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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움’이라는 감정은 ‘남의 좋은 일이나 물건을 보고 자기도 그런 일을 이루거나 그런 물건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 감정을 느껴봤을 것이다. 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대상이 나타나면 자연스럽게 부러움의 감정이 일어나고, 스스로가 유독 초라하게 느껴지는 시기에는 온 세상이 나보다 앞서가는 듯해 모든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부러우면 대개 배가 아프다.

 

이러한 부러움이 종종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내게 부러움을 인정하는 것은 곧 내가 그리 훌륭한 인간이 아님을 자백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배가 아프다는 것은 결국 내가 모자란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감각이었다.

 

달갑지 않은 이 감정이 내게 머물렀던 시기를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그리 밝지 않다. 부러움을 수용하지 못한 마음은 이내 자기 비하로 변질되었다. 선망의 대상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신을 깎아내리거나, 혹은 방어 기제로써 그 대상을 깎아내리기도 했다. 나를 높이 세우는 것보다 상대를 나만큼 낮은 위치로 끌어내리는 편이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다.

 

과거보다 조금은 나아졌을지언정, 부러움은 여전히 유쾌한 감정이 아니다. 누군가의 멋진 면모를 발견하는 즉시 비교의 굴레로 이어지곤 한다. 아직 떨쳐내지 못한 이 결핍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장기하 – 부럽지가 않어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가사를 보면, 화자는 역설적으로 무엇인가를 매우 부러워하고 있다.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라는 부분은 강한 부정 속에 숨겨진 반어법처럼 들린다. 너무 부러운 나머지 그 감정을 애써 반대로 돌려 말하는 것이다. 

 

 

니가 가진 게 많겠니

내가 가진 게 많겠니

난 잘 모르겠지만

 

...

 

세상에는 천만원을 가진 놈도 있지

난 그놈을 부러워하는 거야

짜증나는 거야

누가 더 짜증날까

널까 날까 몰라 나는

근데 세상에는 말이야

부러움이란 거를 모르는 놈도 있거든

그게 누구냐면 바로 나야

 


니가 가진 게 많은지 내가 가진 게 많은지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화자는 불필요한 비교를 하고 있다. 세상에는 천만 원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지만, 결국 그 자리는 나의 것이 아니다. 만약 내가 그 천만 원을 가졌다면 부러움은 사라졌을까. 누가 더 짜증이 날지 모른다고 말하지만, 화자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부러워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아 그게 다

부러워서 그러는 거지 뭐

아니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

그게 다 부러워서 그러는 거야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아주 뭐 너무 부러울 테니까

 

 

방금까지 확신에 찬 자랑을 늘어놓던 화자가 누구였는지 돌아보게 된다. 부러움을 모르는 놈이 바로 나라고 외쳤던 그 자랑이, 결국 나의 부러움에서 기인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부러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는 행위는,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내가 상대에게 미치지 못하는 존재임을 공식화하는 것과 같게 느껴진다. 타인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 곧 나의 결함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논리는, 결국 정신 승리로 이어진다. 이 노래가 남기는 씁쓸함은 가사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게 다 부러워서 그러는 거지 뭐....”

 

 

 

Tate McRae - she's all i wanna be 


 


 

 

She's got everything that I don't have

How could I ever compete with that

 

...

 

She's got everything that I don't havе

And she's all I wanna be

all I wanna be so bad so bad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온전히 갖춘 자를 부러워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로 다가온다. 집과 차, 학벌부터 가장 직관적인 대상인 외형과 내면까지. 결핍을 하나씩 뜯어보면 아주 다채롭다.

 

내가 서툰 일을 누군가 손쉽게 해낼 때, 부러움은 열등감으로 이어진다. 못난 부분에 몰두하다 보면 나의 고유한 장점조차 가려진다. 하지만 이는 순수한 부러움의 결과라기보다, 그 토대 위에 내가 멋대로 쌓아 올린 부정에 가깝다.

 

Tate McRae의 ‘she's all i wanna be’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그녀가 부러움을 숨김없이 드러낸다는 점이다. 자신의 부러움을 솔직하게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래는 상대가 가진 모든 것과 그 존재 자체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가감 없이 쏟아낸다.

 

이는 열등감에 잠식되는 것을 넘어, 결핍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부럽지 않다고 애써 부정하거나 상대를 깎아내려 자신을 방어하는 대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고 투명하게 열망하는 그녀의 모습이 오히려 부러워지기도 한다.

 

 

 

Radiohead – Creep


 


 

 

I don't care if it hurts

I wanna have control

I want a perfect body

I want a perfect soul

 

...

 

You’re so fucking special

I wish I was special

But I'm a creep

I'm a weirdo

What the hell

am I doing here

I don't belong here

 

 

이 곡은 부러움보다 자기혐오가 더 짙게 배어있다. 부러움과 자기혐오는 엄연히 다른 의미를 지녔겠지만, 한때 내게 이 둘은 비슷한 의미였기에 이 노래에서 깊은 부러움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노래에서 나는 늘 이상하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통제권을 원한다.

 

상대는 매우 특별하지만, 나는 그 공간에 섞일 수 없는 이질적인 존재다. 선망하는 대상처럼 특별해지고 싶지만, 자기혐오의 심연에 빠진 이에게 그것은 도달할 수 없는 허상일 뿐이다.

 

부러움의 대상은 외부에 존재하는 제3자다. 그러나 외부를 향했던 부러움은 어느덧 내부에 자기혐오로 안착한다. 이 과정에서 부러움은 더 이상 타인을 향한 동경이 아니라, 나를 공격하는 무기로 변한다.

 

자신을 ‘weirdo’와 ‘creep’으로 여긴다면, 나는 영원히 이곳에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스스로를 허락하지 않는 주체는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끊임없는 자기혐오는 결국 나를 있는 그대로 존재하지 못하게 가두는 감옥이 된다.

 

 

 

사실은 아주 많이 부러웠다


 

언젠가 누군가를 순수하게 부러워할 줄 아는 능력은 대단한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전까지 내게 부러움이란 나의 열등함을 증명하는 지표였으나, 그 말을 들으니 이 감정이 예전만큼 창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끔은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타인의 장점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내게도 조금은 생겼다는 증거 같아서 말이다.

 

물론 여전히 부러움이 결핍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 감정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바라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결핍을 수용하기 위해, 오히려 부러움에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순수하게 부러워하기 위해서는, 더 기꺼이, 그리고 더 자주 부러워해야 한다. 즉, 부러움과 친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동안 애써 감춰왔던 나의 결핍인 부러움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내세워보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랫동안 삼켜왔던 말을 꺼내본다.

 

“사실 너무 부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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