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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는 ‘돌을 먹지 말라’고 쓰인 표지판이 없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 이야기’의 본문 가장 앞 속지에는 이런 수피 격언이 적혀 있다.


디스토피아(dystopia)란 열광하는 이가 많은 만큼 재생산되는 횟수도 많은 개념이다. 작품에서 작품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덩치를 부풀린 디스토피아의 이파리들은 한없이 울창하고 다채로우나 동시에 그들을 있게끔 하는 단일한 줄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책에서 디스토피아는 국가가 모든 국민을 낱낱이 감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또 다른 책에서 디스토피아는 전쟁이 휩쓸고 간 땅 위에 남은 찌꺼기 같은 삶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와는 또 다른 영화에서 디스토피아란 계급에 의해 모든 것이 철저히 분리되는 사회의 얼굴로 등장한다.

 

디스토피아의 발현은 단일하지 않다. 그러나 그 모든 변형이 스스로를 ‘디스토피아’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공통적으로 ‘인간이 응당 지녀야 할 가치가 결여된 세상’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디스토피아의 핵심은 결여이며 결핍이고 대체이다. 인간의 가치는 다른 비인간적인 무엇으로 대체된다.


디스토피아를 표방하는 모든 작품은 저마다 이러한 결핍, 즉 ‘비인간적인 대체’를 묘사하는 나름의 방식을 지니고 있다. 일부 작품은 결핍의 당사자들이 결핍에 휘말리는 과정과 비인간적인 대체를 당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작품 속 배경의 무게를 더하려 시도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권력에 짓눌린 개인이 얼마나 끔찍한 취급을 당하는지. 전란 속 약자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는지. 폭력에 휘말린 이가 얼마나 생생히 고통받는지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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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녀 이야기’가 세상을 그려 나가는 방식은 이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 있다. 주인공의 독백은 과장되어 있지 않다. 주위를 둘러싼 강압과 억제는 ‘생생하고 자극적인 폭력의 묘사’가 아닌, ‘일어난 일과 그에 뒤따르는 생각의 기술’로써 차분히 설명된다. 그리고 그 덕에 과거 미국이 있던 자리를 대체한 새로운 국가 길리어드는 더할 나위 없이 숨이 막히는 무게로 독자를 짓누른다.

 

디스토피아를 논하는 작품들은 대개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이 언젠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라는 일종의 두려움을 심어 줌으로써 보는 이의 시선을 붙들어 놓는다. 하지만 ‘시녀 이야기’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 속 어두운 면을, 그리고 그와 궤를 같이했던 권력 역학과 성 사이 유기적 관계를 토대로 생각한다면 작품 속 세계는 ‘실제로 다가올지도 몰라 두려운 세상’이 아니라 ‘형태는 조금 다를지언정 이미 도래한 적이 있는 세상’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당연하여 입에 올릴 필요조차 없으므로. 

선술했듯 사막에는 ‘돌을 먹지 말라’고 쓰인 표지판이 없기 마련이다.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통찰과 명료한 의식을 논외로 두더라도, ‘시녀 이야기’는 서사를 이끌어 나가는 구조적 역량과 독보적인 서술만으로 이미 대단한 문학의 반열에 오르는 데 부족함이 없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담담한 서술만으로 울림과 충격과 참담함과 감탄을 경험하게끔 한다. 명료하다 못해 직선적이기까지 한 주제의식의 묘사 없이 그저 짧은 전달만으로도 오래도록 곱씹어 보기에 충분한 메시지를 던진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는 매끄럽고, 작품이 목적지를 향해 달려나가는 방식은 정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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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처음으로 출판된 이래, ‘시녀 이야기’는 그에 쏟아지는 찬사와 비례하여 노골적으로 집요해진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 일부에서 ‘시녀 이야기’는 불온 서적으로 지정되어 폐기 처분되었고 때로는 불살라지기도 했다. 그러자 마거릿 애트우드는 ‘시녀 이야기’의 출판사 Penguin Random House와 협업하여 불에 타지 않는 이른바 ‘Fireproof’ 에디션을 세상에 내놓았다.

 

금서로 지정된 책에 직접 불을 쏘아 보는 마거릿 애트우드와, 화염방사기의 불길 앞에서도 끝내 타지 않은 ‘시녀 이야기’의 새 에디션은 이미 그 자체로 세상의 디스토피아성과 그에 굴하지 않는 정신의 이야기가 되는 데에 손색이 없다. ‘반(反)과 그에 맞서는 정(正)’이 정형화된 공식이라 해도 어떤가. 이런 작품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한, 그리고 이런 작품을 쓰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존재하는 한 세상은 여전히 디스토피아에서 적어도 한 걸음쯤은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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