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에 가깝다.

 

“간수 시신에서 나온 피를 마시는 거, 그것도 방금 내가 훼손한 시신

그게 나한텐 자유였었지

감방 동료가 우는 걸 봤지

내가 그 친구의 도려진 눈에 오줌을 휘갈겼으니까

그게 나한텐 자유였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분명해졌어

감옥은 내 안에 있었던 거야 

사실 내가 오줌을 갈겼던 건

내 도려진 눈이지

죄수 가면을 벗었을 때 그때서야

드디어 진정한 자유가 찾아왔어”

 

나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고통받는다. 여전히 비슷한 불안과 질문들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미드나잇 가스펠』이 보여 주는 자유는 그 반복을 멈추는 데 있지 않다. 반복되는 삶과 고통을 끝내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 언젠가는 나 역시 알게 될까. 내가 오랫동안 오줌을 갈기고 있던 것이 남의 도려진 눈이 아니라 내 도려진 눈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래도록 같은 고통을 반복하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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