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소비하다 보면 동시대 예술, 동시대 문학, 혹은 동시대의 문제를 다루는 연극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동시대란 대체 무엇일까. 단어의 의미 그대로라면 지금 우리가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현재를 뜻할 것이다. 따라서 동시대 예술이란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창작물이며, 그렇기에 지금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장 생생한 이슈와 문제의식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때로는 확연한 과거를 다루는 작품이 오히려 가장 날카롭게 동시대의 문제를 끌어오기도 한다. 우리가 이미 지나온 과거의 비극이, 지구 반대편 타국 누군가에게는 뼈아픈 현재 진행형의 고통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공간을 초월해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대표적인 예술적 소재가 바로 디아스포라다. 우리 민족이 주로 이십 세기 격동기 속에서 겪어낸 이산의 아픔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도처의 난민과 이주민의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다.
네이버 토요웹툰 <오사카 환상선>은 바로 이 지점,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동시대의 가장 뜨거운 화두인 국가와 조국, 민족과 가족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오사카 환상선
작품은 1968년 일본 오사카를 배경으로,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야 했던 재일조선인들의 삶을 조명한다.
전쟁은 끝이 났고 조선은 마침내 해방을 맞이했지만, 일본 땅에 남겨진 재일조선인들의 현실은 여전히 참혹하기만 하다. 그들은 여전히 '센징'이라 불리며 멸시와 차별의 시선을 견뎌내야 하고, 더욱 비극적인 것은 그토록 그리워하던 돌아갈 조국마저 남과 북으로 쪼개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주인공인 재일조선인 소년 김용은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나며 깊은 회의감에 빠진다. 당장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과제인 소년에게 차별받는 조국과 갈라진 민족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나 용은 오사카의 조선인 부락 사람들과 점차 깊은 인연을 맺게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들이 품은 거대하고도 무모한 꿈, 바로 오사카에 우리만의 조국을 세우기라는 목표에 용이 점차 동참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비주류들이 겪는 삶
디아스포라의 삶을 산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낯선 땅의 비주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웹툰 <오사카 환상선>은 이 비주류들이 겪는 내밀한 갈등과 뜨거운 연대의 과정을 촘촘하게 그려내며 디아스포라 예술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고향을 떠나온 치요 할머니와 제주 여자들이 나누는 끈끈한 삶의 유대, 그리고 마루와 용이 일본 사회에서 또 다른 소수자로 분류되는 오키나와인들과 나누는 우정은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연대의 가치를 증명한다.
반면 남관 학생들과 북관 학생들이 부딪히는 극심한 갈등은 쪼개진 조국의 현실이 고스란히 이방인의 땅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아픈 단면이다. 이들은 땅과 과거, 그리고 민족에 대한 애정이라는 하나의 동기로 기껍게 뭉치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이념과 생각의 변화 때문에 격렬하게 대립하기도 한다. 고향을 떠나온 이들이 겪는 이 복잡다단한 연대와 갈등의 궤적이야말로 디아스포라 예술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다.
결국 <오사카 환상선>이 그리는 1968년의 오사카는 단순히 지나간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니다. 경계선에 서서 끊임없이 정체성을 질문받고, 지키고 싶은 가치를 위해 갈등하고 연대하는 이방인들의 모습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현재의 풍경이다.
이처럼 과거를 빌려 지금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 지닌 놀라운 동시대성이다. 반세기 전 오사카 환상선 열차에 몸을 실었던 재일조선인들의 거친 숨결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깊은 울림과 질문을 던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