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힌드의 목소리>는 2024년 1월 29일 가자지구, 폭격된 차에 홀로 갇힌 6살 소녀 힌드가 국제구호단체 적신월사에 구조 요청을 하며 남긴 ‘실제 전화 음성’ 기록을 재구성한 영화이다.
힌드의 위치와 구조대가 위치한 곳 사이의 거리는 단 8분. 보통의 상황이었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힌드를 구해 이송할 수 있었을 테지만, 영화에서는 구조대가 출발하기까지 5시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이스라엘군이 구조대를 사격하지 않기 위해 이스라엘 측과 경로를 이야기하고 허가를 받기 위한 조정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조정 절차 중에서도 힌드는 차 안에서 계속해서 총격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의 목소리 너머 들리는 총소리와 끊겨버리는 전화. 적신월사 직원들은 필사적으로 힌드와의 연락을 유지하려 하며 아이를 안심시키려 노력한다. 누구보다도 힌드가 구출되기를 바라던 직원들의 절박함이 스크린 너머의 나에게까지 느껴졌다.

영화 내내 답답했던 부분은 조정에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힌드가 있는 곳은 군사 요충지 같은 곳도 아니고 구조대가 몇 시간씩 떨어져 있던 곳도 아니다. 그저 잠시 사격을 멈추고, 구조대를 기다리고, 떠나보내면 되는 과정. 6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구하겠다는데 왜 그렇게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그렇기에 왜 당장이라도 구조대를 보낼 수 없냐며 욕을 하던 직원의 입장도, 조정이 없다면 구조대까지 죽을 수 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절차를 밟으려던 직원의 입장도 공감이 가면서 그 지지부진함에 답답함과 초조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힌드가 총에 맞진 않을까 조정이 결국 실패하진 않을까 불안해하던 끝에 어렵사리 조정에 성공하고, 구조대는 힌드가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된다. 힌드의 차가 어떤 건지 물어보던 구조대의 목소리는 총격 소리와 함께 끊기고 만다.
그때의 허망함과 망연자실함. 일시적으로 연락이 끊긴 거라며 희망을 끈을 잡으려는 사람들의 모습.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당시 직원들의 실제 영상을 함께 보여주며 이것이 영화적 과장이 아닌 실제 있었던 일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 모든 상황이 충격적이었고 눈물만 나왔다.
그 지난한 조정 과정은 모두 무사히 탈출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것을 위해 이스라엘 측과 연락하며 안전한 경로를 찾은 게 아니었던가.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러한 절차에 약간의 환멸을 느끼면서도 최소한의 약속과 절차가 존재한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얼마나 안일했는지. 이 모든 과정이 총알 하나에 깨질 만큼 연약한 것이라면 도대체 무엇을 믿고 폭격의 한가운데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후 영화는 힌드 가족의 인터뷰와 실제 현장의 모습을 담은 영상으로 이어진다. 엉망이 된 구급차와, 그 안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었다고는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처참한 상태의 자동차를 보며 울지 않을 수 없었다. 힌드가 탄 차에 남은 총흔은 300개가 넘었다. 안락한 의자에 앉아 영화라는 이름으로 정제된 화면을 보고 있는 내가, 힌드의 모습과 전쟁의 참상을 목도하며 울고 있는 내가, 죄스럽게 느껴졌다.
민간인과 어린이를 죽이지 않는다는 나의 상식은 사실 잘못된 것이었을까. 그런 생각은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 같은 소리가 되어버린 걸까. 당사자들에게는 이미 진작에 깨져버렸을 어떠한 믿음이 내게서도 사라진 것 같았다.
*
영화를 본 후 SNS에 후기를 검색해 보았다. 누군가 <힌드의 목소리>가 이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더라, 하는 글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과거의 내가 그 뉴스를 본 적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도 분노했고 그때도 전쟁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데도 영화를 보고 나온 지금, 내가 그 사건을 완전히 까먹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영화의 중반, 힌드의 상황을 알려 여론의 힘이라도 얻어보려는 시도는 SNS에 들어가면 널린 게 시체 사진이라는 냉소적이고 적나라한 대사 한 줄로 실상을 드러낸다. 이미 무감해진 대중 속 한 명이 바로 나였음을 그제야 깨닫는다.
이토록 무거운 이야기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잊어버렸을까.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팔레스타인에서는 사람이 죽고 있고, 이스라엘은 이란과도 전쟁을 벌이며 수많은 피해를 낳고 있다.
이 시대, 이 자리에서 우리는 먼 곳의 비극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 아주 사소한 변화라도 좋다.
다만 이 영화의 끝이 잠깐의 충격과 슬픔으로만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