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사시대 남자가 등장해 짐을 메고 한참을 걷다가 동굴 안에 있는 여자를 데리고 나와 꽃반지를 끼워주고 머티리얼리스트라는 타이틀과 함께 뉴욕을 보여주는데, 영화 줄거리랑은 관련 없는 뜬금없는 오프닝이라고 생각했다.
영어를 손 놓고 산지 꽤 돼서 머티리얼리스트라는 제목에 이제 무슨 뜻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물질주의자라는 단어가 존재하고 생소한 뜻도 아닌데 왜 굳이 영어 발음 그대로 개봉했나 궁금했는데,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의 요청이었다고. 번역한 제목으로 개봉하면 그 의미가 잘 전달이 안 된다고 했다는데, 솔직히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뉴욕 결혼정보 회사에서 매칭 매니저로 근무 중인 루시는 고객 9쌍을 결혼까지 골인시킨다. 그런 루시의 고객 중 한 명인 소피는 스펙도, 외모도 괜찮지만 특별한 부분이 없고 본인도 눈이 높아 매칭에 애를 먹는다. 동료와 고객들 얘기를 하다 남자는 탈모가 없고 키는 180cm 이상인 경우 가산점이 붙는다는 얘기를 하며 다리뼈를 부러뜨리고 철심을 박아 15cm까지 키를 늘리는 수술이 있다는 걸 듣게 된다.
그런 수술이 있다는 건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있어서 알고 있었는데, 이걸 영화에서 들으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인터넷에서 봤던 글은 수술 후에 계속 끼우고 다녀야 하는 고철 덩어리 같은 기구 사진까지 있어 이게 실제로 존재하는 수술이 맞구나 하는 현실감이 있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그냥 영화적 허용인가 싶을 정도로 듣는 루시가 놀란 기색도 없어 기괴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수술이 있다는 얘기를 하면서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하겠지라는 반응까지. 미국은 워낙 다양성의 나라로 알려져 있어 키는 크게 중요한 요소가 아닌 줄 알았는데 저기서도 남자가 키가 작으면 연애 시장에서 밀린다고 대놓고 얘기해서 놀랐다. 그리고 인생의 궁극적인 끝은 결혼을 통한 가족을 꾸리는 것이라는 사고가 이 영화 전반에 깔려있어, 미국이 생각보다 보수적이라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여자는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남자를 조건으로 말하는데 남자는 너무 어리면 말이 잘 안 통하는 것 같으니 좀 나이가 있는 사람을 원한다면서 20대 후반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한 본인은 30대 후반, 40대면서 30대 여성은 어떠냐고 묻자 나이가 너무 많다고 거절한다. 그냥 평생 혼자 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위의 저 장면도 그렇고 소피의 데이트 과정에서 모종의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 사건을 대사로만 짐작할 수 있게 연출한 부분에서 확실하게 여자가 만든 영화구나 느껴졌다.

존과 사귀던 시절 기념일마저도 비싼 주차비 때문에 빙빙 돌고 있는 그 상황에 질린 루시는 어렸을 때 가난해서 가난이 너무 싫었다고 말하며 구질구질한 연애에도 신물이 나 사랑보다는 가치를 선택하기로 한다. 그래서 30대 중반이 된 현재, 자신이 매칭 시켜 결혼까지 성사시킨 커플의 결혼식장에서 만난 금융권 종사자에 외모, 키, 재력까지 다 갖춘 해리와 사귀게 된다. 루시가 해리에게 대쉬하는 여자가 많을 텐데 왜 자기랑 데이트를 하냐고 물어보는 장면은 어이가 없었다. 예쁘고 키 크고 몸매도 좋은 다코타 존슨을 캐스팅 해놓고 저런 대사를 치게 하다니. 영화에서는 이 전부를 뭉뚱그려서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서라고 대답한다. 정확히 어떤 가치인지는 말해주지 않지만 아마 데리고 다녔을 때 나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 사람 뭐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가치만 따지는 물질주의자인 루시가 결국은 사랑을 선택해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루시가 선택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른 가치로 바뀌었을 뿐이지 영화는 끝까지 가치를 따지는 물질주의자에 대한 내용이었다고 느꼈다. 해리가 키를 늘리는 수술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팍 식은게 눈에 보여서 좀 웃기기는 했다. 루시 말로는 키 수술 때문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안 끌리는 것 같다고 둘러대기는 했지만. 존은 이때까지 결혼을 계약이니 비즈니스라느니 시니컬하게 말했던 루시에게 오프닝 속 선사시대 남자가 여자에게 꽃반지를 손에 끼워줬던 것처럼 꽃반지를 끼워주며 끝난다. 비즈니스라고 할 게 없었을 때 최초로 결혼이라는 걸 했던 사람은 왜 결혼을 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았다.

인간은 외로우니까 결혼을 하는 거라고 했던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요즘 들어 주변에 결혼을 하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가뜩이나 서로 바빠 만날 시간이 없는데 이제 다 결혼하고 나만 남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도 외로워지면 생각에도 없는 결혼을 하게 될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사랑과 결혼에 대해 시니컬하게 보여줘 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로맨스 장르답게 비현실적으로 끝난다. 결말이 아쉽게 느껴졌지만 현실 그대로를 보고 싶은 거라면 다큐멘터리를 봤을 건데 내가 본 건 로맨스 영화니까 수긍하게 됐다. 그럼 물질이 전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전부인 현실과 달리 물질이 아닌 사랑을 선택하는 비현실적인 요소가 있는 게 맞으니까.
꿈보다 해몽이라고 내가 과장되게 해석하며 본 걸 수도 있겠지만 꽃밭 같은 로맨스 영화가 아닌 잔잔하면서 슬프지는 않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로맨스 영화를 찾는 사람이라면 좋을 영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