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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지진해일이 일본을 덮쳤다. 원자력발전소가 무너졌다. 나는 그때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나는 일곱 살이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나이였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조금 더 제대로 인지한 것은, 학교에 입학한 후였다. 어린이용 잡지 한쪽에 원자력 발전 찬반에 대해 논하던 지면이 있었다.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다. 생각과 현실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지만 원자력 문제는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대학에 와서도 교수님은 여전한 질문을 던지셨고, 대답은 여전히 요원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가 알게 된 것은 원자력으로 인한 피해가 생각보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전력난과 경제 문제가 그 이상으로 발목을 잡는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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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돌파구의 <아이들>은, 원자력 사고 이후의 세계를 다룬다. 배우들은 지역명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연기는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사건을 거슬러 오르게 했다. 연극에 등장하는 배우는 단 세 명이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근무하다가 은퇴한 그들의 세계는, 한편으로는 삶의 연장선이고, 한편으로는 세상과 단절되어 있으며, 조금씩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아가던 헤이즐과 로빈에게 과거 동료였던 로즈가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로즈를 맞이하는 헤이즐의 태도는 눈에 띄게 어색해 보인다. 그 어색함이 단순히 시간의 물리적 공백에서 나오는 것인가. 답은 곧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불완전한 어른이다. 도덕적으로 완벽하지도, 온전하게 이타적이지도 않다. 그들의 갈등은 처절하다가, 유쾌하다가, 가볍다가, 다시 무거워진다. 그럼에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로즈의 결심이었다. 20-30대의 젊은 청년들이 직업이라는 명분하에 방사능에 노출되어 죽어가는 건 불합리하다고, 원자력 발전소의 일은 우리가 시작했으니 끝까지 우리가 매듭지어야 한다고. 로즈는 그렇게 말한다. 접근이 통제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 내부의 방사능 수치는 지독하게 높고, 그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남은 시간은 길지 않다. 발전소에 들어가야 하는 것은 당장 오늘 밤. 더 지체되었다가는 대량의 방사능이 바다를 오염시킬 것이다.

 

 

[돌파구] 아이들(26-0521)_ⓒShin-joong Kim_088.jpg

극단 돌파구 제공 ©김신중, 김보연

 

 

그렇기에 로즈는 이미 스스로의 결말을 정해두었다. 발전소에서 오래 근무한 경력자들은 청년들을 대신할 수 있을 테니까. 아직 많은 생을 남겨둔 아이들의 삶을 이어붙이기 위해, 기성세대의 책임을 끌어안고서. 하지만 헤이즐은 동행을 부탁하는 로즈의 제안을 격렬하게 거절한다. 헤이즐에게는 가정이 있고, 건강한 삶이 있다. 무엇보다 아직도 부모님을 찾는 딸 로렌이 있다. 그녀가 포기해야 할 삶은 로즈의 것보다 훨씬 선명하고 무한하다.

 

배우들의 연기를 바라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며, 끊임없는 질문이 남았다. 원자력 문제가 여전히 끝맺어지지 못하듯이. 속내에서 계속 의문이 돌고 돌았다. 나는 로즈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나보다 어린 세대들의 미래를 위해서, 나의 시간을 희생할 수 있는가? 저렇게 기꺼이?

 

지금의 나는 연극 속 로즈가 지키려는 그 ‘아이들’이다. 극의 인물들 중에서는, 엄밀히 따지자면 헤이즐의 딸 로렌에 가깝다.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채 부모님을 필요로 하는 로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내게 미래 세대의 이야기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논하기엔 내가 경험할 삶부터가 아득하고 불확실하다. 진로를 고민하고 취업을 걱정하는 내내 어른이 될 자신이 없다는 사실을 매 순간 깨닫게 된다.

 

이런 나도 언젠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헤이즐은 로즈에게 화를 내고 진저리를 치지만, 결국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공연의 마지막. 요가를 하는 헤이즐과 로즈의 모습은, 로빈의 유머처럼 일종의 기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는 것 같다. 지진과 해일에도 흔들리지 않을 바다 아주 깊은 곳으로. 어른의 책임만큼. 그렇게 심해로 젖어들어가면 어른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을까.

 

지진해일이 원자력 발전소를 파괴했기 때문일까, 혹은 방사능이 바다를 오염시키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일까. 요가인 듯 기도인 듯 절박하게 자신들의 결말을 받아들이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마치 자신의 의지로 바닷속에 수장된 존재들 같다. 고립된 오염 지역에 스스로 걸어들어간다는 점에서, 그들의 삶은 물리적으로도 상징적으로도 단절된다. 그것은 더는 아이들일 수 없는 어른들의 결말이다. 불완전하더라도, 불가피할지라도.

 

 

260521 극단 돌파구 아이들 리허설 ⓒ김보연 (136).jpg

극단 돌파구 제공 ©김신중, 김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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