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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내 마음을 닫게 만들었는지, 왜 그토록 겨우내 나를 방 안에 꼭꼭 가두어 두었는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 일이다. 그래도 아픔과 슬픔 또한 아름답게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을 그 노래를 들으며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나의 아픔과 슬픔도 아름다운 것들로 만들어 내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 '눈의 입맞춤' 중에서

 

 

시간의 굴레에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던 적이 있다. 단순히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나이를 먹기 때문만이 아니라 과거와 같은 인풋이 주어져도 이제는 같은 아웃풋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변화를 체감하게 되는 때가 새삼 낯설게 느껴져서 그렇다. 특히 오랜 시간 함께한 가족이나 친구들을 보면 더욱 기분이 모호하다. 중고등학생 때 함께 아이돌, 드라마 얘기만 하던 친구들이 사회인으로서 자기 몫의 일상을 꾸려나가는 걸 보다 보면 아, 이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강하게 체감한다.

 

마치 테세우스의 배처럼 내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조차도 하루하루 변하는데, 내가 여태까지 가꾸어 온 내 자아와 내 세계가 이전과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안 그래도 살아가는 게 가뜩이나 불안하고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미궁 같은데, 나와 내 세계를 이루는 사람들마저 다 바뀌어 버리면 도대체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하는지 막연하게 무서워하기도 했다. 나는 기질적으로 그런 사람이었다. 아무 일도 없으면 없는 대로 불안하고, 이 순간이 소중한 만큼 잃을까봐 무섭고.

 

그런데 오히려 내가 과거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쉽게 과거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원체 억울함이 많은지라 예전에 받았던 상처들을 잊지 못하고 꼭꼭 끌어안고 계속 한탄하면서 꺼내어 보는 악습관이 있었다. 어렸을 때 들었던 못된 말들, 친한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상처들, 그래서 내 지금의 삶에 영향을 준 모든 것들에 지나치게 몰두해 있었던 거다. 어느 날 모든 게 변한다는 걸 돌연 깨닫게 된 뒤로 전부 생각했던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랫동안 가지고 있어서 마음을 계속 다치게 하던 것들이 다시 생각해보면 그정도인가 싶었다.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비록 내게 여름은 상실의 계절이었지만,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은 내 몸과 마음에 다시 걸어갈 수 있는,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득 채워 주었다. 이제 내게 여름은 생명의 계절이다. 나는 지금도, 그 찬란한 햇빛 아래를 걷고 있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중에서

 

 

푹푹 찌는 여름과 꽁꽁 얼어붙은 겨울도 계절의 한가운데에 서있을 땐 미칠듯이 힘들지만 반년만 지나면 그때의 감각은 잊히고 만다. 그렇게 덥다고 난리통이었어도 겨울이 지나 봄이 되고, 푸른 잎사귀가 고개를 들면 여름이 반갑고, 그렇다. 여름은 재생의 계절이지 않은가. 재생은 곧 훼손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아프다. 그럼에도 다시 삶에 후회없이 뛰어드는 게 매미나 나의 공통점이다.

 

제멋대로 해석하는 건 본능이다. 내 마음이 힘들 땐 창가의 접동새가 구슬퍼 보이고, 내가 기쁠 땐 꾀꼬리가 정답게 노래한다. 계절이 돌아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만 거기에 이유를 붙이는 것도 내 자유다. 일년내내 여름인 나라도, 겨울인 나라도 있는데 무려 사계절을 다 가진 우리나라에서 여기에 의미를 붙이지 않는 건 너무 심심하다. 시간 감각이 사라진 채로 사는 건 너무 심심하다.

 

조금 식상할지라도 계절을 꽉차게 누려야 그해도 잘 보냈다고 얘기할 수 있다. 원래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고, 고등학생 때 학교 선생님이 겨울에는 꼭 크리스마스 시즌에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을 보고, 여름에는 계곡에 가서 백숙을 먹어야 흐르는 시간을 그냥 보내지 않는다고, 그래야 조금이라도 붙잡을 수 있다고 얘기했던 게 아직까지도 가슴에 콕 박혀 있던 것이다. 그때보다 어른이 되고 나니 일분일초가 쏜살같이 흘렀고, 어느덧 올해도 절반 가까이 지나 버린 걸 이제야 눈치챈 것처럼.

 

나에게 계절은 한 해를 쪼개는 가장 기본 단위이자 인덱스라고 할 수 있겠다. 시간이 더 지나면 2026년의 봄에는 뭘 했었지, 여름에는 뭘 했고, 가을도, 겨울도, 무언갈 하면서 보냈다는 걸 떠올리면서. 시간이 내 안에 오래 머무르다 갈 수 있도록, 등산로의 벤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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