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디어의 중심에는 다시 주방이 놓여있는 듯하다. <흑백 요리사>가 불러온 바람은 요리 서바이벌을 다시금 주류로 끌어올렸고, 그 열기를 증명하듯 수많은 요리 프로그램들이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애써왔다.
먹는다. 이것만큼이나 모두에게 공감을 살 수 있는 요소가 없을 것이다.
성별, 세대, 직업을 불문하고 '식(食)'은 인간이 가진 가장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욕구이다. 요리 예능이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지 않을까. 난생 처음 보는 화려한 기술이나 생소한 식재료가 등장하더라도, 결국 맛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은 우리 모두를 하나의 마음으로 묶어준다.

하지만, 이미 너무나 익숙한 이 풍경들에 우리가 몰입하게 되는 이유는 단순히 먹거리 때문은 아닐 것이다. 시청자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어쩌면 요리라는 행위를 넘어 음식만큼이나 켜켜히 쌓인 드라마에 가깝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요리를 완성하는 이 과정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길래, 우리는 왜 이토록 깊이 마음을 빼앗기는 것일까?
극한의 압박 속에서 피어나는 날 것의 솔직함
서바이벌의 백미는 단연 살 떨리는 긴장감이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도중 폭발하는 감정들이나, 숨 막히는 시간 제한 속에 참가자들이 몰아붙여지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심박수를 높인다. 체력적으로나 멘탈적으로나 극한으로 몰리는 상황 속에서 참가자들이 보여주는 열정은 우리 내면에 숨어있던 열정을 깨우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 긴장감 끝에 남는 것은 결국 '솔직함'이다. 요리에는 만드는 이의 삶과 고집이 그대로 투영된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그 요리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흑백 요리사 2>에서 빨간 뚜껑 소주를 들고 와 자신을 증명해보인 최강록 셰프처럼.

요리 서바이벌에 나오는 셰프들이 모두 꽃길을 걸어온 것은 단연 아니다. 많은 참가자들이 사실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요리는 그간 해온 것과 달랐다고 고백하곤 한다.
사실 자신이 진짜 원했던 요리는 할 수 없었다는 말들이 어쩐지 현실에 좇겨 꿈을 잃었다는 우리의 이야기와 너무도 겹쳐보이는 것은 왜일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주방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벽에 부딪혀 진짜 꿈을 좇지 못했다는 화면 속 이들의 모습은 각자의 사정으로 꿈을 잠시 접어두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마음 속에 있던 자신만의 레시피를 놓지 않았고, 기회를 통해 그를 증명해보였다. 그 한 그릇의 요리에 담긴 그들의 꺾이지 않은 마음은, 나조차 잊고 지냈던 꿈을 일깨운다.
'인정'이 귀한 시대의 스승들
요리 서바이벌의 심사위원들은 단순한 권위자가 아니다. 신랄하지만 때로는 따듯하게 참가자들을 다독이는 그들의 말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떨리게 한다.
<흑백 요리사>의 유행을 이끌었던 안성재 셰프나, <헬스 키친>을 벌써 24 시즌동안이나 이끌어가는 고든램지와 같은 심사위원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들의 평가가 뾰족하면서도 본질을 꿰뚫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과물을 날카롭게 평가하면서, 동시에 참가자들의 숨은 노력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포착한다.
현대 사회는 노력하는 것은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정작 누군가의 노력을 알아주는 일에는 인색하다. 그렇기에 비판적인 평가 뒤에 찾아오는 따뜻한 격려가 참가자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던 그들은, 누구나 자신의 노력을 진심으로 지켜봐 주고 인정해줄 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해준 것은 아닐까.

요리 예능은 결국 무언가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록이 아닐까 싶다.
뜨겁게 끓고 있는 냄비 앞에서 땀 흘리는 셰프들의 모습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뜨거운 무언가를 상기시킨다. 그 치열한 요리 경쟁이 하나의 드라마로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그 그릇 위에 놓인 것이 그저 음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진심을 다해 빚어낸 것들은 반드시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다. 누군가의 땀방울이 담긴 요리가 내일을 살아갈 우리에게 다시금 용기를 불어넣어, 화면 밖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해내고 있다.