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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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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션 : 예상을 빗나가라


 

영화 <올 그린스>는 제목만 놓고 보면 푸릇푸릇한 청춘의 포장지로 감싼 영화 같아 보인다. 싱그러운 초록과 뜨거운 햇볕 아래, 활기차게 움직이는 주인공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 초록이 ‘대마초’라는 걸 알기 전까지는.


<올 그린스>는 청춘의 애환을 통해 교훈을 끌어내는 영화가 아니다. 청춘으로 명명되는 시기의 삶을 범죄물로 좀 이상하게 담아낸 영화에 가깝다. 그 청춘이 얼마나 자주 예상 밖으로 흘러가는지, 곡예에 가까운 서사-비틀기를 담아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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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이 나오기까지의 상당한 시간 동안 영화는 세 주연 중 한 명인 히데미(미나미 사라 배우)의 이야기를 자세히 보여준다. 가정 폭력범인 아빠를 둔 장녀 히데미. 공업 고등학교 학생인 히데미는 자발적 아웃사이더로, 래퍼를 꿈꾼다. 힙합 서클에서 주목을 받아 인지도 있는 사람과 연결되지만, 그 남자는 히데미를 집에 초대해선 느닷없이 잠자리를 요구하며 권력을 과시한다. 이미 히데미가 그가 건넨 음료를 마셨기에 불안해지는 찰나, 쓰러지는 건 그 남자다. 히데미가 그새 혹시 몰라 그의 음료와 바꿔치기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남자가 금세 깨어나 위협하자 히데미는 저항 끝에 그를 쓰러뜨리고(넉다운), 우연히 그의 금고를 열었다가 거기 숨겨진 대마 씨앗을 훔쳐 달아난다.


나는 이 장면부터 <올 그린스>가 번번이 예상을 빗나가는 식으로 진행될 것임을 알아차렸던 거 같다. 그러니까 청춘이라는 미명 아래, 불행에 치우친 서사로 낭만을 줄기차게 뽑아내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는 걸.

 

 

 

2. 그들이 뭉치기까지


 

포스터에 떡하니 있다시피 세 여자 고등학생이 주인공이기에 보기도 전부터 그들이 예기치 않은 순간 만나 친해지리라는 예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아니다. 알고 보니 그들은 같은 반 학생으로 이미 첫 장면에서 다 같이 등장했다. 그러나 따로따로의 무리에, 삶에 속해 있다(이와쿠마는 그림을 그리는데 공모전에서 번번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인적 드문 밤 사거리에서 어느 여성(아이를 안고 있는)의 교통사고를 동시에 목격하고 그 비참한 최후를 듣기도 하지만 아직 뭉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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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학교 밖에서의 만남이라는 우연과 미루쿠(데구치 나츠키 배우)의 필연(혹은 끌어당김)으로 인해 뭉치게 된다. 미루쿠는 인싸 부류의 학생으로, 히데미와 이와쿠마(요시다 미즈키 배우)는 시작부터 그녀한테서 거리를 느끼고 있었다. 미루쿠가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을 잃는 사고를 당한 후에도 그들 관계가 크게 변하지는 않는 듯하다. 왜냐, 미루쿠는 손가락을 잃었다고 해서 절망하지 않는 초긍정의 인물이기 때문이다(그녀의 엄마가 그러해 보이듯이).


히데미는 저녁에 길거리에서 서클 활동을 하던 중 우연히 미루쿠와 마주친다. 미루쿠는 황급히 도망치다 히데미에게 붙잡히는데, 미루쿠가 별말 하지도 않았는데 부끄럽다고 생각한 히데미가 급기야 역정을 내며 분노의 랩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미루쿠는 히데미의 예상과 달리 그 랩을 듣고 진심으로 좋다고 말하면서 그 둘은 서로 대화를 트게 된다. 그러고 그들은 볼링장으로 놀러가는데, 때마침 거기서 이와쿠마가 알바를 하고 있었다(이 우연은 눈감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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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같은 학교 같은 반인 아이들이 학교 ‘밖’에서 만났기 때문에 뭉친다는 사실이다. 학교라는 공동체의 울타리는 학생들을 가둘 뿐, 학생들을 연결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그들이 지지리도 이 시골살이를 지겨워하고 있으며(정확히는 부모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고 돈을 모으고 싶어 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그들이 뭘 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가 그런 질문을 할 필요는 없다. 이미 히데미에게는 계획이 다 있으니까.

 

 

 

3. 즐거운 미래와 불협화음, 그 끝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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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졌던 원예 동아리를 부활시키고 학교 옥상의 비닐하우스에서 대마초를 재배해 SNS에서 팔겠다는 대범한 발상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나오게 되었다. 이때부터는 그들이 발랄하고 유쾌하게(?) 대마초를 재배하고 팔아 돈을 버는 걸 보기만 하면 될 거 같다. 후배나 선배가 순순히 그들을 돕기 때문이다(?). 돈을 벌어 산 캠코더로 서로 래퍼, 영화감독, 만화가가 됐다고 가정하고 인터뷰하며 시시덕거리는 그들을 따라 어느새 우리도 시시덕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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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돈으로 해결되리라 생각했던 결핍과 이상한 방식으로 조우하기도 하고, 이상한 우연들이 벌어져 사업은 위태위태해진다. 드라퍼 대신 마약 거래에 나선 히데미가 구매자 남성한테 위협받는다든지, 미루쿠가 엄마로부터 독립하겠다고 선언하며 돈다발을 건네자 엄마가 벌떡 일어나 가스불을 켜서 그 돈을 불태운다든지, 위협받는 히데미를 구해준 친구가 히데미가 그날 보답으로 건넨 마약에 취해 교통사고를 당하고 입원한다든지, 히데미에게 맞고 의식을 잃어 병원에 입원했던 남자가 퇴원해서는 히데미를 찾아가 협박을 한다든지. 살다 보면 들려오는 갖가지 잡음, 불협화음처럼,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그런 일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내 삶의 음악을 망친다.


그들에게 그런 위기는 그래, 그건 나쁜 짓이었어, 하는 윤리적인 후회보다도, 이래도 벗어날 수 없는 건가, 하는 절망을 안겨준다. 그들한테 현실은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처참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이 계획을 주도한 히데미가 혼자 이 모든 걸 짊어지기로 한다. 이 길밖에 없잖아? 하는 심정으로. 눈물을 머금고. 그러나 참담함도 잠시, 학교에서 대폭소,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면서 후다닥, 히데미는 달리기 시작하고, 그렇게 영화는 스크린을 벗어난다. 그렇게,


끝?


객석의 우리는 덩그러니 남겨져 이게 뭐지? 하는 황당한 여운에 휩싸이다가 풋, 하고 웃고 만다. 결말이라면 으레 무거울 거라는 예상을 빗나간 자리에서 햇빛처럼 번지는 투명하고 가벼운 웃음. 불행보다 더 빨리 예상을 벗어나는 활력의 삶, 그게 청춘을 증거하는 유일한 본보기일지도 모른다는 자그마한 배움.


그러니까 <올 그린스>는 말이야... 너무 이상한 애들이 나오는... 너무 이상한 영화 같아. 근데 있잖아, 큭큭. 아니 그냥... 큭큭.

 

 

 

에디터 안태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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