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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도 없이 어그러져 버렸으나, 그것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답이었던’.

   

‘너울’을 하나의 문장으로 풀어내야 한다면 이것이 최선이리라.

 

2026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의 선정작으로, 대학로에서 관객들을 마주하며 특유의 파동을 전하고 있는 연극이 있다. 사랑과 시간의 흔적에 관한 울림을 풀어 나가는 작품 '너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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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으로 ‘너울’은 사랑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소용돌이치며 너울지는, 고작 몇 초 뒤의 파동도 예견할 수 없게 만드는 굽이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

 

가장 처음의 장면에서 관객들은 삼십여 년 동안 함께해 온 커플 ‘벨’과 ‘플로’의 일상을 마주한다.

 

그러나 뒤이은 장면에서 시간을 거슬러 이십 대의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관객들은 저마다 머리에 큰 물음표를 이게 된다. 이십 대의 그들에게 별다른 일이 닥치지 않았더라면, 조금 전 관객들이 보았던 삼십여 년 이후의 모습은 결코 현실이 되지 않았을 것임이 명백한 탓이다. 말하자면 ‘이십 대의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이 분명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교차하는 장면들 사이로, 관객들은 과거의 그들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를 바삐 좇게 된다. 예측할 수 없는 과거의 사건들을 따라가 그 끝에 다다르는 순간 관객들은 큰 충격을 받게 되고, 그 사건이 현재에서 어떻게 끝맺음하는지를 목도하는 순간 관객들은 마음 한켠에 너울지는 이름 모를 감정의 흔적을 확인하게 된다. 그 감정에 붙이는 이름은 저마다 다를지언정 감정이 남기는 잔향은 누구에게나 의심의 여지 없이 선명할 것이다.

 

벨, 플로, 그리고 아나이스 사이 관계의 역학은 이보다 더 복잡하게 얽힐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그러지고 꼬여 버리지만, 꼬인 매듭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그들의 관계란 모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놓인 필연적인 매듭이라는 느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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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의 울림을 논외로 하고서라도, ‘너울’이 가져다주는 관극의 묘미는 작품 안과 밖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벨, 플로, 아나이스의 오십 대와 이십 대를 각각 맡아 해석하는 여섯 명의 여성 배우들이 오롯이 공간을 장악하며 이끌어 나가는 극이란 그 존재만으로도 관람의 충분한 동기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극의 초반에서 잔잔한 물결처럼 등장하는 사소한 몸짓, 셔레이드, 스쳐 지나가는 대사들이 극의 후반부에서 거대한 파도가 되어 다시금 덮쳐 오는 수미상관의 구조를 만끽하는 것 역시 ‘너울’이 선사하는 특별한 경험이다.

 

‘너울’의 전 회차 공연에는 대사, 소리 및 음악 정보 등을 담아낸 한글 자막이 표기된다. 접근성을 위한 장치인 이 한글 자막이 관극에 있어서 또 다른 장치로 작용하기도 한다 - 기존의 대사와 배우들이 즉석에서 되살려 표현하는 대사가 조금씩 달라지는 순간마다 그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고 대사의 결을 비교해 보는 것은 관람을 풍성하게 하는 또 다른 요소이다.

 

‘법적으로 인정 못 받으면 어때, 드레스 입은 헤테로가 있어야만 합법인 거냐?’라는 플로의 말처럼, ‘너울’만의 위트가 드러나는 대사와 배우들의 호흡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여기까지 왔나 싶을 정도로 복잡한 매듭의 복판을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와중일 것이다.

 

‘답도 없이 어그러져 버렸으나, 그것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답이었던’, 가로놓인 세월을 관통하는 사랑과 이해와 관계에 관한 이야기는 오직 아르코예술극장의 ‘너울’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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