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활짝 핀 봄
하얀 천 뒤의 나
작년 3월, 새로운 시작과 함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 나는 적응해야만 했다. 더욱 발전된 나를 위해 나는 과감하게 나와 정반대의 성향들을 만나고 그것에 부딪혀보았다. 그러한 일들이 매번 버겁기보다는 소소한 나의 일상들이 나를 버티게 해주었다.
그러다 나는 우연히 공원에서 활짝 핀 꽃나무 한 그루를 보게 된다. 예전처럼 친한 친구들과 벚꽃 구경을 갈 수 없다는 현실이 갑자기 크게 다가왔다. 그렇게 찾아온 무의식은 계속해서 나를 지배했다. 내가 여기서 하고 있는 일이 잘하고 있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쳐지고 있지 않을까. 괜히 맞지 않는 일을 해서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만의 알람벨이 울렸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변화를 위한 나의 도전들도 좋지만 오직 나를 위한 고독 또한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라고 느껴졌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거닐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가장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있었던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 혼자 들어가 보았다.
미술관은 나만의 또 다른 고요함이다. 공원을 걸으며 각 걸음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즐기는 것처럼 미술관도 같다. 걸음마다 달라지는 작품과 시선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작품으로 나는 그저 지켜본다.
그렇게 나는 미술관을 거닐며 향유한다. 보다가 과거 교과서에서 봤던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뿌듯해하기도 하고, 이렇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나에게 위로받기도 한다. 나는 작품의 뜻이나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것보다, 그 작품에 매료되기보다는 나만의 무의식을 잠재우기 위한 하나의 처방전 같다고 본다.
르네 마그리트, 『연인 Ⅱ,The Lovers Ⅱ』
그러다 문득 나는 이 작품 앞에 섰다. 평소 좋아했던 프리다 칼로의 작품보다 더 오래 서 있었던 것 같다. 그 작품은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 Ⅱ,The Lovers Ⅱ』였다. 어느 연인들과 다르지 않은 키스를 하는 장면이지만 하얀 천에 감싸여 있는 채 키스하고 있는 연인들과 그 뒤에 그려져 있는 그림자는 왠지 이 키스가 행복함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히 그들은 사랑해서 키스를 하고 있는데, 하얀 천을 벗고도 그들은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하얀 천을 가린 채로 사랑한다고 해도 이는 건강한 사랑이 아닐 것이다.
나도 그러했다. 나를 발전시키기 위한 변화는 좋지만 나의 본질까지 바꿔가면서 변화를 억압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발전이 아닐 것이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완벽하고 건강하고 누구보다 성취할 수 있다'는 자존심이 나를 계속해서 하얀 천에 뒤덮인 채 살아가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못나고 조금 떨어지더라도 그런 모습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그런 모습을 알아가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위의 나의 이야기는 책 <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의 책 내용의 구성처럼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작품도 함께 공감할 수 있게 작성해보았다. 나의 이전의 경험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그림과 작가의 삶을 엮어 작성해보았다.
여전히 나도 내 마음속에 바람이 부는 날, 낙엽도 머리카락도 내 앞을 아지랑이가 흐트러놓는 날, 미술관을 찾아간다. 예술가들의 그림 중 어느 하나에 투영되는 나를 통해 위로받고 싶어서이다.
그것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내의 기억과 경험들을 되풀이하고 이를 슬퍼하기도 한다. 마치 책의 표지에 나와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성서가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Bible』처럼,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목사가 아닌 화가가 된 고흐가 아버지가 바라는 아들이 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열패감을 아버지의 큰 성서와 자신이 즐겨 읽은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을 함께 놓은 것처럼. 그럼에도 나의 이런 마음이 계속해서 아프지 않기를, 공감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책 <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다양한 감정을 변화무쌍한 날씨에 비유해서 공통의 심상이 이어지는 작품과 작가의 삶에 대해 소개함으로써, 내 안의 바람을 그림으로써 공감하고 위로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