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유한해서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도 결국 끝이 난다.
불행이던 행복이던 마침내 끝난다.
무언가 끝이 나고 난 뒤의 감정은 설렘 같은 여운과 코끝이 찡한 섭섭함이 섞여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그리고 결국 남은 공허함은 알 수 없는 온기로 감싸져 애틋한 마음을 들게 한다.
결국 오지 않을 것 같은 끝을 마주했기 때문일까.
어느 날의 끝난 순간들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한동네에서 10년을 넘게 함께 크고 자란 친구들과 영영 헤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우정이 한 걸음씩 각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을 때, 항상 싱그럽게 복도를 가득 채우던 햇살과 웃음소리가 멎고 마지막으로 본 교실의 풍경은 어쩐지 어수선했다. 노을이 내려앉은 텅 빈 교실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나올 때 유난히 크게 울리던 스위치 소리가, 먹먹하고 어쩐지 연극의 한 막이 내려간 것 같은 적막과 붕 뜬 느낌이 나의 첫 번째 마무리였다.
어느 한 날은 좋아하는 가수를 보러 밤을 새우며 기다린 적이 있다.
하루를 꼬박 기다리고서야 페스티벌의 마지막 순서에 등장했고 20분 동안 나는 끝나지 않을 놀이공원에 있는 듯했다. 동경했고, 좋아했다. 빛이 났고 시간을 잡을 수 있다면 손이 닳더라고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무수히 떨어지는 포근한 향의 컨페티가 놀이공원의 야간 퍼레이드 마지막이 되어주듯 끝을 알렸다. 그리고 끝난 공연 뒤엔 적막만이 남았다. 분홍색으로 밝게 빛나던 무대가 다시 까만 밤하늘처럼 고요하고 어색해졌다.
시간은 그렇게 지났고, 사랑을 만났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던 겨울의 끝자락 아래 이별에서 사랑은 결국 돌아 다시 온 봄처럼 고개를 내밀었다. 목이 메도록 힘들었던 시간들이 사랑이 아니던 순간을 사랑이라 믿었던 여리고 어린 만남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별의 슬픔이 여전히 남아있을 것 같던 기억이 사라지고, 다시 언젠가 올 수도 있는 이별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맑았던 한여름의 첫사랑이 찾아왔다.
불안하지 않은 만남이었다. 처음으로 하는 사랑이었고 매일이 확실했다. 나는 내가 불안한 사람인 줄 알았다. 집착이 심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안정적인 상대는 내가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사랑은 공부처럼 많이 한다고 그 깊이를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점차 무해한 사랑이 뭔지 알게 됐다.
아주 오래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며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라는 말에 거치는 것 없이 튀어나온 너의 말이 좋았다.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오래오래 다정하게 사랑하자라는 한마디가 편지보다 길었고 고백보다 깊었다. 많이 좋아하고 있다. 여전히 빛이 났고 시간을 잡을 수 있어도 잡고 싶지 않았다. 내 손을 닳게 놔둘 네가 아니라 우리의 시간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마음을 개울가에 풀어두었다.
자연스레 흐르도록 오래오래.
하지만 훗날 우리가 헤어진다면 언젠가 지금을 그리워할 때가 온다면 그때의 나는 조용히 사랑이 끝난 뒤의 우리를 조용히 고요히 정리하고 있겠지. 마무리하고 싶지 않은 사랑에 끝을 생각하며 혼자 애틋해진다.
만남은 늘 조심스레 다가왔고 헤어짐은 늘 조용했다.
자연스레 남겨진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