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청소년극을 단 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단순히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해서 그 모든 이야기가 청소년극이 될 수 있을까? 아니다. 청소년극은 그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 때로 청소년기는 기성세대의 문법에 편입되기 전의 불안정한 과도기를 보여주는 듯도 하다. 그렇기에 청소년의 이야기는 조금 더 솔직하고 가감 없는 '날것' 같다는 인식이 크지만, 이조차 어른들의 납작한 편견처럼 느껴진다. 십 대라고 해서, 어른이 아닌 청소년이라고 해서 어떤 억압도 없이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오히려 어른들의 폭력과 통제 아래 짓눌리며 스스로 침묵을 강요받는 상황에 놓일 때가 많지 않은가.


국립어린이청소년극단의 연극 <노란달 YELLOW MOON>(데이비드 그레이그 작, 토니 그래함 연출, 명동예술극장, 2026.05.28.~06.14.)은 벼랑 끝에 선 두 청소년을 무대 위로 초대한다. 열악한 환경 속 방치되어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내몰리는 소년 '리'와 완벽에 대한 압박 속 스스로 입을 닫아버린 소녀 '레일라'다. 두 인물은 예기치 못한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청소년기라는 혼란의 터널을 온몸으로 통과해 낸다.

 

 

 

너 나랑 갈래? 나랑 북쪽으로 갈래?


 

극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이미 연극은 시작된다. 연극에 등장하는 네 명의 배우가 객석을 돌아다니며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기 때문이다. 이들은 살갑게 관객들을 맞이하고 질문을 던지며 여러 대화를 나누는데, 그 순간만큼은 배우가 아니라 그저 연극을 즐기러 온 관객 같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게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자유롭게 객석 사이를 오가던 넷은 막이 오를 시간이 되자 자취를 감추고, 이내 무대 위로 등장한다. 순식간에 극 중 인물이 된 이들은 리와 레일라, 그리고 엄마와 빌리 등의 캐릭터가 되어 본격적인 이야기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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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어린이청소년극단

 

 

우리는 가장 먼저 리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리를 둘러싼 나머지 배우들은 마치 코러스처럼 끊임없이 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사슴이라는 별명을 가진 리는 최고의 문제아다. 그는 알코올 중독인 엄마와 함께 허름한 아파트에서 살아가는데, 친아빠가 남긴 수사슴이 그려진 모자를 쓰고 다니며 온갖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닌다. 너무도 자유분방해 보이는 리는 그러나 푹 눌러쓴 모자 안에 갇힌 한 소년일 뿐이다.


그러다가 초점이 바뀌면, 우리는 이제 레일라에 대해 알게 된다. 부유한 중산층 무슬림 가정에서 자란 레일라는 모범생이다. 평범하고 또 완벽해 보이는 레일라는 그러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갇혀 '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리와 레일라, 그리고 이들과 얽힌 다양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홀린 듯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금요일 밤에 가닿게 된다.

 

한 마트에서 우연히 마주친 레일라에게 함께 놀자고 제안한 리는 특유의 껄렁하고 자유분방한 말투로 이렇게 말한다. "아, 올 거야? 올 거야!" 애초에 거절이라는 선택지를 주지 않는 리의 말투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인 레일라는 리를 따라나선다. 그리고 리와 함께한 금요일 밤, 돌이킬 수 없는 사건에 얽히게 된 레일라는 혼란에 빠진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는 레일라를 향해 리는 다시 묻는다.

 

너 나랑 갈래? 나랑 북쪽으로 갈래?

 

 

 

지금 우리는, 마침내,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됐으니까


 

레일라는 리와 함께 도망길에 오른다. 따지고 보면 그럴 이유는 전혀 없었다. 레일라는 그냥 리를 두고 다시 돌아가기만 하면 됐으니까. 하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명백하다. 다시 돌아가는 일 자체가 지옥이었으니까. 레일라는 버릇처럼 중얼거린다. 난 거기에 있지 않아. 난 여기에 있지 않아. 그 순간, 레일라에게 주어진 선택지. 그러니까 리를 따라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몹시 매력적이었다. 왜냐면 나는 마침내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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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어린이청소년극단

 

 

리와 레일라가 향하는 곳은 리의 친아빠가 있는 블랙워터사이드다. 함께 기차를 타고, 눈이 펑펑 내리는 날 길을 오르다 죽을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결국 한 산장지기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둘은 그렇게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전진'한다는 것이 꼭 성장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어떨 때는 그저 멈출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나 의지와 다르게 밀어닥치는 사건에 의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리와 레일리는 그 전진 속에 자신만의 길을 찾으며 삶이라는 거대한 무게를 책임지기로 결심한다.

 

늘 부유하는 감각 속에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나는 여기에 있지 않아'라고 생각하던 레일라가 이제 '나는 여기에 있어'라고 말하기까지. 자신의 뿌리에 대한 흔들림과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엄마의 무관심으로 폭발하듯 감정을 드러내며 사고를 치던 리가 이제 책임이라는 단어를 꾹 삼킬 때까지. 두 인물은 그렇게 전진한다.  

  

 

 

어쩌면 그냥 연극보다 더,


 

청소년극은 특정 연령층을 겨냥하는 극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과도기를 통과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이미 그 시기를 지나온 어른들에게도, 현재 그 시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청소년에게도 동일하게 유효하다. 관객의 연령대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어릴 때 읽은 '어린 왕자'와 어른이 되어 읽는 '어린 왕자'가 다르듯, 청소년극 역시 각자가 서 있는 삶의 궤적에 따라 매번 새롭고 다채로운 감상으로 다가올 것이다.

 

연극 <노란달 YELLOW MOON>은 그런 청소년극의 과도기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는 극이다. 특히 텅 빈 무대를 가득 채우는 배우들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단지 무대의 높낮이를 다르게 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공간을 뒤바꿔 버리는 연극적 상상력의 즐거움을 제대로 이용한다는 점이 인상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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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어린이청소년극단

 

 

무대는 살짝 경사진 나무 바닥 하나, 그 위에 올라간 의자 하나. 이게 전부다. 하지만 배우들의 대사와 몸짓이 더해지면 어느덧 리의 집이 되기도 하고, 공터나 동굴이 되기도 하며, 기차 안, 혹은 아주 맑은 호수로 뒤바뀐다. 그리고 위에서 쏘아져 내려오는 노란빛. 노란 달을 닮은 그 조명이 배우를 비추면, 그는 순식간에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난다. 이처럼 <노란달 YELLOW MOON>은 무대 장치와 배우들의 코러스를 영리하게 활용하여 연극적 요소를 살렸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무대 세트가 작품의 연극성을 한층 높여준 셈이다.



 

레일라와 리의 발라드


 

<노란달 YELLOW MOON>의 부제라 할 수 있는 '레일라와 리의 발라드'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이 작품에서 음악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객석 입장 전부터 흐르는 음악이나, 로맨스 장면에 흐르는 배경음악 등이 그 예다. 누군가 자신의 사랑을 재즈 같았다고 회고하거나 질풍노도 같았던 청소년기를 데스메탈에 비유하는 것처럼, 인생의 중요한 순간은 종종 하나의 음악 장르로 치환되곤 한다. 그 자세한 사정을 다알지 못하더라도 장르만 들으면 대강 어떤 시기를 보냈겠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폭풍 같은 시간을 돌파해야 했던 레일라와 리에게는 왜 하필 '발라드'라는 장르가 붙은 걸까.

 

개인적으로 발라드는 그 어떤 장르보다 가사와 그 안에 담긴 서사가 선명하게 부각되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화려한 기교나 엇나가는 드럼 비트보다는, 오롯이 인물이 읊조리는 이야기의 힘으로 이끌어가는 템포를 가졌다. 스스로 택한 침묵 안에 갇힌 레일라와, 모자 안에 갇힌 리가 기어코 입을 열어 자신만의 서사를 완성해 나가는 이 청소년극에 발라드보다 더 걸맞은 장르는 없을 것이다.

 

연극 <노란달 YELLOWMOON>은 길을 잃었던 두 청소년이 마침내 자신의 삶의 서술자가 되어 부르는 한 곡의 발라드다. 타인의 통제에서 벗어나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로 빚어낸 둘의 이야기는 객석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무대 위에 흐르는 이 투박하고도 솔직한 멜로디는 극장 문을 나선 뒤에도 오랫동안 맴돌며 짙은 잔상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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