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메멘토 북을 받았을 때, 그 두께에 놀랐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란 점은 생각보다 공백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한 해를 돌아보거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기록하는 책을 몇 권 구매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늘 비슷했다. 끝까지 다 채우지 못한 채 방치되었을 뿐이다. 다이어리도 마찬가지다. 다 채우지 못하고 공백만 늘어났다. 공백과 함께 하루하루를 다 채우지 못했다는 자괴감도 함께 쌓여갔다. 어느 순간 그 공백은 나의 공백처럼 느껴졌다.
메멘토 북은 이런 문제와 고민을 이해하고 있는 듯한 책이다.
책의 첫 시작에는 기록하는 법이 적혀 있다. 그 방법들 가운데 특히 눈에 들어온 문장은 "매일 쓰지 않아도 된다", "빈칸을 겁내지 말라",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 책은 기록을 의무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자유롭게 남기는 일로 바라보게 만든다.
책에는 나 자신 또는 주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문구와 질문들이 가득했다. 한 번쯤 봤을 소설이나 영화의 문장들, 그리고 잘 알지 못했던 명언들까지 적혀 있어 그 문구를 보며 자연스럽게 나의 이야기를 적어나갈 수 있게 만든다.
책을 훑어보며 몇 가지를 적어보았는데 그중에서도 한참을 페이지 앞에 머물게 하고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 문구가 있었다.

위 문구와 함께 새롭게 알게 된 것은 피카소의 명언이었다.
피카소가 어릴 때 그의 어머니는 "넌 군인이 된다면 장교가 될 거고, 수도사가 된다면 교황이 될 거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는 화가가 되었고, 결국 '피카소'가 되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고 결국 그렇게 살아낸 사람은 참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다른 페이지의 질문들에는 대충이라도 공백을 채워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_ 입니다.'라는 공간 앞에서는 쉽게 펜이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을 그 페이지에 머물렀다. 하나뿐인 나, 완전한 삶이 아닌 충분한 삶을 찾아가는 나. 여러 생각 끝에 공간을 채웠다. 내가 무엇이 되느냐보다, 그냥 나로 존재한다면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되었든 결국 그 또한 나일 테니까. 그래서 이렇게 적어보았다.
"나는 뭐든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후 이 페이지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의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메멘토 북의 앞장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이 책의 첫 번째 독자는 바로 나"라는 문구다. 이 책은 스스로가 작가가 될 수 있고 동시에 독자가 될 수 있게 한다. 내가 나에 대해 적고 다시 나에 대해 읽는 일.
그렇게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현재의 나를 기록하며 미래의 나를 조금씩 알아갈 수 있는 책이라고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