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란 점차 바뀌는 날씨에 입었던 옷을 옷장에 정리하게 하고, 이따금 계절을 타 설렘과 불안으로 마음을 무성하게 한다. 때에 맞게 환경을 정리하며 우리는 마음을 함께 정돈하는 듯하다. 고로 몸과 마음이 자라며 차츰 갑갑함을 느낀다. 다시 찾아온 계절, 새로움이라는 시작, 그 모든 것이 중압으로 다가온다.
삼라만상 속에서도 외로움은 스며 있다.
대단한 노력과 운수 대통으로 놀라운 성취를 가져온 사람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훨씬 많다. 소셜 네트워크의 파급력과 결과 중심주의를 향하도록 점차 목을 조여오는 삭막한 환경은 강렬한 삶의 의지를 잇는 사람을 때로는 고독함이라는 상자에 가둔다.
평생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천지 만물은 전부 외로움을 고스란히 실감하며 생을 이어간다. 그 것이 때로는 더 영광스러운 곳으로의 도약일지도 혹은 절망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는 덫일지도 모른다.
안온한 삶을 살고 있을지라도, 불특정 다수에게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통해 선망이 되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상대방의 생각을 100% 꿰뚫어 볼 수는 없다. 마음에 불온의 싹이 자라고 있을지 절망으로 가득할지 스스로조차 알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인 것이 그 이유다. 그렇게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사람에게 살며시 스며들고 사람은 이를 흡입한다.
외로움이라는 건 대체 무엇이길래 사람을 공허하게 만들고 완치할 수 있는 약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다른 사람과 어떻게든 부대끼면서 매 순간 관계를 정의 내리며 사는 것이 해결책일까, 외로움이라는 감옥 속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본질을 망각하고 더 많은 페르소나를 지니는 것이 해답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결코 사람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일평생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 언젠가 완전무결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상을 품은 적이 있다. 아주 어렸을 적 되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며 머릿속에 초상을 그렸다.
그 사람은 대인관계가 원만하여 주위에 사람들이 가득하고 모든 이에게 칭송받으며 자질구레한 근심·걱정으로 표정이 일그러진 적이 없는, 단 한 번도 외로움과 같은 감정을 느낀 적이 없을 법한 그런 사람이었다. 이러한 사람을 동경하고 노력하다 보면 미래의 나도 찬란한 꽃길을 걸어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완전무결함이란 인간과 모순된다는 것을.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고, 과오를 저지르고 말기 때문에 인간임을 안다.
그저 자신의 과오를 알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음을 배우는 것으로 충분함을 느낀다. 살아가는 것은 아름답다. 외로움을 느끼기에 인간이며, 외로운 인간은 하염없이 완벽과는 거리가 멀고 부족할 뿐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움에도 공허함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가 있고 외로움에 가슴이 시릴 때가 분명히 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수선화에게, <정호승>
정호승 시인의 덤덤한 독백에 나도 모르게 큰 응원을 받은 것 같다. 사람마다 꽃을 피우는 시기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고, 최대한 빠르게 일생의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보면 진심으로 가상함을 느낀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동일한 길을 걷지 않고 불공평함이 삶에 자리 잡고 있듯이 꽃을 피우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상적인 꽃을 피우지 못해도 피워낸 꽃이 금방 시들더라도 괜찮다. 우리는 사람이니까. 차가운 외로움을 들이마시고 심장으로, 온몸으로 받아내는 사람이니까 괜찮다.
시든 꽃을 바라보며 마음이 닳도록 애쓰고 애쓰지 않는다. 슬픔을 숨기고 지우려 공들이지 않는다. 슬프다면 슬픈 대로 외롭다면 외로운 대로 길을 걷다가 계절의 내음을 느끼기를 바란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며 그저 삶을 묵묵히 살아간다.
당신을 응원하는 내일의 태양이 뜨기를 간절히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