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윅의 'The Origin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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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극 '오펀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모르는 게 약이란 생각을 하고 살 때가 있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고, 알지 못해도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나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때로는 쓴소리까지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또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느끼고 있다.
이런 문제는 개인의 내면 뿐 아니라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물론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되는 일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아예 모르는 것과 경험해보지 않은 것은 다르다. 사람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공동체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이며, 서로 정보를 나누고 삶의 방식을 배우고 생존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다. 그 중심에 바로 가족이 있다. 가족이라는 형태가 오랫동안 보편적인 공동체로 자리한 이유 역시 그 역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살아가기에 세상에 축적된 지식과 경험은 너무 방대하다. 삶에는 수많은 갈래가 존재하지만, 가족은 특히 부모는 이미 먼저 삶을 살아본 사람의 위치에서 보다 안정적이고 보편적인 방향으로 서로를 이끌어줄 수 있다.
물론 ‘정상성’이라는 기준 자체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사회는 일정한 기준 안에서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대부분이 그 틀을 통해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반대로 그 과정에서 충분한 관계와 경험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회의 주변부에 위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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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펀스의 트릿은 바로 그런 어긋남 속에서 괴로움을 겪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가장 먼저 익힌 생존의 방식으로 자신과 동생 필립을 대한다. 생존과 삶은 분명히 다르다. 생존이 단지 살아 있음 그 자체를 의미한다면, 삶은 한 사람이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만드는 의미와 관계를 모두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트릿의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관계 아래 두 사람은 더 넓은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트릿과 필립의 관계는 사랑과 억압이 뒤섞인 형태이다. 트릿은 분명 필립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의 방식은 건강하거나 보편적이지 않다. 두 사람의 관계는 철저히 수직적이다. 세상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독점한 트릿이 위에 서 있고, 필립은 그 아래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해롤드가 등장하면서 그 구조는 조금씩 흔들리고 두 사람 사이의 격차 또한 서서히 좁아진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변화를 마주하면서 트릿과 필립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필립은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반면 트릿은 두려움을 먼저 경험한다.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사실, 지금까지의 삶 자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트릿에게 큰 불안을 안긴다. 그는 해롤드에게 인정받고자 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그 행동 역시 결국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면 필립은 다르다 그는 세상을 거의 알지 못한 채 살아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 분명한 자아를 가졌다. 트릿의 억압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잃지 않은 필립은 빨간 구두 한 짝을 가지고 싶어하는 소신이 있다. 옷장 속 옷들을 버리지 못하며, 책을 읽다가 마음에 남는 단어에 줄을 긋는다. 필립은 끊임없이 자신의 감각과 취향을 붙잡는다. 그렇기에 새로운 세계를 마주했을 때에도 그것을 두려움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받아 들인다.
더 흥미로운 점은 해롤드 역시 완전히 정답인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위험한 일을 하며 살아가고 타인에게 습격을 당할 만큼 불안정한 삶을 산다. 주변인들 또한 그를 외면한다. 사회가 말하는 보편적인 삶의 기준에서 본다면 해롤드 또한 정상성의 외부에 위치한다.
그럼에도 트릿은 자신보다 더 많은 세계를 보여준 해롤드에게서 정답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그리고 밀려들어오는 정보 속에서 더 넓은 가능성을 스스로 탐색하기보다는 또 다른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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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면서도 연극 오펀스는 어떤 삶의 방식이 옳고 나쁘다고 단정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않는다. 정보와 관계가 수직에서 수평적인 구조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그 안에서 각 개인이 어떠한 태도로 세상을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드러낸다. 같은 변화를 겪으면서 누군가는 두려움을 느끼고 누군가는 새로운 가능성을 읽는다. 작품은 그 차이를 통해 개인의 태도와 자아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이 작품이 더 마음에 남는 이유는 그런 차이를 단순히 우열의 문제로 한정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오펀스는 필립을 올바르고 단단한 인물로, 트릿을 나약한 인물로만 표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른 태도를 가진 두 사람이 관계를 통해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를 보여준다. 이 장면들로 결국 공동체란 완전한 사람들의 집합이 아니라 서로의 결핍과 가능성을 함께 나누며 성장해가는 관계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결국 이 작품이 말하는 공동체란 단순히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서로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 받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충분한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 안에서 개인이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함을 전한다.
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남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여러가지 이유로 그 믿음이 흔들리고 있던 순간, 오펀스를 통해 그 가치에 대해 다시 되새길 수 있었다. 서로의 세계를 넓혀주며 더불어 살아가야한다는 사실을 다시 마음에 담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