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저항은 하나이고 사랑과 치유도 하나라고 이 시집 전체가 작게 말하고 있을 뿐, 어떤 시도 직접적으로 크게 말하고 있진 않다. 진은영의 정련된 이미지들 뒤에는 얼마나 많은 사유와 감정이 들끓고 있는가. 더 중요한 것은 사유와 감정이 하나의 언어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아름다움, 진은영은 그런 것을 가졌다." - 신형철,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해설 [사랑과 하나인 것들: 저항, 치유, 예술]
감정은 흘러가고 사유는 남는다. 감정은 나를 흔들었고 사유는 나를 붙들었다. 그리고 글은 그 둘을 묶는 실이었다.
왜 나는 글로 남기고 기록하고 있을까. 왜 사유를 축적하고 있을까. 기록은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보존하는 일이 아니라, 그 감정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남기는 일이라고 믿는다. 글을 쓰는 동안 감정을 크게 외치지 않는다. 조용히 그리고 잔잔히 생각을 글로 눌러 적어왔다. 독서를 하든, 사색하며 허공을 바라보든, 음악을 듣고 있든 각을 잡고 글을 쓰지 않더라도 메모지를 수차례 꺼내어 단어와 문장들을 수시로 적어둔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의 마지막에 나오는 서평에는, 사랑과 저항은 하나이고, 사랑과 치유가 하나라고 시집 전체가 작게 말하고 있다고 한다. 그 문장을 읽으며 지난 4개월을 떠올렸다. 4개월 간 매주 1개의 글을 기고하면서 기록을 나의 증거로 삼지 않았고, 그날의 기분을 보존하려고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오래 머무르는 어떤 생각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따라가 보고 싶었다. 감정과 사유가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문장으로 남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내가 무엇에 다다르고 싶었는지 스스로 이해하게 된다.
주기적으로 시집이 필요한 시기가 찾아온다. 진은영 시인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시집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감정과 생각들을 차분히 따라가 보았다.
「청혼」
「청혼」은 시집의 제목인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로 시작한다. 첫 연에서 쉽게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오래된 거리"에서 한 번 멈추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에서 다시 멈춘다. 시간의 이미지와 생명의 이미지가 한 연 안에서 겹쳐지며, 머리로 이해되기보다 먼저 마음에 닿았다. 마치 사랑을 확인하듯, 그 연은 한 번 더 반복된다.
「청혼」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들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이 문장을 읽으며 과거에게도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도록 현재를 온전히 사랑하겠다는 고백처럼 들렸다. 사랑을 시간의 어느 지점에 기대지 않겠다는 다짐 같기도 했다.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몸의 여러 부분 중에서도 손도, 심장도, 등도 아닌 팔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몸의 구성요소 중 스스로가 가장 편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되는 팔에 모두 적어주겠다는 말도 너무 사랑스러웠다. 사랑을 거창한 약속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 적겠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외로이 나를 만나는, 나를 탐색하는, 나를 찾는 시간들, 그리고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었던 방황의 순간들. 그 시간들을 지나왔기에 당신을 만날 수 있었다는 고백 같다. 그 소중한 시간들을 평생에 걸쳐 사랑으로 모두 돌려주고 싶은 마음, 그런 사랑을 고백하고 싶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일생에서 얼마나 큰 행운이고 행복일까.
“청혼”이라는 말은 단어만 들어도 설레고 애틋하다. 그래서 이 시의 모든 연들은 결국 사랑이라고 들렸다.
「사랑의 전문가」
「사랑의 전문가」는 “나는 엉망이야”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고백에서 나는 오래 멈추었다. 사랑을 하면 나를 끝도 없이 바라보게 된다. 내가 얼마나 엉망인지. 그리고 이별할 때 또 한 번 느낀다. 고통 속에서 낯선 나 자신을 마주하며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사랑의 전문가」
나는 엉망이야 그렇지만 너는 사랑의 마법을 사랑했지. 나는 돌멩이의 일종이었는데 네가 건드리자 가장 연한 싹이 돋아났어. 너는 마법을 부리길 좋아해. 나는 식물의 일종이었는데 네가 부러뜨리자 새빨간 피가 땅 위로 하염없이 흘러갔어. 너의 마법을 확신한다. 나는 바다의 일종, 네가 흰 발가락을 담그자 기름처럼 타올랐어. 너는 사랑의 마법사, 그 방면의 전문가. 나는 기름의 일종이었는데, 오 나의 불타오를 준비. 너는 나를 사랑했었다. 폐유로 가득 찬 유조선이 부서지며 침몰할 때, 나는 슬픔과 망각을 섞지 못한다. 푸른 물과 기름처럼. 물 위를 떠돌며 영원히
엉망이라는 인정은 자기 연민이 아니라 자기 인식으로 보인다. 사랑은 잘 준비된 사람이 시작하는 일이 아니라 흔들리는 채로 시작되는 일인 것 같다. 그 솔직함이 「사랑의 전문가」라는 제목에서 믿음직스러웠다.
그리고 중간에 등장하는 문장, “너는 사랑의 마법사”라는 표현에 빠져들었다.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습관도, 성격도, 오래된 상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사랑의 힘을 믿는다. 사랑은 사람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바꾸는 마술이 아니라,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가능성을 꺼내 보이게 하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엉망이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만나 하나의 시너지를 만들어 '우리'가 되는 것.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힘. 그래서 “너는 사랑의 마법사”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라 감사에 가까워 보였다. 나를 구원해 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나의 변화를 함께 목격해 달라는 고백 같다.
나는 여전히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이해한다. 그러나 동시에, 누군가의 사랑이 나의 방향을 조금 틀어놓은 순간들을 기억한다. 너는 나의 '사랑의 마법사'라고 생각하면서 행복하거나 힘들거나 슬프거나 벅찬 감정들을 마법처럼 인식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해 본다. 사랑하는 동안 “너의 마법을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제목을 곱씹어보며 “오래된 거리” 대신 나만의 단어를 넣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시집을 덮으며 나만의 단어를 넣어 내가 쓴 시 한 편을 남겨본다.
푸른 수평선처럼 너를 사랑하고
당신의 바람이 될 수 있다면
드넓고 깊은 당신의 파도를
내가 맞닿아 느낄 수 있다면
_손예주
“아름다움(예술)은 인간을 ‘해결’하는 사랑의 작업이고, 그렇게 치유되면서 우리는 ‘해결되지 않는 분쟁’과 다시 맞설 힘을 얻게 된다.” -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서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